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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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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방이었다. 조용했다. 입구에는 '노크후 들어오세요'라는 간단한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서울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교수연구실. 지난 14일 오후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68)를 만났다. 몇해 전 서울대 연구실과 경기도 산본의 자택에서 만났을 때와 또 다른 분위기였다.

"연구실이 아담하고, 좋다"고 인사하자, 김 교수는 "조용해서 공부하기는 좋다"며 웃으며 답했다. 그는 지난 2008년 서울대에서 정년을 마치고 성공회대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교수 은퇴 이후 서울대 경제학과에는 더이상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가 없다. 30명 넘는 교수들이 이른바 주류경제학자로 채워져 있는 셈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김 교수는 '금융공황'이라 부른다)이후, 그는 더욱 바빠졌다. 경제위기의 근본원인과 처방을 두고, 기존 주류경제학이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곳곳서 <자본론>을 다시 읽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 역시 서울대를 나온 이후, 성공회대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일반인과 노동자를 상대로 <자본론>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을 강의하면서, 현 금융공황의 원인과 진단을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최근에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과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두리미디어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책도 펴냈다. 나이 70을 앞둔 노(老)교수의 활동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김 교수는 "작년 11월부터 수개월동안 밤샘작업을 하면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청소년'이라는 딱지를 붙이긴 했지만, 이번 책은 대부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돼 있다. 특히 수많은 관련사진과 그림, 도표 등은 그동안 시중에 나온 어떤 책보다 풍부하다. 또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한 원인과 해법 역시 이들 책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

"실업자 400만 명 시대, 실업률 15.1%"

그와 마주앉아 책 페이지을 넘겨보던 기자에게, 김 교수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책을 도통 잘 읽지 않는다"면서 "사회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친구들인데…"라고 말했다. 이어 "이젠 고등학생도, 일반인도 현 사회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해야 한다"면서 "이번 책을 쓰게된 것도 그 때문이고… 출판사쪽 편집진이 책 만드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뒤쪽을 보니까, 한국의 실업률을 조사하셨던데요.
"(책을 넘기면서) 아…그랬지요."

- 지난번 인터뷰 때 정부 실업률 통계가 엉터리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직접 계산을 하셨군요. 처음이시죠, 이렇게 계산하신 것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정부가 잡는 실업자를 보면 이해가 안되는 게 많지요. 취업준비생이나, 그냥 쉬고 있는 사람들도 (실업자로) 잡지 않아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지요."

- 선생님께서 내놓은 실업자 수가 400만 명에 이른다는 것은 이 분들을 포함한 수치군요.
"정부의 공식적인 실업자 121만6000명이에요. 여기에 취업준비생 59만 명, 쉬고있는 사람들 153만5000명, 구직단념자 19만6000명, 36시간미만 노동자 가운데 취업희망자 45만9000명을 합하면, 399만6000명이지. 실업률로 계산하면 15.1%가 나오는 거지요."

이야기는 자연스레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5.2%로 높여 잡았다. 물론 14개월째 2.0% 초저금리를 유지한 채로 말이다. 김 교수는 "도대체 누굴 위한 금리 결정인가"라고 반문했다. 그의 이야기다.

"국가재정만 축내고, 특권계층의 이익만 채우는 경제정책"

카를 마르크스 묘지 앞에 선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카를 마르크스 묘지 앞에 선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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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를 저렇게 낮게 가져가면 결국 누가 이득이 되겠어요. 돈 꽤나 있는 부자들은 은행에서 돈 빌려다가 주식이나 땅, 아파트 투기를 하잖아요. 은행가들은 예금 이자는 낮춰놓고, 대출이자는 올려놓고 말이지, 금융위기때 손해본 거 메우고 있고…."

