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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는 3월 1일자로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원능력개발평가(이하 교원평가)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사작전 같이 전개된 교원평가 전면시행 지침은 교원의 인사와 평가 등을 규정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에 시행근거가 받침이 되고 있지 않아서, 여전히 위법적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훗날 국회에서 통과되어 법률적 근거를 갖춘다고 해도 또 여전히 비교육적 절차에 의한 비교육적 정책이라고 본다.

법령에 의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관계로 광역교육청 자율시행이란 단서를 달았으나, 말이 좋아 자율이지 교과부의 국고 교부금 등을 담보로 한 자율이라는 의미이므로 광역교육청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재량권을 행사할 여지가 없었다.

교원평가 그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평가를 하겠다고 교과부 스스로 내민 평가항목들이 너무 치졸하며 탁상공론 행정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아이템들로 도배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이므로 제대로 된 평가를 하도록 현실적인 평가항목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교과부는 교원평가를 시행하는 목적을 "교원의 전문성 향상"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평가 시스템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지는 시행매뉴얼 및 평가항목들을 살펴보면 감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교과부에서 시행하겠다고 하는 교원평가는 동료교원 평가, 학부모 만족도 조사, 학생 만족도 조사의 3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제 평가는 말 그대로 동료교원 평가뿐이다. 나머지 2개 영역은 그야말로 평가가 아닌 만족도 조사에 불과하다. 그럼 교원평가의 핵심을 이루는 영역은 오직 동료교원에 의한 평가 하나 뿐인데, 증등의 경우 평가항목이 무려 230개나 된다.

다시 동료교원 평가는 18개의 세부 카테고리로 구성되며, 교육과정, 교과분석, 전략수립, 수업도입, 교사발문, 교사태도, 상호작용, 자료활용, 수업진행, 학습정리, 평가방법, 평가활용, 개인문제, 가정연계, 진로특기, 기본생활, 학교생활, 민주시민이 그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교원은 수퍼맨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연수에 참여하여 수퍼맨이나 원더우먼이 되기 위한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그나마 이마저도 성과급과 연계하지 않는다고 했었으나, 4월 6일 대통령자문 국가교육과학기술 자문회의는 교사의 수업내용을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방안과 교원평가 결과를 교사들의 인사 및 성과급 수준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도 아울러 건의하였다. 결국 그렇게 가려고 방향을 잡고 이렇게도 서둘러서 졸속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나 보다.

이 대통령은 "소수의 비리 선생님 때문에 전체 선생님들이 모두 잘못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게 안타깝다"면서 "좋은 선생님은 평가하고 그에 맞는 인센티브를 주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교에서) 사무보조 인력을 뽑으면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고 선생님들도 잡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대통령 발언의 키워드는 인센티브로 결국 다시 경쟁논리, 시장논리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사무보조 인력과 교원평가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기에 느닷없이 일자리 창출과 잡무해방과 같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말들로 퍼즐 맞추기를 하자는 것인가?

이미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임기내 코스피 종합 주가지수 5000포인트까지 올리도록 하겠다,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해 인재과학부로 하겠다, 고등학교 모든 교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도록 하겠다는 등의 깜찍한 발상들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시더니 취임 이후에는 4대강 사업의 시행으로 34만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등의 현란한 말의 잔치만 앞세우고 있다. 그런데 지금 또 사무보조 채용으로 교원의 잡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공언한다는 말을 믿으란 말인가?

