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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사를 방해하러 온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기록을 하러 왔을 뿐이에요. 지금은 공사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해서 다시 강을 원상으로 돌려놔야 할 때가 오면, 그 때 이전 강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 '낙동강, 더 늦기 전에 기록해 둬야겠다' 기사 중

낙동강 공사현장을 답사하던 지율 스님이 출입을 제지하던 공사 관계자에게 한 말이다. 푸르른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던 4대강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지율 스님의 행보는 숭고하다. 하지만 위의 말은 4대강 사업은 추진되고 있으며, 4대강을 포함하는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운동이 '방어적'인 것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또 하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새만금 갯벌은 결국 다 마르게 했다. 이로 인해 갯벌 생태계의 파괴가 이루어진 것은 물론이고,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주민들은 대부분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멍하게 매말라 버린 '갯벌 아닌 갯벌'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새만금을 놓고 환경운동 진영은 강력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강해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방조제는 완공되고 말았다. 간척사업의 중요한 이해당사자였던 일부 주민들은 간척사업을 통해 지역경제의 발전을 기대했고, 환경운동 진영이 주장한 환경보호·생태보전의 가치로는 이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새만금 갯벌 보전운동의 실패는 '실패'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보전운동으로의 전환기'가 되어야 할 필요성이 요청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건에 대한 기억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환경 파괴의 사안에 대한 방어적 대응의 차원을 넘어, 환경·생태계 보전과 주민들의 삶이 조화롭게 연결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안 담론·정책을 바탕으로 하는 생태지향적 모델의 구축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3월 23일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갯벌센터에서 열린 '황해생태지역 지원사업(YSESP: Yellow Sea Ecoregion Support Project-이하 YSESP) 착수보고회'는 그러한 노력들 중 중요한 출발점일 것이다.

YSESP는 한국과 중국의 사이에 있는 황해(Yellow sea)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보전을 위해 한중일 세 나라가 진행하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갯벌의 보전은 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압록강에서, 우리나라는 전남 무안에서 YSESP 시범사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생태지평연구소'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며, '한국해양연구원'과 '세계자연보호기금 일본지부(WWF Japan: World Wide Fund for Nature Japan)'와 '파나소닉'이 지원하게 된다.

발제자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 황해생태지역 지원사업 토론회 발제자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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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갯벌'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갯벌은 강물이 바다로 운반한 펄과 모래가 밀물과 썰물에 의해 바닷가로 다시 밀려와 쌓인 평탄한 지형이다. 갯벌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환경이 바뀌어 생물종의 다양성이 특히 높아지기 때문에 독특한 생태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서남해안 갯벌은 캐나다 동부해안, 미국의 동부해안, 북유럽 해안, 아마존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이다. 이는 한국의 서남해안의 경우 바다로 유입되는 강이 많고, 해안선이 복잡하며,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갯벌이 생성되기에 좋은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닷물이 빠져 드러난 갯벌에 석양이 비추고 있다.
▲ 무안갯벌 전경 바닷물이 빠져 드러난 갯벌에 석양이 비추고 있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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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갯벌의 가치는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1㎢ 당 39억 19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갯벌의 가치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의 관점에서 수치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갯벌은 육지와 해양이 만나는 점이지대라는 점에서 생물종이 다양하고, 영양염류가 풍부하여 어패류의 서식지로 이용되며, 또한 풍부한 먹이로 인해 철새들의 서식지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일이나 홍수 등의 재해를 막는 완충기능을 가지며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적 가치도 크다. 또한 관광과 후세대들의 생태교육의 현장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적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갯벌 중에서도 무안갯벌은 국내 최초로 갯벌습지 보호지역,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순천갯벌에 이어 두 번째로 람사르 습지 제1732호로 등록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무안갯벌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생태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독일의 마렌지크 박사는 "무안습지는 들녘, 갯벌, 바다와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아름다운 삶터"라고 극찬했다고 한다(무안갯벌 생태아카데미 강의 교재).