김 교수는 "금융자본가들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경제 위기가 왔는데, 정작 그 피해는 노동자들만 입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들에 대한 규제보다는 국민 세금을 퍼다 주면서 오히려 재정만 축내고, 특권 계층의 이익만 채워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얼마 전에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재산을 발표했는데, 이들 상당수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가지고 있더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사람은 거기 아파트를 몇 채씩 갖고 있다고 하던데… 엄청난 국민 돈을 풀어놓고, 우리가 가장 빨리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야. 고위 공무원이 됐든, 일부 부유층이나 대기업가, 금융자본가들이나 좋아하지… 대부분 노동자나 서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 정부는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미국 등 국제공조를 이야기하면서 출구전략에 부정적이라고 하는데요.
"(곧장) 정부 말대로 경제가 그렇게 빨리 회복되고 좋아졌으면 금리를 올리는 게 맞지. 미국의 핑계를 대는 것은 말이 안돼요.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니까, 금리를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거지. 이런 식으로 가게되면 인플레이션 등 경제가 순식간에 총체적 위기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는 이어 지난 8일 미 행정부 경제조사국의 자료를 건네보였다. 김 교수는 펜으로 경기변동 사이클을 그려가면서, "미국은 지난 2007년 12월 경기 호황기의 접점을 찍고, (경기가) 계속 하강국면"이라며 "올 4월까지 29개월째인데, 거의 1930년 공황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동결은 이같은 상황에 따른 것이라는 것. 

"국민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금융공황 벗어날 수 있어"

- 금융권에선 올 11월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아요.
"(목소리를 높이며) 도대체 그런 정상회의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 G20이 지금껏 해놓은 것이 뭐가 있나. 말 잔치만 그럴듯하게 하고 있지, 아무것도 없어요. 경기 불황기에선 자기 나라 이익만 내세울 수밖에 없지. 국제공조가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없어요."

김 교수는 "G20 정상회의 진행하면서 막대한 돈이 들어갈텐데, 차라리 그 돈 가지고 다른 유용한 것에 쓰는 것이 낫다"면서 "무슨 핵 정상회의도 유치했다고 하지만, 괜히 북한만 자극하고, 남북문제만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와의 이야기는 현 경제위기의 극복과 대안으로 넘어갔다.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의 본격적인 경제학 강의가 이어졌다. 특히 주류경제학자들에 의해 경제학의 시조로 여겨져 온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인상 깊었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와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들면서 그를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주의자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국부론>을 전혀 잘못 읽은 거예요. 아마 스미스가 살아있다면, '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가 아니다'라고 소리쳤을지 몰라."

그의 말을 좀더 적어본다.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원저 카를마르크스,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원저 카를마르크스,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 두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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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한마디로 혁명가였어요. 그의 경제사상은 매우 진보적이예요. 당시 국왕과 정부가 일부 상인과 제조업자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에 반대하고 이같은 특권을 없애라고 했어요. 또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을 허용함으로써, 번영과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방임이지요. 우리처럼 재벌의 규제완화가 자유방임으로 이해되는 것과는 반대지요."

김 교수는 이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지금처럼 상업이나 금융노동자 등 비생산적 노동자가 증가하는 것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 시장만능주의자와 스미스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스미스가 강조하는 것은 독점적 위치에 있지 않은 개인이나 기업이 정의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부라는 국민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선 생산적 노동자가 늘어야 하며, 개별 자본가들이 하인 등 비생산적 노동자를 고용하지 말고, 소비를 절약하고 저축을 늘려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만능주의자 중심의 주류경제학으로는 현재의 금융공황을 극복하기 어렵다"면서 "정부가 부자 뿐 아니라 빈민, 서민, 노동자 등 모두가 잘사는 정책을 펼쳐야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에 대해 물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말하면서,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새로운 사회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죠. 우리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만들어가는 겁니다. 지금 실업자 문제나, 빈부격차나 사교육비, 대학 등록금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지요. 또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기본생활은 할 수 있는 소득을 사회가 보장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서로 더 많이 연구하고, 행동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모델을 만들면 되지요."


태그:#김수행, #금융공황, #자본론, #국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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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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