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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일번지', '전국 최고 부자도시' 등으로 불리며 국내 진보정치와 경제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울산이 요즘 시끄럽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 등 노동자들의 힘이 작용해 국회의원· 구청장 등을 다수 배출하며 이뤄낸 진보정치 일번지가 요즘엔 '비리정치 일번지'로까지 불리고 있다. 이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지역의 한 일간지가 벌인 '금품여론조사'가 기폭제가 됐다.

 

지난 한 달반 동안 울산에서는 한나라당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들의 여론조사 관련 금품 제공, 해당 일간지 사장 구속에 이은 관련 기초단체장 기소, 또 다른 혐의의 단체장 기소와 경찰 조사, 한나라당의 비리 연루자 공천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범야권은 여러차례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해당 기초단체장의 공천 배제를 요구해왔지만 한나라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야당, 노동계,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대학생들까지 나서서 연일 성토하고 있는 것은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만이 아니다. 태연하게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6.2 지방선거에 공천하고도 야권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태도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태연할 수 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한나라당은 비리 연루 기초단체장을 공천하지 않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밝혔다. 이는 비리든 뭐든 현역 프리미엄을 통해 얻고 있는 높은 인지도와 지지율, 그리고 이에 따른 당선 가능성을 야당에 빼앗기기 싫다는 것이다. 

 

범야권과 대학생까지 연일 비리 공천을 성토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십 수 년간 이어져 오던 기득권 세력의 관행에 대한 불만이 이번 금품여론조사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이 같은 관행의 원인에는 울산 깊숙이 자리 잡은 '토박이 권력독점'이 있다.

 

지역토박이가 권력 독점하는 이상한 풍토

 

국회· 지자체· 의회에서 울산 한나라당 지방권력을 독점하는 세력은 주로 지역토박이들이다. 그 핵심에는 지역내 J중, H고, U고라는 특정 학교 출신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국회의원을 정점으로 한 보스정치가 형성돼 왔다. 이러한 관행으로 현 국회의원, 시장, 구청장, 지방의원들이 이 테두리안에서 수십 년간 자리를 세습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난 세월동안 거의 (당명이 바뀌어 왔지만) 한나라당을 지지하며 한 배를 탔다.

 

이번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비리 연루 정치인들을 공천한 결정권자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이다. 지역 공천권을 좌지우지 하는 이들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토박이 권력의 최고 상위권에 있는 셈이며, 여권 정치인 혹은 지망생들이 이들 국회의원에게 줄을 서려고 한다는 것은 지역정가의 정설로 되어 있다.

 

지역 학계에서는 현재 110만명의 울산인구 중 본토박이는 15만~20만명, 외지인 출신은 나머지 90여만명으로 분석한다.

 

이같은 인구 비례에도 소수 토박이들이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권력과 정보 장악에 따른 부의 축적, 보스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상례적 정치조직화, 외지인들의 자포자기성 정치적 무관심 등이 배경으로 분석된다.

 

지금껏 지방선거 때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2년 뒤에 있을 총선을 염두에 두고 같은 지역구 내 조직망이 두텁고 충성도가 높은 인물을 자기사람으로 만들어 지방선거에서 공천해 왔다. 이번 금품여론조사 연루자 공천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이들 기득권 세력의 위기의식에 따른 집결현상에 따라, 지난 1997년 가까스로 동구 북구 구청장을 배출했던 진보정치 세력은 근래 들어 퇴보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 독점권력은 외부인들의 권력 접근을 경계한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도 비록 고향은 울산이 아니지만 수십 년간 울산에서 생활하며 지역발전에 참여해온 외지 출신 명망가들의 권력진입이 봉쇄당하고 있다.

 

한나라당 울산시당의 한 당직자는 "외지 출신의 능력 있거나 개혁적인 인사들의 지역정치 입문이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는 것이 지역 정치의 현실"이라며 "비리가 있어도 충성만 잘하면 공천한다는, 기득권에 대한 항변이 한나라당 내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저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의 이같은 권력독점 구조는 파행적 결과로 나타났다. 급격한 도시 성장으로 한 해 예산이 2조원을 훌쩍 넘은 울산시 예산집행이 제대로 견제받지 못한다는 것.

 

올해 울산시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전체 19명의 울산시의원 중 민주노동당 소속 4명의 시의원들이 삭감한 예산을 한나라당 소속 15명 시의원들이 고스란히 되살려 논란을 일으킨 것이 그 예다. 시민단체에서는 "독점 권력이 지방의회 기능까지 상실시켰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이로인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토목공사 비용에 대거 투입되면서 울산은 '재정 자립도 상위' 혹은 '전국 최고 부자도시'라는 닉네임에 걸맞지 않게 '학교급식 예산 전국 최저'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지역언론도 권력독점에 한몫

 

이번 금품여론조사에서 보듯 그동안 이들 토박이 권력독점에는 지역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해당 언론사의 경우 선거 관련 보도로 적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임 사장도 구속됐었다. 하지만 이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적발에 따른 불이익보다 여론조작에 동참하면서 얻는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을 역설한다.

