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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의 모델은 서울의 한강이다. 콘크리트 축대로 정돈하고, 보를 세워 물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서울 한강에 사는 물고기, 곤충, 새들은 주변보다 왜소하고 종류도 적다. 바로 환경 탓이다. <오마이뉴스> <서울환경연합> <대한하천학회>는 모래밭, 여울, 숲이 있는 한강을 제안하고자 연속기획을 마련하였다. 기획에는 토목, 사회, 역사, 도시계획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우리는 필요와 편의에 의해 그동안 일방적으로 혹사하여 왔던 한강에 우리들의 정성을 되돌려 주어야 할 바로 그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성들을 통하여 맑은 강, 깊은 물속에 온갖 어족들이 활개 치며 '살아있는 한강'을 만들 것을 다함께 다짐해야 합니다."

누구의 말일까. 흡사 환경단체의 주장처럼 보이는 이 말씀은 한강종합개발 기공식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정성을 되돌려' '한국의 자랑'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군사정권의 의지, 1982년 9월 28일의 이 선언으로 한강은 오늘의 모습으로 개발됐다.

항공촬영한 1960년대 한강의 모습(위)과 1987년 한강종합개발 이후 모습(아래). 1960년대 한강은 한강을 따라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검은 부분은 군사시설들을 지운 흔적이다. 한강종합개발로 수로를 준설하고 콘크리트 축대를 쌓아 고정했으며, 두 개의 수중보로 수위를 높였다.
 항공촬영한 1960년대 한강의 모습(위)과 1987년 한강종합개발 이후 모습(아래). 1960년대 한강은 한강을 따라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검은 부분은 군사시설들을 지운 흔적이다. 한강종합개발로 수로를 준설하고 콘크리트 축대를 쌓아 고정했으며, 두 개의 수중보로 수위를 높였다.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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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앞두고 '살아있는 한강' 만든다던 전두환의 약속

그런데 '살아 있는 한강'을 운운한 한강종합개발의 시작은 '서울지역 내 한강골재와 고수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1981년 11월 18일의 <대통령각하지시(No. 22-01-19)>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강살리기'가 '골재채취'나 '부지 활용'과 같은 뜻이었던 셈이다.

대통령의 지시는 석 달이 지난 1982년 2월 서울시 연두순시 과정에서 사업구상이 돼 보고되었고, 6월에는 기본설계 발주로 이어졌다. 지시한 지 열 달 만인 9월에 기공식이 열렸고, 삽질이 시작됐다.

주요 사업은 '수로 정비', '고수부지(둔치) 시민공원 조성', '올림픽 도로 26km의 8차선 확장', '하수 관로의 연장' 등이었다. 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사는 10개 구간으로 나뉘어 추진됐고, 정부에 의해 지정된 현대건설 등에 맡겨졌다. 계약은 해당기업이 설계와 시공까지 모두 진행하는 턴키 형식이었다.

사업의 목표는 '한강이 지닌 개발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버려진 골재를 재원화하고 광활한 하천공간을 종합적이고 다목적으로 이용, 개발하여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것'으로 <한강종합개발기본계획보고서>(이하 계획)에 명문화 됐다. 대통령의 지시는 이렇게 철저하게 관철됐다. 

한강종합개발기본계획보고서
 한강종합개발기본계획보고서
ⓒ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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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위 <계획>이 발행된 것은 1983년 5월이었다. 기공식이 지나고, 이미 사업이 10% 쯤 진행된 상태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실시설계도 아닌 초보적인 기본계획이 이제서야 나온 것이다. 더구나 보고서는 주요 사업인 '보'의 위치조차 제시하지 못했고, 하수처리 계획도 미비했다. 건설사들은 골재 준설부터 진행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대한토목학회, '한강 개발에 대한 좌담회', 1983. 3.)

사업 10% 진행 뒤 나온 기본계획, 핵심은 골재채취?

<계획>은 한강종합개발의 주요 효과로 '골재자원개발', '치수', '외화절약(유류절감)'을 들었다. 강의 골재를 파내는 게 왜 이익이 되는지 경제학에서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어쨌든 한강저수로의 폭 800m와 깊이 2.5m는 골재 판매 수익 2300억 원(7285만㎥)을 마련하기 위해 계산되었다('한강 개발 좌담회', 1983. 3.). 남산의 1.5배에 이르는 엄청난 양,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통해 준설하겠다는 골재 5.7억 톤의 1/8에 해당하는 양을 한강의 서울 구간 36km에서 굴착하겠다는 것이었다.

치수 효과는 골재를 파내 하상과 수위를 낮추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사실은 두 개의 보(신곡보, 잠실보)를 세워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에 효과가 없었다. 외화절약은 골재 운반 거리가 짧아져 기름을 아꼈기 때문이라는데, 주요한 효과라고 하기엔 쑥스러운 87억 원이다. 더구나 이 87억 원은 이미 골재판매 수익 안에 포함된 것이어서, 중복계산된 것이다. 

<보고서>는 사업의 간접효과로 '한강연안의 획일성 유지', '도시경관의 구조 개선', '이·치수 면에서의 경제적 이용 및 방재', '한강본래의 기능회복과 전통적 복원', '잠재녹지공간에서 기능공간으로서 이용', '도심위락편중의 분산', '동서교통망확보로 도심교통분산', '육상레크리에이션의 활성화', '시민정서순화와 의식구조 개선'도 들고 있다.

아무리 군사정부라지만 '획일성 유지'가 사업 목표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머지 중에서도 '교통망 확보' 외에는 설득력이 있는 게 없다. 결국 한강종합개발사업은 대통령이 주관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였지만, 실상은 골재를 파내서 올림픽도로를 8차선으로 확장한 것 외에는 성과가 불분명하다.

