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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공사를 철재 대신 목재 거푸집을 이용했다
 기초공사를 철재 대신 목재 거푸집을 이용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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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집자리를 정해 놓고 터파기 작업과 동시에 기초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흙 한 삽 뜨지 못하고 고흥에서 다시 공주로 올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며칠 사이 기초공사라도 도와주겠다던 막내 동생은 비행기 시간에 맞춰 인도로 떠났고 집을 지어주기로 한 이윤구씨마저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 달 보름쯤 걸릴 겁니다. 그때 가서 시작하시죠."
"급할 거 없으니께 천천히 일보고 와요. 근디 한 겨울에 추워서 집 짓겠슈?"
"고흥은 춥지 않아서 괜찮아요."

윤구씨가 다른 현장에서 집 짓는 일을 하는 동안 아내와 나는 어려서 일찌감치 목수 일을 시작한 고향 친구로부터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철거하는 중고 건축자재상을 소개 받았습니다. 창호, 현관 문, 변기, 세면기 등 모델하우스에서 나온 건축자재들은 말끔했습니다. 중고라 하지만 새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새 자재에 비해 가격도 절반이 채 안 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새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 아무리 새것이라 해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중고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자재만 멀쩡하면 그만이지요. 고향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일단 통나무 주택 짓는 일을 하는 처가에서 구할 수 없는 몇 가지의 건축자재들을 찜해 놓았습니다. 

예정대로 한 달 반 만에 윤구씨에게서 기초공사를 시작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윤구씨와 약속 시간을 정해놓은 하루 일찍 아내가 챙겨 준 밑반찬을 비롯해 세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도시락을 싸들고 고흥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뒤따라오기로 했습니다.

집을 짓고 나면 우리 식구가 평생 정붙이고 살게 될 마을에 사글세방을 잡아 놓았는데 목수들이 오기 전에 미리 방 청소라도 해놔야 했습니다. 애초에 윤구씨 스스로가 아주 적게 책정한 인건비에 먹고 자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너무 미안해 사글세방을 따로 마련해 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고흥으로 내려가던 길에 기르던 닭 몇 마리를 챙겨 김민해 목사님이 교장으로 있는 전남 순천의 평화학교에 들렀습니다. 집을 다 짓기 전에 닭장에 남아 있는 닭들을 처분해야 하는데 목을 비틀어 잡아먹자니 영 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녀석들이 평화학교 아이들을 위해 알을 낳고 병아리를 품으면 좋을 듯싶었습니다.

이전에도 고흥으로 내려가기에 앞서 평화학교에 몇 마리의 병아리를 풀어 놓았는데 벌써 알을 낳고 있다고 합니다. 김 목사님은 학교에서 김장을 했다며 시집간 딸 챙기는 친정어머니처럼 김장 김치며 집된장에 마른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었습니다.

평화학교에 닭을 풀어놓고 고흥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문득 이제 충남 공주 시골집에서 함께 지냈던 것들과 하나하나 이별이구나 싶었습니다. 닭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질 좋은 유정란에 닭고기, 어디 그뿐입니까, 채소밭을 거름지게 해준 계분에 이르기까지 아낌없이 내 주었던 닭들이었습니다.

12월 중순, 전남 고흥 마복산 정상 부근에서 만난 철모르는 진달래
 12월 중순, 전남 고흥 마복산 정상 부근에서 만난 철모르는 진달래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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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새 터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큰 도로를 접어두고 마복산 산림도로를 탔습니다. 12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철모르는 진달래가 피어있는 마복산 능선을 올라타자 산과 바다가 어우려진 절경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뿐만아니라 바다를 끼고 있는 고흥 곳곳이 절경입니다. 거친 입심과는 달리 후덕한 사글세방 주인 할머니는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끼니부터 챙겼습니다.

"밥은 먹었소?"
"지금이 몇 신디 아적도 안 먹었겠슈."
"하두 소식이 없길래 지랄하고 안 오는 줄 알었소이."
"집 짓는 사람이 일이 있어서 늦었슈."

사글세방을 소개받을 무렵 처음 만난 이후 두번째 만남이었는데 할머니의 속없는 거친 입심 덕분에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 큰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살겠다고 지어 논 방인디요이. 지랄하고 살지도 않고..."
"지금 어디 있는디요."
"순천에서 버스운전 안하요... 그나저나 여기까지 와서 뭣해 먹고 살려구 그러요."
"바다 일해서 먹고 농사 져서 먹고 또 글 써서 먹고 살지요."
"우리 할아버지도 글씨를 썼는디 천하고 천한 게 글 쓰는 일이라니께, 바다에 나가믄 먹을 것이 생기고 돈이 생기는 디, 글씨 쓰는 일은 돈도 밥도 생기지 않소. 그런 일을 지랄하고 뭐라 허요."

