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원사 벚꽃길은 황홀했다. 지난 14일 남도로 향하는 길에 벚꽃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만개한 나무도 있고 이미 져버려 황록색 잎이 나온 나무도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전남 보성. 게다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대원사 벚꽃길을 가야 하니 벚꽃이 이미 져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사실 벚꽃 개화시기를 정확히 맞추기는 어려웠다.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봄날씨 때문이다. 

 

보성에는 벚꽃이 아주 많았다. 잠자리도 정하고 해수녹차탕에도 갈겸 율포를 향해 가는데 벚꽃이 길마다 서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목욕을 하고 미리 정해 놓은 숙소로 돌아오는데 하늘에서 뭔가가 흩날리고 있었다. 깜깜한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차가운 물기가 자주 얼굴에 와닿는 게 꼭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이 남녘인데 설마 눈이 오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녹차밭(대한다업)으로 향했다. 꽃도 피고 새잎도 나는데 바람은 여전히 차고 매서웠다. 녹차밭 계단을 오르며 옆을 보니 녹색 잎 위에 뭔가가 하얗게 쌓여 있었다. 설마, 눈은 아니겠지, 했는데 다가가 보고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하얀 눈과 함께 살얼음도 얼어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목련나무 아래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목련꽃은 피었다가 이미 시들어가는데 봄을 만나러 왔는지 군데군데 꽃잎이 떨어져 내린 그곳에 눈이 천연덕스럽게 버티고 앉아있었다.

 

추위도 녹일겸 우전차 한 잔 마시러 녹차전시장에 들렀다. 녹차밭 홍보물을 보고 있던 우리 신랑, 찻물을 부어주는 아가씨에게 묻는다.

 

"녹차 잎 오늘은 안 따나요?"

 

갑자기 녹차잎 따는 사진을 보더니 궁금증이 동한 모양이었다.

 

"아직은 잎이 나오지 않아 딸 수가 없네요. 지금 드시는 우전차는 지난해 딴 거거든여."

"그럼 언제 따나요?"

"글쎄요, 전에는 5월 초쯤이면 땄는데, 어젯밤 눈이 왔잖아요. 그래서 아마 올해는 좀 늦지 않을까 싶은데요."

 

봇재다원을 지나는 길에도 벚꽃은 만발해 있었다. 나무들도 움틀꿈틀 새순을 내며 봄을 맞이하는데 눈이라니, 3월에 내린 눈은 봤어도 4월 중순에 쌓여 있는 눈을 보자 자꾸 눈 생각만 떠올랐다. 아무래도 꽃이 보고 싶었거나, 아니면 꽃을 시샘하러 온 것 같다. 

 

이번에는 꼭 제2 다원에도 가보기로 했다. 봇재다원에서 영천제를 지나니 넓은 들녘이 펼쳐졌고, 들녘에는 봄을 맞이하는 아낙들이 모여 앉아 바쁘게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날씨가 고르지 않아 농사도 힘들다는데 여럿이 모여 일하는 것을 보니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제2 다원은 회천면 회령리에 있다. 산밑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차밭은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왔다. 제1다원에서는 쌓인 눈도 볼 수 있었지만 이곳은 확트여 있어  봄이 더 가까이 느껴졌다. 어느덧 쌀쌀하던 날씨도 햇빛을 받아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차밭에서는 봄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태그:#벚꽃, #대원사 벚꽃 길, #보성 녹차밭, #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