25년 만에 '생태적 사막' 된 한강

한국일보 86년 9월 10일 기사.
 한국일보 86년 9월 10일 기사.
ⓒ 한국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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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986년 9월 10일 착공 4년 만에 한강종합개발이 완료됐다.

'민족의 젖줄이 새로 흐른다'(중앙일보)
'한강사에 새장을 펼쳤다'(경향신문)
'한강이 새로 흐른다'(한국일보)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MBC는 특집을 통해, 전 대통령 인터뷰를 내보냈다. 내용은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한강을 호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강개발의 핵심 64km의 콘크리트 호안.
 한강개발의 핵심 64km의 콘크리트 호안.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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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둔치의 주차장.
 한강 둔치의 주차장.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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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준공 전날부터 일주일 동안 수만의 학생과 시민들을 동원했고, 불꽃으로 수놓은 전야제를 비롯하여 31가지의 경축행사를 벌였다. 전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해 "한강종합개발사업은 한강이 지닌 생산력을 제고하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단순한 국토개발 사업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국가발전전략을 새로이 정립해 나가는 중요한 전기다"라고 주장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한강의 서울 도심 구간은 생태적 사막이나 마찬가지다. "온갖 어족들이 활개 치는 살아있는 한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모래밭이 사라지면서 황복, 무래무지, 은어 등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도요물떼새들은 자취를 감췄다. 식생은 단순화되고 환삼덩쿨과 가시박 같은 외래종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천 생태의 기본을 이루는 수서곤충의 종수는 시외 구간의 1/3에 불과하다.(<한강 생태계 조사연구>, 서울시, 2007)

모래밭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꼬마물떼새(좌)와 모래에 알을 낳는 서울시 보호종 강주걱양태(우).
 모래밭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꼬마물떼새(좌)와 모래에 알을 낳는 서울시 보호종 강주걱양태(우).
ⓒ 유정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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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60년대 물놀이.
 한강의 60년대 물놀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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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둔치는 체육시설 등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하루 10만의 인파가 물놀이하던 진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강변의 도로 확장이 교통난 해소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립되고 불편한 한강이 서울의 도시계획에서 사라지게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돌아보면, 수만 년을 흘러온 한강의 개발은 이렇게 어이없이 진행됐다. 한사람의 주장에 대해 검증은커녕 최소한의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넓은 모래밭, 수많은 생물들의 운명은 그렇게 갈렸다.

이제라도 전두환 '각하'의 결정은 되돌려져야

물론 군사작전 같은 개발이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고서에 포함된 '환경영향평가' 내용을 봐도 함께했던 조력자들의 역할은 만만치가 않다. "미생물과 식물상은 호전될 것으로 예측되며, 특히 수질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어류상이 호전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강변경관이 개선됨으로써 시민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시민들의 여가선용에 기여하는 ... 등 긍정적 영향이 막대하다." "약간의 부정적 영향이 있으나 종합적으로 볼 때 긍정적 영향이 압도하고 있다."

당시에도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해문제연구소(환경운동연합 전신)는 '생태계 영향과 수질오염 등을 우려하고, 고수부지 공원화와 유람선 운항 등의 경관위주 사업'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공해연구> 1986년 봄호, '한강종합개발사업의 허구성'). 시간이 지나고 환경단체들이 우려했던 '공해종합개발'은 대체로 현실이 됐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이 한강의 기억을 잃어버렸던 탓에, 정권과 역사에 대해 평가하리라는 그들의 예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잠실대교 아래 잠실보의 모습.
 잠실대교 아래 잠실보의 모습.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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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개발은 국민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며, 심각하게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강개발의 핵심인 '고정된 저수로'와 '보'다. 강을 땅과 억지로 나눈 콘크리트 옹벽 64km, 한강의 수심 2.5m를 유지하는 '보'들을 철거해야 한다. 이를 통해 물의 속도, 깊이, 흐름에 변화를 주고, 주변 흙과 어울리도록 해야 한다.

이제라도 과거 한강의 가치는 다시 평가되고, 전두환 '각하'의 결정은 이제라도 되돌려져야 할 것이다. 모래밭과 숲이 있는 한강을 시민들이 찾고, 자연의 친구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일은 '각하'의 결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가능하다.

한강 되살리기, 이렇게
서울환경연합과 대한하천학회가 제안하는 한강 비전. 이촌동 둔치에 모래밭이 조성되고 도로가 지하화됐다.
 서울환경연합과 대한하천학회가 제안하는 한강 비전. 이촌동 둔치에 모래밭이 조성되고 도로가 지하화됐다.
ⓒ 최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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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연합과 대한하천학회는 연구진을 꾸려 지난해부터 연구를 해왔다. 강을 살리자는 계획을 내기 위해 토목, 생태, 수질, 환경 등 많은 분야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진행했다. 20여 명의 연구팀은 각 분야의 검증 절차를 거쳐 콘크리트 옹벽과 보의 철거 가능성과 필요성을 확인했고, 한강을 원래모습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홈페이지 및 연속 기획 참조)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해 활동하면서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강과 토목 공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MB '각하'의 막무가내 공사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시행정인 한강르네상스에 대응해 생겨난 사회적 자정능력이라 할 만하다. (참고로 이명박 대통령은 한강종합개발 때 현대건설 사장이었으며, 최근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한강종합개발을 제안한 사람이 이명박 사장이었다고 주장했다.)



태그:#한강, #전두환, #한강종합개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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