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8, 18…. 다산 정약용의 생은 '18'로 통합니다. 강진으로 유배 와서 18년을 살았죠. 다산초당에서 제자 18명을 길러냈죠. 유배에서 풀린 뒤 18년을 더 살다 생을 마감했어요. 그뿐인 줄 아십니까? 그를 유배 보낸 사건이 신유박해인데, 1801년에 일어났으니 여기에도 18이 들어가 있잖아요. 유배생활을 끝낸 것도 1818년으로 18이 두 번 들어가 있죠. 이렇게 다산 정약용은 숫자 18과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얼마 전,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만난 답사여행 전문가 조상열(53) 씨의 얘기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1995년 문화단체인 '대동문화'를 창립한 이후 문화유산을 찾아 발품을 팔아오고 있다.

 

현재 광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답사여행 전문단체인 '사단법인 대동문화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조 씨는 '남도 홍보대사', '남도문화 지킴이'를 자임하고 있다. "가장 남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그의 진가는 남도답사 현장에서 빛을 발휘한다.

 

답사객들과 함께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찾아간 그는 읍성과 도성, 산성, 장성의 차이로 얘기 보따리를 풀어내더니 자연스레 건축물 얘기로 넘어간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곳이 낙풍루(樂豊樓)입니다. 낙풍루, 식영정, 명옥헌…. 어떤 건물에는 '루'가 붙었고 어떤 건축물에는 '정'이 또 '헌'이 붙습니다. 대체 이 건축물들의 차이가 뭘까요?"

 

이야기를 듣던 답사객들은 많이 들어 귀에 익은 명칭이지만 자신 있게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다 의미가 달라요. 루(樓)는 2층으로 된 다락집 구조입니다. 관아의 연회장소나 군의 방어지휘소 등으로 쓰였어요. 보십시오. 이곳도 2층이잖아요. 정(亭)은 단층 건물이에요. 높은 곳에서 산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지은 집입니다. 또 전(殿)은…."

 

답사객들은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조 씨의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 들어가고 있다.

 

"사람에게 이름처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제 본명이 '조선남녀상열지사'인데, 너무 길어서 '조상열'로 줄여 부르고 있습니다만, 제 이름 석자는 저의 명예입니다. 건축물도 마찬가지에요. 저마다의 이름이 있고 특징이 있어요. 이것을 제대로 알고 불러줘야죠."

 

사람의 이름이나 직위를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예의이듯이 건축물의 명칭도 정확히 불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문화유산을 대하는 예의라고.

 

이처럼 그는 세월 속에 묻혀있던 문화유산들에 얽힌 얘기들을 천부적인 입담으로 답사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준다. 답사객들의 성별과 나이, 직업 등에 따라 해설방식을 달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면에 숨어있는 정사와 야사를 적절히 섞어 답사객들의 눈을 모으고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것도 그가 지닌 별난 재주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답사객들은 해박한 지식과 구수한 입담, 야사와 정사를 적절히 섞은 스토리텔링이 압권이라며 '끼를 타고 난 잡놈', '전라도의 보배'라 치켜세운다.

 

답사객을 대상으로 한 해설 못지않게 조 씨의 일상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남도문화를 주제로 한 특강이다. 그의 강의 또한 청중들을 사로잡는다. 한문과 역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다 답사에 발품을 판 전문가답게 가는 곳마다 현장감이 살아있고 강의가 맛깔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남도문화 특강은 서울과 부산, 제주 등 전국을 무대로 펼쳐진다. 중앙과 여러 지방의 공무원교육원을 비롯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가족부, 국토해양부 등 정부부처와 전국의 대학, 기업체 등 각급 기관·단체를 넘나든다.

 

기업체의 사원연수 프로그램에 답사여행 바람이 분 것도 그의 공력이 크다. 지난 2002년 현대자동차 본사의 제안을 받아 우수사원 부부 500쌍을 대상으로 문화유산 답사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성공사례로 꼽히면서 현대계열사로 확대되고 다른 대기업체까지 확대된 것.

 

이렇게 남도를 다녀 간 기업체 임직원들이 친지 등 다른 사람들과 모임을 꾸려 다시 남도를 찾고 해설을 부탁해 온 것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가 이처럼 특강과 답사 등 공식적인 공간을 통해 남도의 문화유산을 소개한 횟수만도 대략 1000여 차례나 된다.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주말, 휴일에도 그렇게 남도를 누비고 다닌 셈이다.

 

이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도 어마어마하다. 외지인들이 남도에 와서 여행경비와 특산물 구입 등으로 쓴 비용도 비용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홍보효과를 감안하면 말로 다 표현하기 버거울 정도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남도가 정말 경쟁력 있는 여행상품이라는데 동의했습니다. 무심코 지나친 주변의 못난이 장승과 잡초에 덮인 바위 무덤, 흙 한 줌에도 소중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때 묻지 않은 남도의 자연풍광에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문제는 사람입니다. 전문 해설사들이 이것을 흥미롭게 풀어줘야죠."

 

그의 말에 의하면 남도는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거리 등 여행을 위한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곳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이것을 효과적이면서 흥미롭게 풀어가 보배로 만들어내는 일은 해설사가 해야 하고, 그들의 역할에 남도여행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해설사들이 역할을 제대로 했을 때 남도의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새롭게 살아나고, 남도민의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 남도는 역사와 문화유산이 주된 여행상품입니다. 그래서 해설 없이는 감동을 주기 힘들어요. 갈수록 여행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해설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훌륭한 해설사가 진짜 여행상품이 될 겁니다. 남도문화관광의 미래가 인재양성에 달려 있습니다."

 

그의 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태그:#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답사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