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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 자료사진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 자료사진
ⓒ 한국워크캠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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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대에게 이 한 몸 다 바쳐 운동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한홍구 교수가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에서 던진 질문이다. 이어 "그런 친구들도 아주 드물게 가끔씩 있기는 하겠지만, 대다수는 88만원 세대로서 취직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평한다.

사실이다. 이를 바라보는 기성세대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안타깝게 보거나, 이 경우 대부분 한숨을 동반한다. 또는 한심하게 여기거나, '쯧쯧' 혀 차는 소리다. 그러면서도 관찰자 시점에서 벗어나려 하는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한 교수의 이어지는 '당위'는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다만 자기 이익만을 마음껏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공동선을 함께 증진하는 방법을 찾고, 또 자기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대를 해야만 자기 이익을 실현할 수 있구나 깨달아야 하겠죠."

개인 이익과 사회의 공동선을 함께 증진하는 방법을 찾았나

해피무브 3기 이기풍씨
 해피무브 3기 이기풍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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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 발음조차도 숨을 '턱' 닫히게 만드는, 이른바 스펙이 사람을 짓누르는 세상에서?

헌데 그런 청년들을 지난 17일 만났다.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청년들이었다. "봉사야말로 경쟁력 있는 스펙"이라고 했고, 당당하게 "좋은 기회를 이용한 것뿐"이라고도 했다.

대기업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선입관을 깨는 말이기도 했다.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 한국해비타트, 한국워크캠프기구 등 글로벌 NGO와 함께 전개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이다. 연간 1000명 규모의 대학생들이 중국·인도·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펼친다. 이제까지 4기를 배출했다.

이기풍(26)씨는 한양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3학년을 마치고 현재 휴학 중이다. 해피무브 3기로 작년 여름 중국 쓰촨 지진 피해지역에서 집짓기 봉사 활동을 했다. 홍익대 영어교육학과 2학년 정태준(24)씨도 같은 봉사 활동을 했다. 다만 장소는 브라질, 해피무브 4기로 올해 초 다녀왔다.

아 참, '지하벙커'에 계셨던 분들과 달리 모두 병역을 필한 건강한 청년들이다. 마음은? 어디 여행 간다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는 굉장히 찔려서 이제까지 모두 '알바'로 마련했다는,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친구도 있다는 정도만 일단 밝혀둔다.

음악만 나오면 항상 춤추자는 그들, 그 순간 순간이 즐거워

- 일단 왜 해피무브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정태준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군대를 갔다. 함께 봉사하는 그런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어 아쉬웠다. 복학하고 해피무브 모집 광고를 봤는데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더라. 경비 지원도 다 해주고, 해외 여행도 갈 수 있고, 또래 중에 괜찮은 사람들도 많이 모일 것이라 기대했다."

이기풍 "돈 좀 많았으면 좋겠고, 주어진 환경이 불만족스럽고, 그렇다고 엄청 탓한 건 아니다(웃음), 그런 마음이 많았는데 군대 가기 직전 한 달 정도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그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나의 변화가 너무 좋았다. 그런 경험을 이어보고자 지원했다."

어쨌든 몸 편한 여행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기후나 음식 문제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배수로 파기, 시멘트 바르기, 현장 청소 그리고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고 새로운 기반 만들기 등 작업으로 녹초가 됐다고.

그러면서도 즐거웠다고 했다. "해비타트는 단순히 어려운 사람한테 집을 그냥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비를 장기간에 걸쳐 나눠 냄으로써 집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집에 들어갈 사람과 함께 힘을 합쳐 집을 짓는 과정 하나 하나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했다.

정태준 "음악만 나오면 항상 춤을 춰야 하는 것 같았다. 노래를 듣지 않는다(웃음). 그리고 다가와 어깨동무하면서 같이 춤추자고 한다. 그들의 문화를 배우자고 간 건데, 어쩌겠나. 처음 한두 번은 부끄러웠지만, 익숙해지니까 우리도 알아서 함께 춤을 추게 되더라. 그런 순간 순간이 즐거웠다."

"치열한 경쟁은 사실, 오히려 그렇다보니 팀플 열풍"

해피무브 4기 정태준씨
 해피무브 4기 정태준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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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지만 아주 다른 삶을 살고 돌아온 셈이다. 다시 차가운 현실과 마주친 기분은 어떠했을까. 김예슬 선언처럼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 뻔한데.