국내 최초의 갯벌습지보호지역
▲ 무안갯벌 국내 최초의 갯벌습지보호지역
ⓒ 국토해양부 연안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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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갯벌센터에서 열린 '황해생태지역 지원사업 착수보고회'는 이러한 갯벌을 보전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날 착수보고회에서는 한국해양연구원의 김웅서 박사가 YSESP사업을 소개하고, WWF Japan의 토바이 사다요시(Tobai Sadayosi)씨가 황해보전을 위한 한·중·일 협력사례를 소개한 후 생태지평연구소의 장지영 연구원이 무안에서 시행할 YSESP 활동계획을 발표했다. 이어서 '시민모니터링 매뉴얼', 'YSESP와 해양보호구역 관리센터 추진사업과의 협력 필요성', '무안생태갯벌센터의 운영 현황', '민-관 협력의 중요성'의 내용으로 지정토론이 이루어졌다.

WWF 재팬의 토바이 사다요시(Tobai Sadayosi)가 황해보전을 위한 한ㆍ중ㆍ일 협력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토바이 사다요시(Tobai Sadayosi) WWF 재팬의 토바이 사다요시(Tobai Sadayosi)가 황해보전을 위한 한ㆍ중ㆍ일 협력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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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참석자들은 무안이 YSESP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가장 중요한 요인을 '지역 주민의 활발한 참여'로 꼽았다. 무안생태갯벌센터가 있는 용산마을은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주민참여 활동을 통해 '갯벌 보전을 통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주민공동체가 협력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황토갯벌 용산마을 영농조합'의 창립은 그것의 결실인 동시에 상징이며, 미래를 위한 가능성이다.

생태지평연구소 장지영 연구원은 자치조직인 '황토갯벌 용산마을 영농조합'으로 대표되는 지역주민들과 NGO, 그리고 무안생태갯벌센터를 포함하는 중앙/지방 정부와의 연계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이는 각 주체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거버넌스'를 통해 갯벌 보전과 지역발전의 연계를 위한 대안적 발전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생태지평연구소가 올해부터 시작하는 YSESP는 1)생물다양성 관리 2)거버넌스 관리 3)지속가능한 이용 관리의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1)은 무안갯벌 시민모니터링 시행 및 체계 구축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2)는 무안-신안-순천 협력 워크숍을 통해 갯벌센터 관리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갯벌생태 교안 제작의 과정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3)은 주민교육 및 지역자원 개발을 위해 갯벌 요리교실 및 갯벌 관광상품 공모전, 한-일 갯벌지역 교류를 통해 추진된다.

토바이 사다요시씨 또한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들과 생태지평연구소를 중심으로 하여 관련 연구자 및 기관들과의 소통 및 협조가 더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의 발제 또한 이러한 내용을 공유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의 김경완 연구원은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성이 중요"함을 지적하며, 그러한 자발성을 바탕으로 특정 소수의 전문가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해양수산개발원의 육근형 박사는 '무안생태갯벌센터'의 역할과 연계의 중요성을 지적했으며, 해양환경관리공단 해역관리팀의 이나무와 전라남도 해양항만과의 김호진은 주민과 (지방)정부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수를 치며 앞으로의 일을 다짐하는 참가자들
▲ YSESP 착수보고회 및 토론회 참가자들 박수를 치며 앞으로의 일을 다짐하는 참가자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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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날의 참가자들은 YSESP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주민-NGO-(지방)정부의 네트워크 구축이 핵심적이라는 것을 공유했다. 무안지역에서 이루어질 YSESP사업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적 대안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인 동시에 가능성일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새만금'을 만났을 때, '새만금이라는 이름만 남은 운동'을 다시 펼치게 되어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한 '운동'일 것이다.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 더 나아가 사람들이 함께 웃고 생태계의 생물들이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생태사회를 위한 운동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태지평연구소 홈페이지(ecoin.or.kr)에도 게재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YSESP, #황해생태지역 , #생태지평, #무안갯벌, #갯벌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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