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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지방 교대에 들어간 둘째 딸 얘기입니다. 딸에 대한 얘기는 한 번 했었는데, 이번에는 기숙사 얘기입니다. 딸은 19년 동안 한번도 부모 품을 떠나지 않다가 지난 2월말에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작년 고3 수험생 기간뿐만 아니라 집에서 지낼 때 딸이 가장 많이 했던 건 '반찬' 투정입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에 딸은 "맛이 없다"며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공부하느라 입맛이 깔깔해서 그렇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알게 모르게 요리공부도 많이 했는데, 천성적으로  제가 요리에는 젬병인가 봅니다. 그래도 정성 하나만큼은 최고인데, 왜 딸은 그리도 맛이 없다고 했을까요?

그런데 딸은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엄마에게 반찬 투정할 때가 행복했다고 합니다. 기숙사 밥이란 게 아무리 맛있게 한다고 해도 집에서 먹는 밥과 어디 같나요? 3월 한달을 보낸 후 4월 초에 집에 온 딸을 위해 딸이 좋아하는 동그랑땡, 감자탕, 계란말이, 잡채 등을 준비했습니다.

딸은 동그랑땡만 해도 명절 때 외할머니집에 가서 먹는 것은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은데, 엄마가 만든 것은 모양도 안 예쁘고 맛도 별로 없다고 늘 투덜거렸는데, 한 달 만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기숙사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해준 반찬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주 엄마 반찬이 먹고 싶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제 손맛에 길들여진 것일까요?

기숙사 밥이 맛이 없어 밑반찬을 보내달라는 작은 딸
▲ 딸이 보낸 문자메시지 기숙사 밥이 맛이 없어 밑반찬을 보내달라는 작은 딸
ⓒ 피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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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문자를 받고 기숙사에서 밥을 먹을 때 함께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이라도 해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김, 장조림, 멸치볶음, 콩장, 계란말이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딸의 얘기를 들어보니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집에서 보내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기숙사 밥 값이 워낙 싸기 때문에(1끼 3000원) 그 가격으로 요즘 아이들 입맛을 맞추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은 제가 해준 밑반찬을 들고 기숙사로 갔지만 밥 먹을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딸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밑반찬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서 26일 아침 일찍 당일 택배로 보냈습니다. 딸이 서울에 오면 밑반찬을 가져갈 수 있는데, 신입생이라 모임도 많고 리포트 등 해야할 일도 많아 주말마다 서울에 오기기 쉽지 않아서 입니다.

딸은 제가 보낸 밑반찬을 저녁 무렵에 받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문자에는 엄마의 정성에 고마워하고 철이 부쩍 든 딸의 마음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게 반찬 투정을 하더니 엄마가 해준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니요. 퇴근 길 지하철에서 문자를 보는데,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딸은 이제야 엄마가 해준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나 봅니다.

집에서는 반찬 투정을 하던 딸이 엄마가 해준 반찬이 최고란다.
▲ 딸이 보낸 문자메시지 집에서는 반찬 투정을 하던 딸이 엄마가 해준 반찬이 최고란다.
ⓒ 피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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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있는 집은 20대 초반에 군대에 보내지요? 우리집은 딸만 둘이라, 그런 안타까운 기분을 느낄 수 없었는데, 요즘 딸을 군대에 보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잠을 잘 때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하는데, 제가 요즘 그렇습니다. 기숙사 밥이라도 배가 고프면 '시장이 반찬'이기 때문에 잘 먹었으면 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어디 그런가요? 기숙사 내에서 햇반이나 컵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아 건강도 염려됩니다.

딸을 위해서는 무엇인들 못할까요? 딸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 딸을 위해 만든 밑반찬 딸을 위해서는 무엇인들 못할까요? 딸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 피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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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키우면서 다른 집처럼 군대 안 보내 생이별은 하지 않겠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가족과 떨어져 씩씩하게(?) 잘 보내는 것이 기특하기만 합니다.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잠자고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먹는 것은 그리 만족하지 못하나 봅니다.

아직은 기숙사 밥보다 엄마가 해준 반찬에 더 익숙한데, 시간이 지나면 기숙사 밥에도 적응하겠죠? 아직 혼자 하늘을 날지는 못하지만 혼자 푸드덕 푸드덕 날갯짓을 하는 것을 보면 여간 대견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딸에게 보내는 밑반찬을 만들 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준비한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송고됐습니다.



태그:#기숙사, #딸, #교대, #어머니, #밑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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