교원은 수업 이외에도 학생생활지도, 업무분장에 의한 행정업무 외에도 이제는 에듀파인이라고 하는 회계 및 자산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업무가 더 늘었으며, 고등학교는 올해부터 e-포트폴리오라고 하는 해괴한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학생들 이력관리도 해 주어야 하며, 별도의 독서관리 프로그램을 운용해야 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학생생활기록부가 페이퍼에서 SA(스탠드얼론)와 CS(클라이언트서버)를 거쳐 NEIS로 진화하면서 학생생활에 관한 기재사항은 통합되어 가는 분위기였으나 이제는 다시 거꾸로 NEIS와 교육행정시스템을 다시 미분해서 각각의 독립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나눠 줄 모양인가 보다. 학교의 성격이 교육기관에서 교육행정기관으로 바뀌어 가는 느낌이 든다. 그것도 부족해서 지금과 같은 방식의 교원평가 역시 잡무를 가중 시키는 또 하나의 짐을 등에 올리는 것에 불과하며, 마른 수건을 쥐어짜려고 하는 것만 같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유능한 교원이란 수업내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며, 학생 개개인의 기능 수준에 맞춰 그룹별, 수준별 수업을 실시해야 함과 동시에 발문 역시 학생 수준을 고려해서 해야 한다. 수업방해 행동에 대해 적절히 대처해야 하며, 이 경우에도 질책보다는 칭찬을 많이 해야 함과 동시에 학습부진아나 소외된 학생들이 학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야 한다.

수업시간을 잘 준수하고 학습단계별로 시간의 안배가 적절해야 하므로, 수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농담이나 여담 따위를 가지고 시간을 소비해서도 안 된다. 범교과 공히 약물 오남용의 폐해와 심각성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야 하고, 가출 및 가출 징후 학생에 대한 선도활동 역시 강화해야 하며, 수시로 국제 시민윤리 교육도 시행해야 한다.

또한 학생지도에 있어 공익을 위해 협동하고 봉사하는 정신을 기르도록 지도도 해야 하는 등의 대단히 추상적인 평가 아이템들 230개가 현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새로운 것이 아닌 교사의 일상적인 업무범위에 포함되어 있던 것들인데 세세한 업무를 다 펼쳐서 일일이 평가하겠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평가항목은 도대체 무엇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오리엔테이션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방향설정이 묘연한 평가항목은 결국 부실한 평가와 온정주의식 결과를 양산해 낼 것이며, 평가를 위한 평가로 전락해 버릴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문제점을 바로 잡겠다고 학부모 만족도와 학생 만족도가 슬쩍 학부모 평가와 학생 평가라는 이름으로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행 평가항목은 한 마디로 폐기되거나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한 명의 교사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관리자 1명 이외에 동료교원 3명이 평가위원이 되어 동료교원을 평가하기 위해서 평가 보다는 오히려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해야만 한다. 개인별로 200개가 훌쩍 넘어가는 평가항목으로 인해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방대해지며, 이로 인해 평가결과를 통계처리하기 위한 프로그램 공급업체가 생기게 되고, 또 이 업무를 담당해야 할 담당교원이 생겨야 함과 동시에 교원들은 평가를 받기 위해 파생되는 각종 잡무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전혀 논리전개의 프로세스가 갖추어지지 않은 민망한 행정들로 격무에 지친 교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 무늬만 페스탈로찌인 사람들이 늘 말하기 좋아하는 명품교육과 수요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원의 권리는 줄어들고 의무는 나날이 늘어만 갈 것이다.

교원평가 매뉴얼에 나온 이러한 평가항목은 대단히 비교육적인 전시행정의 표본이며,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처럼 허례허식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실학의 관점에 맞는 평가영역 조정이 필요하다. 평가 영역을 수업 영역, 생활지도 영역, 전문성 향상 영역, 근태 영역, 행정업무 영역의 5개 영역 정도로 최소화 시키고, 각 영역 아래의 세부 항목 역시 7~8개 내외로 조정한 범주에서 평가를 시행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본다.

만일 A라는 교사가 동료교원 3명의 평가를 해야 한다면 수백 개 항목에 달하는 평가표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고, 지나치게 세분화한 평가표 자체에 멀미를 일으켜 건성으로 평가를 하게 될 공산이 크기에, 실제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항목으로 구성된 평가도구를 개발하여 교원평가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평가항목이 지금처럼 잡스럽지 않고 최소화된 문항이라도 아주 실질적인 지표들로만 구성이 된다면 교원능력 개발평가가 뿌리를 내리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교원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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