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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없나요? 살려 주세요. 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 모인 사람들이 손에 든 플래카드 문구다. 26일 오후 7시 30분,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가 꾸린 명동 생명·평화미사와 기도회에 모인 이들은 4대강 사업 중단을 기도했다.

 

4대강 사업은 정치적인 문제에 말을 아끼는 종교계에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과 절박함을 갖게 했다.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에서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기도회, 법회 등을 꾸준히 열어왔다. 오늘 미사는 그러나 특별하다. 기한을 정해놓지 않은 '무기한 4대강 반대 미사'이기 때문이다.

 

매일 오후 7시 30분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사제단들이 자리할 것이고, 이들의 뜻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멈추고 생명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성명서를 낭독한 김정훈 신부는 "오늘부터 이곳에서 매일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할 것"이라며 "정부의 4대강 사업 중단과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가는 뭇 생명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 말했다.

 

김 신부는 "정부에게 4대강 사업 관련 TV 공개 토론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며 "온 국민이 4대강 사업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참가자들 "막을 수 있을 때까지 나오겠다"

 

300여 명의 사람들은 하얀색, 노란색, 하늘색, 땡땡이 우비를 입고 미사에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우비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는지 한 손에 우산을 따로 든 채 미사에 임했다. 그만큼 궂은 날씨였다. 폭우는 아니었지만 우산이 없다면 삽시간에 온 몸이 젖을 정도로 비는 꾸준히 내렸다.

 

우산으로 인해,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대열의 끝에 선 사람에게는 신부의 기도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서 있었다. 빗속에서 정렬하고 선 미사 참가자들에게서는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미사에 참석한 심영태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강한 뜻을 정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나왔다"며 "경제적 목적으로 흐르는 강을 인간의 힘으로 개발하고 계획 없이 이를 추진하려는 것은 후손이 살아야 할 땅과 강을 망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정부 우리농 대표이기도 한 심씨는 "강에다 쇠를 박고 시멘트를 들이붓는 것은 국토를 침탈한 일본이 한 짓 보다 더한 짓"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와 함께 미사에 와서 조용히 신부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던 이미희씨는 "얼마 전에 두물머리에 갔다가 그 주변이 4대강 사업으로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 왜 굴착기를 들이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함께 온 윤지영씨도 "현 정부는 개발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무조건 파헤치는 것만이 개발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막을 수 있을 때까지 이곳에 나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비오는 날 안 모이게 정치인들 잘 하세요"

 

천주교연대 집행위원장 서상진 신부는 "이곳에 많은 정치인들이 오셨다"며 "여러분들이 정치를 잘못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니 앞으로는 비 오는 날 안 모이게 정치 좀 잘 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서 신부는 "생명․평화 미사는 4월 28일 전주 쪽에서도 진행되고, 양수리 드물머리에서 매일 오후 3시에 미사가 있다"며 "5월 10일 이 자리에서 일 만인 생명․평화 미사 봉헌이 있을 예정이니 많은 참석 바란다"고 말했다.

 

미사에 함께한 정동영 의원은 "다들 정의를 위해서 이곳에 모이셨는데 4대강 사업은 정의가 아니다"라며 "어떤 권력도 진리 위에 설 수 없으니 정부는 겸허하게 종교인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정치를 제대로 못해 이 자리에 서게 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날 미사에는 이강래 의원, 천정배 의원, 문학진 의원, 조배숙 의원 등도 참석했다.

 

모든 미사가 끝난 후 명동성당 신자들의 모임인 사목회에서 나왔다는 이들과 미사를 준비한 사람들 간의 작은 충돌이 있었다. 사목회 측은 명동성당에 이르는 오르막에 설치한 화분을 미사를 하면서 잠시 옮겨 놓은 것을 두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목회 측은 "이랜드가 왔을 때도 똑같이 조금씩 조금씩 시설물을 치워가며 자리를 잡았다"며 "시설물을 건드리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미사 사회를 맡은 맹주형 환경사목위원회 교육부장은 "이렇게 신자들이 미사를 막는 것은 처음"이라며 "신자들이 무슨 구사대도 아니고…"라고 말을 흐렸다.


태그:#4대강 반대, #천주교 연대, #무기한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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