일찍이 세상 떠난 할아버지는 한문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한문 글씨를 써가며 동네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주고 농사일이나 바다 일은 건성건성 했다 합니다. 땅마지기 처분해 가며 팔자 좋은 세상 살다갔다 합니다.

"나하구 나이차가 너무 나서 일찍 가부렸지만 그려도 영감 없응께 허전허요."
"우리 아버지도 환갑 지나서 돌아가셨는디."
"각시는 몇 살여?"
"저하고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디요."
"몇 살 차이 안 나는 구만."
"제가 수염이 허여서 많이 나는 줄 알았쥬?"
"나처럼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믄 말년이 쓸쓸 안허요......"

홀로 생활하는 할머니는 끊임없이 한탄을 쏟아냅니다.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살아온 세월을 밑도 끝도 없이 쏟아내는 것은 나하고 꼭 닮았습니다.

밖에는 바다 바람이 휑하니 불어옵니다. 할머니의 앞니는 세월에 견디지 못해 휑하니 죄 빠져 나갔습니다. 나는 나이 오십에 앞니 몇 개를 틀니로 감쪽 같이 바꿔 놓았지만 팔순을 넘긴 할머니의 앞니는 그냥 비워져 있습니다. 할머니와 살아온 나날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저녁 먹어야제? 나가 금방 채려 올테니께 그대로 있소이."
"아뉴, 할머니 말씀은 고마운디 마누라가 도시락 싸 줬슈. 안 먹으면 상해요."

아내가 싸준 보온 도시락을 챙겨 야밤에 새 터로 나섰습니다. 보온 도시락은 적어도 세 끼를 때울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터를 구하러 나설 때마다 늘 도시락을 지참하고 다니며 궁상맞게도 바닷가에서 산속 깊은 곳에서도 홀로 도시락을 까먹곤 했었습니다.

밥숟가락을 입안으로 넣기 전에 몇 숟가락을 고시래 해가며 내일 굴삭기 작업으로 천지가 진동하게 될 것을 터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 또다시 죄를 고했습니다. 덧붙여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빌었습니다.

꾸역꾸역 배를 채우고 나서 밤바다로 나섰습니다. 밤하늘은 별빛 가득 총총했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점퍼 깃을 올려 담배를 꺼내 물다가 문득 학생 시절 매년 찾아 가곤 했던 민박집 섬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민박집 손님이 찾아오면 장대를 메고 앞장서 갯바위 낚시터로 안내하던 그 소년은 30대 중반을 넘겼을 것입니다.

내게 물었습니다. 삽시도 민박집 소년처럼 세상일에 지친 사람들이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안내자가 될 수 있을까? 영화 속의 주인공 옆으로 낚싯대에 망태기 메고 있는 듯 없는 듯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 행인처럼 살 수 있을까?  

내게 바다는 안식처이자 도피처였습니다. 반복되는 현실이 지겨울 때 마다 훌쩍 떠난 곳도 바다였고 학창 시절 총학생회에서 활동하다가 수배자 명단에 올라 도망치듯 떠난 곳도 바다였습니다. 친구들이 지하실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말입니다.

20여 년이 흘러 또 다른 바다 앞에 서 있었습니다. 겨울 바다바람이 거세게 얼굴을 후려칩니다. 더 이상 달아날 곳도 없습니다. 바다는 이제 평생을 살아야 할 운명처인 것입니다. 잠시 머무는 안식처나 도피처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거센 바람을 피하지 않고 그렇게 오랫동안 바다와 마주 서 있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윤구씨는 서울에서 도시설계사 일 그만두고 이제 마악 목조주택 일을 시작했다는 이성훈씨와 함께 새 터로 찾아왔습니다. 30대 후반의 성훈씨는 이제 19개월 된 딸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성훈씨와 세상사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글세방 함석지붕이 우다닥 우다닥 큰 소리를 냅니다. 우박이라도 떨어진 줄 알고 밖에 나가 보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 때문에 공사에 차질이 생길까 싶어 걱정이 앞서는데 윤구씨는 태평하게 누워서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부지런히 건축자재의 품목을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위해 면소재지로 나설 무렵 다행히 비는 그쳤고 때맞춰 대전에서 내려온 김종수씨가 합류했습니다. 성품이 시원시원한 종수씨는 낚싯대까지 챙겨왔습니다. 횟감을 담당하고 있다는 그는 집 짓는 틈틈이 바다낚시를 할 모양입니다.

