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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등 했어요. 헤헤
 우리가 1등 했어요. 헤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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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가기 위해선 어떤 학생도 고3 생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3에게는 쉴 수 있는 여건도 박탈된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고3의 현실이다. 가지 않으려 해도 밀물에 떠밀리듯 가야한다. 그러다 보니 '고3병'이라는 새로운 병명도 생겼다.

아이들은 공부를 해도 불안하고 하지 않아도 불안하다고 하소연한다. 성적이라도 잘 나오면 안심이라도 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시험이나 모의고사 시험이 끝나면 눈물을 훔친다. 여학생들은 특히 더 그렇다. 그런 아이들에게 농담을 건네 웃게 한다. 그렇지만 농담에 얼굴은 웃어도 마음은 웃지 못하는 게 우리 아이들의 실정이다.

3학년 담임을 맡자마자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덜 지치게 할까 하는 게 고민이었다. 그것도 토요일도 없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공부가 아닌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건 없을까 생각한 것이 토요일에 점심 만들어 먹기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토요일 점심으로 김밥을 싸온다. 그것도 엄마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김밥집에서 사온 것이 대부분이다. 몇몇 아이들은 라면을 사먹든가 빵 하나와 우유로 때우기도 한다. 점심이 부실하다. 그래서 아이들과 상의하여 쉬는 토요일 점심은 모둠을 나누어 점심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먼저 아이들과 협의가 끝나자 지난 3월 학부모 총회 때 나온 부모님들께 취지를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수능을 보기 전까진 긴 여정이 필요합니다. 부모님들이 좀 귀찮겠지만 아이들 건강과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점심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준비 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총회에 참석지 못한 모든 부모님들에겐 문자를 보내 협조 요청을 했다. 사실 요즘 부모님들 아이들 도시락 싸주는 것도 귀찮다 하는 분들이 많은데 밥 만들어 먹을 거 준비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도시락 싸는 것보다 편하다.

아이들은 각자 준비할 것만 가져오면 된다.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땐 어떤 아이는 밥, 어떤 아이는 김치, 어떤 아이는 고추장. 어떤 아이는 들기름, 어떤 아이는 콩나물 무침, 어떤 아이는 양푼을 준비한다. 그렇게 각자 해먹을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다 보면 우정도 돈독해지고 교실 분위기도 좋아진다.

지금도 각 학교 현장에선 왕따나 은따(은근히 따돌리는 것) 같은 것이 은연중에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학기 초 담임을 맡으면 아이들에게 가장 신경을 쓰는 일이 그런 일이 있나 없나 파악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만나 생활하다보면 자기들끼리 속칭 뒷담을 까는 일이 벌어지고 이것이 나중엔 '따'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이들과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면 그런 것들은 자연스레 사라짐을 볼 수 있다.

비빔밥 속에 버무려진 아이들의 풋풋한 마음들

점심시간에 만들어 먹는 비빔밥이 먹음직스럽다.
 점심시간에 만들어 먹는 비빔밥이 먹음직스럽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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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마지막 토요휴무일 점심시간, 교실은 웃음과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로 가득하다. 책상 네 개를 맞추고 각자 가지고 온 음식재료를 꺼낸다. 그리고 가장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이것도 고추장 양을 조절하기도 하고, 들기름이나 참기름 양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떤 모둠의 비빔밥이 맛있게 만드나 슬쩍슬쩍 훔쳐보기도 한다.

비빔밥이 완성되면 시식의 시간이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네 밥을 먹어보고 맛을 평가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우리 꺼 어때요? 맛있죠?"
"그래 맛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다시 한 번 드셔보세요. 제가 떠 드릴게요. 자, 아~~."

그러면서 한 숟갈 듬뿍 떠서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맛있다는 표정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정말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때서야 히히거리며 좋아한다.

그렇게 여섯 모둠을 한바퀴 돌다보면 배가 부르다. 도시락을 사오지 않은 옆 반 아이들도 와서 한 잎씩 먹고 간다. 아이들은 양푼보다 커다란 그릇에 비빈 밥들을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먹는다. 자신들이 만든 풋풋한 마음들을 서로서로 나눠 먹으며 입시준비에 찌든 스트레스를 던져버린다. 아이들이 떠먹는 한 숟가락의 밥에는 웃음과 기쁨이 들어있다.

이게 점심시간에 만든 음식이라고?

김밥 싸는 모습. 미리 준비한 재료를 이용하여 아이들이 직접 김밥을 싸는데 대부분 처음 싸본단고 한다.
 김밥 싸는 모습. 미리 준비한 재료를 이용하여 아이들이 직접 김밥을 싸는데 대부분 처음 싸본단고 한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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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다음 토요일엔 뭘 해먹을까?"
"선생님! 다음엔 조별로 각자 정해서 먹게요."
"네, 그래요. 다르게 해먹게요."
"알았어. 그럼 너희들끼리 상의해서 준비하도록 해. 기대한다."