 

지역언론들은 수시로 "울산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지인도 울산시민이라는) 정주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범야권에서는 "지역언론이 기득권력의 편에 서서 일방적 보도를 함으로써 오히려 정주의식을 저해하고 권력독점 분산의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두고 나타난 지역언론의 보도행태는 이를 대변해 준다.

 

산업발전에 따라 울산에 정착한 노동자, 진보지식인, 386운동권 세대, 민주의식을 가진 시민 등이 주축인 된 진보정당 혹은 야당을 대하는 지역언론의 보도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임상우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대변인은 "민주노동당이 최근 여러차례 여론조사를 한 결과 진보단일화로 선거를 치를 경우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하지만 지역언론은 놀랍게도 이 내용을 한 줄도 보도해주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납득가지 않는 행태"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역언론의 보도행태는 결국 지역권력이 장악한 지자체와 의회 권력에서 나오는 예산과 무관치 않다. 언론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역일간지 편집국장 "돈으로 길들이는 외부검열 심하다" 고백) 

 

30년간 언론에 종사한 울산 언론인 A씨는 "울산이 1997년 광역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언론은 정치권력 위에 있었다"며 "하지만 급격히 늘어난 지자체 예산과 부자도시로 지칭되듯 늘어난 울산의 금력이 지금은 언론을 지배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창규 민주노총 울산본부 국장은 "한나라당이 비리 공천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쇼를 벌이고 있지만 일부 언론들은 이를 아무런 비판 없이 톱뉴스에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시민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며칠전 울산 모 일간지의 사설에 '야권이 자신의 유불리만 따지고 잿밥에만 눈이 멀어, 야권연대에 실패하고 있다'는 고언과 직언을 했다"며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 일간지의 사설 어디에도 비리혐의 구청장들을 또다시 공천하는 한나라당의 행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언론의 균형 있는 보도를 요청한다. 시민들을 위해 냉철한 눈과 입이 되어 달라"며 "일부 언론의 검찰비리에 대한 고발로 인해 검찰개혁의 신호탄이 터진 것처럼 권력토착비리 근절의 신호탄이 울산에서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번 금품여론조사 과정에서 보듯 지역독점권력 테두리 안에 속한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하는 '토착비리 척결' 대상에는 사실상 멀어져 있어 과연 대통령의 토착비리 척결이 누구를 향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이재성 민주당 울산시당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토착비리를 근절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토착비리 근절이라는 단어는 한낱 헛구호에 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지역 권력독점 배경은?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정치풍토, 오만의 극치 불러"

지난 1962년 울산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공업특정지구로 지정됐다. 울산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절경의 바다와 천혜의 명산이 앞뒤를 둘러싸고 있는, 인구 10만여 명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농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공업특정지구 지정 이후 울산에는 최대 규모의 조선소, 자동차, 석유화학 공단이 속속 들어 섰다. 넘쳐나는 일자리와 재화를 얻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외지인이 합류하면서 인구 6만의 소도시는 불과 30년만에 경제가 가장 좋은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가 된다.

 

이 사이 진행된 대규모 개발에 따라 땅을 소유한 토박이 땅부자들이 속출했다. 울산시 자료실에 보관된 지난 신문보도에 따르면 개발지 선정 과정에서 토착세력의 개입에 의한 갖가지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들 땅부자들이 부를 축적한 후 관심을 돌린 곳이 정치다.

 

체육관 선거의 추제인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울산지역 토박이들을 정치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제공했다. 70년대 이 과정과 80년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서도 이들 토박이 유지들의 권력진출은 이어졌고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되면서 지방의원이라는 합법적인 권력구조가 토박이 세력들을 주축으로 형성된다.

 

특히 울산이 1997년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에 이어 전국에서 7번째로 광역시가 되면서 이들 토박이 권력들의 독점은 더욱 광역화된다. 경상남도 소속이던 울산정치권은 광역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중앙정치로 진입하면서 권력독점을 세습화한다.

 

이들은 '권력독점-예산권 독점-부의 독점'이라는 순환을 거듭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반책, 통책, 동책' 등으로 정치조직을 활성화하며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정치풍토를 조성해 왔다. 이런 정치풍토는 이번 금품여론조사와 같이 비리와 민심반영은 중요도에서 밀어내 버렸다.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활동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울산지역 기득권력은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이었다"며 "지난 수십년 간 작대기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지역주의 풍토가 오만의 극치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박석철 기자는 '울산광역시 승격 백서'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울산금품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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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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