새터에서 가장 가까운 면 소재지의 밥집들을 끼웃거리며 집 짓는 기간 동안 신세 질 만한 곳을 물색했는데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식당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큰일 났네, 고흥 읍내는 너무 멀고, 아침 식사를 어떻게 하쥬?"
"걱정 마세요. 식당이 많은데 아침 식사할 만한 곳이 없겠어요?"

한 식당을 점찍어 놓고 정을 붙이다 보면 아침밥을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국각지를 떠돌며 집을 짓고 있다 보니 그만큼 세상 물정에 밝은 윤구씨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 면 소재지로 떠났고 나는 한 끼 분량이 남아 있는 보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낫을 들고 연못 주변의 잡목들을 정리하다가 다 낡은 모터 펌프를 발견했습니다.

정확히 8시에 맞춰 도착한 굴착기를 이용해 농업용 관정이 묻혀 있을 만한 자리를 찾아내 모터 펌프와 연결했더니 물이 꽐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앞집 박 선생은 관정을 파는 데 80만원을 들였다고 하는데 모터와 관정까지 합치면 백만 원 이상을 절감한 것입니다. 하지만 농업용 관정이기에 식수로 가능한지가 미지수였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새터에서 예전 밭주인이 쓰던 낡은 모터 펌프와 관정을 얻어 물을 뿜어 올렸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새터에서 예전 밭주인이 쓰던 낡은 모터 펌프와 관정을 얻어 물을 뿜어 올렸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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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바람이었지만 철 모르는 풀꽃들이 굴착기 작업에 떨고 있었습니다.
 바람도 바람이었지만 철 모르는 풀꽃들이 굴착기 작업에 떨고 있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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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로 터파기 작업을 하고 있는데 무당벌레 한 마리가 눈에 잡혔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굴착기 작업장을 피해 저만치 밭 가장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12월 중순은 고흥에서는 겨울이 아닌 모양입니다. 철모르고 나돌아 다니는 무당벌레처럼 풀꽃들 역시 겨울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새 터 주변에는 온통 풀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위에 지방은 겨울로 접어들면서 꽁꽁 얼어붙고 있다는데 아랫녘 고흥 땅은 여전히 초가을 날씨였던 것입니다.

납작 엎드려 사진기를 들이대고 풀꽃들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찬 기운이 없는 연한 바람에 풀꽃들이 떨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이 떨고 있는 것은 단지 바람 때문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녀석들에게는 굴착기 작업은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일 터이니까요.

오후 늦게 기초공사에 쓰일 철근이 도착했습니다. 철근 1톤에 70만 원. 앞집 박 선생은 2년 전, 집을 지을 당시 철근 값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톤 당 백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물상들이 값 비싼 철근을 사재기하다가 폭삭 망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뒤이어 정화조가 도착했습니다. 삼사 년 전에는 15만 원 정도 했다는데 10인 용 정화조가 무려 40만 원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예상했던 돈이 새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정을 파는 데 백만 원 정도를 절감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산 착오는 따로 있었습니다. 큰 정화조를 묻어 놓고 몇 년에 한 번씩 한꺼번에 퍼 낼 심사로 값비싼 10인용을 주문했는데 알고 보니 일 년에 한 번씩 필수적으로 퍼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새로 바뀐 법이라고 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법이었습니다. 누구말로는 오래 두면 둘수록 오폐수가 가라앉아 정화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데 무엇 때문에 매년 퍼내야 할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터 파기 작업을 할때 집 짓는 책임자 윤구씨는 굴착기 기사와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터 파기 작업을 할때 집 짓는 책임자 윤구씨는 굴착기 기사와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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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 그쪽을 까내리면 안 된다니까 자꾸만 그러시네."
"아따 괜찮다니께 그러요."

집 짓는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윤구씨는 굴착기 기사와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윤구씨가 원하는 대로 터 작업을 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방향을 잡고 고집스럽게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터를 좋게 다지기 위한 다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불안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기초를 단단히 하려면 맨 땅이 나올 때 까지 겉흙을 거둬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높은 곳의 흙을 지대가 낮은 집 자리로 옮겨 쌓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참견하고 싶어 입이 달싹거렸지만 윤구씨를 믿고 꾹꾹 눌러 참았습니다. 막내 동생이 인도로 떠나면서 신신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형! 일하는 데 절대로 참견하지 말어. 윤구씨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런데 작업 종료 1시간을 남기고 그만 굴착기가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평탄 작업이 채  나지 않았는데 걱정이었습니다. 굴착기 기사 조합에서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고 합니다. 그 시간을 어기면 조합에서 제명 처리된다는 것입니다. 평탄 작업을 다 끝내지 못하면 굴삭기를 반나절 더 써야 할 것이었습니다. 고장 난 굴착기를 둘러보던 기사 아저씨가 분통을 터트립니다.

