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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마중나온 지지자들과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마중나온 지지자들과 함께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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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결과는 '무죄'. 그러나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언론에 무분별하게 유출하면서 한명숙 전 총리는 도덕성에 흠집이 생겼다.

검찰은 재판부 선고는 물론 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을 언론에 흘려줬다. 이 때문에 그동안 뇌물수수 의혹은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9일 오후 재판부는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곽 전 사장이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무죄'라고 해도 일단 정치인 뇌물 사건이 터지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것이 일반적 정서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유권자들은 '돈은 받았는데 증거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평소에 청렴한 이미지가 강했던 만큼 피해가 더욱 크다.

게다가 판결이 나오기 하루 전인 8일 별건 수사 피의사실이 언론을 타고 새어나왔다. 이날 언론사들은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한 전 총리가 고양시에 있는 건설사로부터 9억원 가량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이 있다"면서 해당 건설사 압수수색을 벌인 사실을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한명숙 정치공작 분쇄 공동대책위원회'는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사건 수사진을 고발한 바 있다.  한 전 총리는 "검찰이 범죄를 저지르는데 피의자가 출석해 조사받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소환에 불응했다.

2009년 '노무현 명품시계', 2010년 '한명숙 골프채'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검찰의 행태가 뇌물수수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태훈 교수는 "수사가 부실하니까 피의사실을 공표해서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피의사실이 보도되고 도덕성 논란이 일면 아무래도 판사가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한 전 총리는 물론 정세균 민주당 대표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물론 정부 여당에서도 피의사실 공표 및 유출이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 전 총리 수사와 관련,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경위야 어떻든 피의사실이 유출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소장파인 남경필·원희룡 의원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찰을 비판한 바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지난 3월 18일 검찰제도 개선과 관련, 피의사실 공표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로 형을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 비판을 감안해 현행 규정('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보다 2배 가량 법정형을 높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새벽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며 소회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선을 다했다"고 답한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새벽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며 소회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선을 다했다"고 답한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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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판 여론이나 형량 강화만으로는 검찰에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비난은 뜨거웠다. 한마디로 정치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피의사실 공표 행태는 되풀이됐다.

이번 수사에서 보여준 검찰의 태도는 노 전 대통령 때와 유사하다.  지난해에는 갑자기 '1억짜리 명품시계 선물' 의혹을 들고 나온 검찰이 올해에는 '1천만 원 골프채 선물' 문제를 언론에 흘렸다.

"정권 바뀌기 전에 검사장 되는 것이 목표"

문제는 검찰 시스템에 있다. 정치 사건을 기소할 경우 승진 등의 이익이 뒤따르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을 맡은 검사들은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는 분석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검찰은 기본적으로 행정 공무원이고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면서 "고위 검사들은 이번 정권에서 검사장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 때문에 정권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고 구조의 한계를 지적했다.

하태훈 교수는 "많은 검사들이 (정치적 사건을 기소하는) 그런 기회를 원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검사도 한 건 잡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PD수첩>, 미네르바 등 정치적 사건에서는 피의사실은 물론 피의자 신상정보와 개인 이메일 등이 유출됐다. 이에 대해서도 비난이 일었지만, 수사 지휘를 맡은 검사들은 대부분 영전했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검사들로선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피의사실 공표로 처벌을 받은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한나라당 안대로 법정형이 늘어나도 실효성이 없으니 솜방망이인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월 노 전 대통령 피의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고발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등에 대해 '죄가 안됨'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범죄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논리를 들었다.

결국 검찰을 견제할 수사기관이 없으면 피의사실 공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검찰이 스스로를 수사하는 셈인데 처벌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조국 교수는 참여정부 때 추진됐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를 다시 강조했다. 검찰에게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은 빼버리고,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고비처장이나 특별검사를 임명하자는 것이다.

조 교수는 "고비처가 검찰을 수사해야 검찰도 정치적 시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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