- 우리나라에 돌아와 공항 바깥으로 나갔을 때, 어떤 생각이 처음 들던가.
정태준 "일단 춥더라(웃음). 브라질에 있다 왔으니까. 그 시간이 꿈 같았다. 딱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면서 이제 현실이구나, 끝이 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기풍 "거기서 찍었던 사진들 파일 이름을 모두 '한 여름밤의 꿈'이라고 붙였다. 정말 꿈꾸고 돌아온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같이 갔던 친구들과 어떻게 헤어지나, 너무 정들었는데, 서글프기도 했다."

-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 사회에 인간적인 정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정말 그런가?
정태준 "경쟁이 치열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다 보니 효율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뭔가를 많이 한다. 함께 하는 스터디, '팀플'이 열풍이다. 인간적으로도 많이 가까워지고, 교류를 지속하기도 한다."

이기풍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뭉치는 건 좋은데, 서로 필요에 의해 그렇게 하다 보니, 정이 없다는 걸 많이 느낀다. 팀을 짜서 뭘 해결하고 나면, 다시 자기 일만 하기 바쁜 그런 것? 그리고 좀 잰다고 말해야 하나? 이 사람과 얼마나 가까워져야 하는지,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고 …"

"봉사활동은 내 인성을 쌓아주는 마음의 스펙"

- 혹시 해피무브로 스스로 변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기풍 "사람이 급변하진 않는다. 보름 정도 기간으로 완전 딴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은 못하겠다. 다만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함께 뭔가 성취하고 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됐던 정말 좋은 기억이 하나의 모티브로, 가슴속에서 계속 영향을 미침을 느낀다."

정태준 "무엇보다 봉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그 전에는 내 돈 좀 주고, 내 시간 좀 줘서, 어려운 사람 좀 도와주자, 이런 식이었다. 지금은 도움을 받는 사람과 함께 즐기면서 서로 행복한 게 봉사라고 생각한다. 봉사가 된장이란 말이 있더라. 맨 처음에는 이게 뭐야, 접근하기 좀 그렇지 않나. 그런데 한두 번 먹다 보면 막 빠져드는 것. 뭐랄까, 내 삶의 일부처럼 됐다."

-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이기풍 "돈 많이 벌고, 어떻게든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게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특히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분들은 남을 밟고 일어서려 하지 않는데, 굉장히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는 걸 봤다. 또 하시는 일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게 바꾸는 것 아닌가. 성공의 잣대가 많이 바뀌었다."

-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친구들은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봉사에 쓴다? 손해 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정태준 "학교에서 대기업 취업 설명회가 열리곤 한다. 한 번은 모 그룹 인사과장이 와서 그랬다. 내가 당신들을 뽑는 사람이다, 요즘 대학생들 '스펙, 스펙'하는데, 거기에 연연할 것 같냐, 절대 아니라고. 사회 생활을 잘 할 인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활동을 하는 것, 그럼 이것이 스펙 아닌가. 보이진 않지만 경쟁력 있는 스펙.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기풍 "정말 봉사활동은 손해가 아닌 것 같다. 내 인성을 쌓아주는 마음의 스펙이다. 물론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드러나진 않지만, 그 사람 말 하나, 행동 하나에서 다 드러난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생각해주고 그러는 것. 그렇기 때문에 봉사활동으로 손해본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남들이 만든 잣대를 따라가거나 짧게 보지 않았으면...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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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이 해피무브 참가 학생들을 의견을 다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도 "현대기아차 입사에 도움될 것 같아, 혹은 하나의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지원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 친구들에게 아마 해피무브는 이미 '종료형'일 것이다.

하지만 두 친구는 해피무브 '출신'들로 구성된 전국지역봉사단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 숫자는 3백명에 이른다고 한다.

- 끝으로 지금도 '스펙 경쟁'에 내몰리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기풍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길 바란다. 책에서도 많이 얻지만, 그보다는 사람들과 직접 부딪쳐 가며 더 많이 느끼고 성장하는 것 같다. 사회가 정해 놓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를 따라가지 말고, 자기 인생을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젊은이가 됐으면 좋겠다."

정태준 "흔히 취업해야지,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는 것 같다. 짧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가 정말 시작 아닌가. 그냥 그렇게 입사하면 금방 흥미를 잃을 거라 본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끝까지 힘을 내고 즐겁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그:#봉사, #여행, #청년실업, #대학생, #해피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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