굴착기가 고장 나 '굴착기 조합의 규정'을 어기고 늦은 밤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굴착기가 고장 나 '굴착기 조합의 규정'을 어기고 늦은 밤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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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눔의 전자식은 지랄여. 뭐 하나 잘못 되면 그냥 멈춰 버린다니까."

결국 굴착기 회사의 젊은 기사분이 득달 같이 달려왔고 한참 만에 고장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아주 단순한 고장이었습니다. 시동 거는 부분의 연결선 피복이 벗겨져 합선이 되는 바람에 램프가 나갔다고 합니다. 피복선을 수리하고 램프를 갈아 끼우니 다시 시동이 걸렸습니다. 이미 작업 종료 시간인 5시를 넘어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굴착기는 '조합의 규정시간'을 어기고 불을 훤하게 밝혀 하루 분량을 말끔하게 끝냈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작업한 것이 미안해 38만 원을 달라는 것을 40만 원을 채워 건네줬더니 무척이나 고마워합니다. 비록 큰돈은 아니었지만 2만 원의 웃돈은 돌고 도는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 돈은 인건비를 적게 책정한 윤구씨가 내준 돈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구, 고흥 땅 정말로 멀구만."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작업장을 나서는데 경북 구미에서 한참을 달려왔다는 정창영씨가 합세하여 목수는 4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뒷일을 도와주는 나까지 합세하면 모두 5명이 집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저녁 9시가 다 되어 도화면에 자리한 민정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민정 식당은 아들 이름을 따서 간판을 내걸었다고 하는데 푸짐한 상차림을 보면서 비로소 이곳이 음식 인심 후한 전라도 땅임을 실감했습니다.

상차림에서 비로소 이곳이 음식 인심 후한 전라도 땅이구나를 실감했습니다.
 상차림에서 비로소 이곳이 음식 인심 후한 전라도 땅이구나를 실감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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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밥값이 한 끼에 6천원. 대도시에 비해 비싼 편이었습니다. 도화면에 있는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행히 민정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서자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사글세방으로 돌아와 다들 집으로 안부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을 나선 지 겨우 사흘에 불과한데 나 또한 가족들이 그리워졌습니다. 전화를 걸다가 문득 작은 아이 인상이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미역국은 먹었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생일이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가 되묻기라도 하는 듯 별 감흥 없이 대답합니다.

"응."
"아빠가 전화도 안 걸고 섭섭했지?"
"아니, 괜찮어."

그게 전부였습니다. 우리 식구는 본래 무슨 무슨 기념일 따위를 요란하게 챙기지 않는 편입니다. 어쩌다 누군가 늦게 귀가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온가족이 밥상머리 앞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목수 초보자인 성훈씨가 이른 아침 식당에서 아직 잠 기운이 남아 있는지 크게 하품을 합니다.
 목수 초보자인 성훈씨가 이른 아침 식당에서 아직 잠 기운이 남아 있는지 크게 하품을 합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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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집 짓는 목수들은 휴대폰 알림 소리에 맞춰 6시 30분에 일어나 7시쯤에 밥을 챙겨 먹고 8시부터 본격적으로 기초공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일을 더 많이 하겠네요?"
"겨울이나 여름이나 일하는 시간은 다 똑 같아요."

해가 짧은 겨울, 해가 긴 여름 따로 없이 사계절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오전 오후 4시간씩 하루 8시간을 일한다고 합니다. 

오전에 목재가 도착했습니다. 목수들은 그 목재를 이용해 틀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기초공사를 위한 거푸집으로 쓰이게 될 틀이라고 합니다. 기초공사는 내가 예상 했던 것과 사뭇 다른 공법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초공사의 거푸집은 철제를 사용하는데 윤구씨는 목재로 거푸집을 만들어 거기에 펌프카를 이용해 콘크리트를 쏟아 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콘크리트의 압력에 못 이겨 그 목재틀이 터져 버리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불안해 보이는 공법이었지만 스스로 입을 꽉 틀어막았습니다. 목수들 일하는 데 절대로 참견하지 말라는 막내 동생이 했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태그:#기초공사, #삭글세방, #목재 거푸집,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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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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