두 주의 시간이 흐르고 쉼토의 점심시간. 아이들이 점심을 만들어 먹는 관계로 점심시간을 넉넉히 주었다. 아이들은 부산하게 움직인다. 각 모둠에서 만들어 먹을 종류도 각각 달랐다. 순지네 조는 삼각김밥을 만든단다. 다혜네는 유부초밥, 다능이네는 샌드위치, 진아네는 김밥, 현지네는 주먹밥이다.

본격적으로 아이들이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기 전 칠판에 이렇게 썼다.

"오늘 최고로 멋진 음식을 만든 모둠은 시상하겠음. 상품은 0000원. 심사는 맛과 모양, 그리고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는 조에게 돌아감."

순지네가 만든 삼각김밥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김밥을 만들었다. 신김치의 사각사각 씹는 맛이 일품이다.
 순지네가 만든 삼각김밥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김밥을 만들었다. 신김치의 사각사각 씹는 맛이 일품이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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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의 내용을 보자마자 좀 더 일찍 알려주지 왜 당일에 알려 주냐며 몇 몇 녀석들이 입을 삐죽 내민다. 당일이 아닌 며칠 전에 알려주었으면 좀 더 신경 써서 재료를 준비할 거 아니냐는 푸념이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점심을 준비한다. 진지함과 즐거움이 함께 한다. 진아네는 도마와 커다란 부엌칼까지 가져왔다. 이 녀석들은 김밥을 만들자마자 바로 입속으로 들어간다. 만드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동시에 만끽한다. 그중에 가장 예쁘게 자른 김밥 하나를 유미가 가져와 입에 넣어준다.

"맛있죠?"

그러면서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맛있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다. 다혜네도 유부초밥을 다 만들었다. 녀석들도 젤 잘생긴 초밥을 골라 입에 넣어준다. 그 초밥을 받아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속으로 망설였다. 유부초밥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우리가 초밥 밋있는데.....
 우리가 초밥 밋있는데.....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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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열차 속에서 유부초밥 하나 사먹고 배탈이 나 고생을 엄청 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난 유부초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아니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입에 넣어주니 안 먹을 수도 없다. 한 입 받아 우물거리는데 다시 옛날 기억이 떠올라 입속을 간지럽힌다. 그래도 표정은 웃는 표정과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맛없는 표정을 지으면 그 순간부터 난 이 녀석들에게 미움털이 박히고 만다. 심하면 은따를 당하기도 한다.

다능이네는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인기가 최고다. 맛없어 보이는데 엄청 맛있다. 온갖 재료를 다 넣었는지 지금까지 먹어본 샌드위치와는 달랐다. 아이들이 몰려와 하나씩 들고 가자 함박웃음이다.

다혜네 아이들이 만든 유부초밥. 인기짱인데 난 하나만 겨우.....
 다혜네 아이들이 만든 유부초밥. 인기짱인데 난 하나만 겨우.....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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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네는 주먹밥을 만들었는데 이제껏 본 주먹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맛은 물론 모양까지 깔끔하고 예쁘다. 내가 생각하고 먹어본 주먹밥이라야 김가루 넣고 버무려 주먹만하게 만든 것이 전부다. 그런데 조리사를 꿈꾸는 현지와 모둠 아이들은 주먹밥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그럼 맛은? 때깔 좋은 게 맛도 좋다고 맛도 그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날의 요리상을 받은 순지네 삼각김밥이다. 이날 맛과 모양, 그리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은 순지네에겐 상금과 상장을 주었다. 상장 이름은 '짬짬이 맛나게 만든 요리상'이다.

순지네는 다양한 모양의 김밥을 만들었다. 물론 주 메뉴는 삼각 김밥이다. 이 외에도 김밥 안에 햄이나 신김치를 다져 넣기도 하고, 김치를 위에 올려놓고 김으로 예쁘게 테두리를 하기도 했다. 하나 입에 넣으니 김치와 신맛과 상큼함이 입맛을 돋우었다. 그러나 이번에 상을 받은 이유는 맛보다 사진에 있다. 아이들이 만든 음식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이들의 의견을 물어 가장 멋진 포즈를 취한 순지네에게 상을 주게 된 것이다.

다능이네 아이들이 만든 샌드위치. 보기에는 엉성해도 맛은 그만이다.
 다능이네 아이들이 만든 샌드위치. 보기에는 엉성해도 맛은 그만이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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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한 끼의 양식을 정성껏 만드는 동안 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음식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사진을 찍어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진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우리반 아이들에게 마지막 여고 시절의 추억을 남겨 주기 위해서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의 여러 모습을 담아 놓아 학급앨범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다. 밥 만들어 먹기도 일종의 추억여행이다. 딱딱하고 지루하기만 한 입시공부에 지친 아이들. 그런 우리 반 공주들에게 짬짬이 여고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어서다.

이렇게 맛있게 생긴 주먹밥 봤나요. 주먹밥 위에 햄을 놓고 김으로 테두리.... 요리사를 꿈꾸는 현지네가 만들었다우
 이렇게 맛있게 생긴 주먹밥 봤나요. 주먹밥 위에 햄을 놓고 김으로 테두리.... 요리사를 꿈꾸는 현지네가 만들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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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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