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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전국에서 크고 작은 나무심기 행사가 열렸다. 또 한편에선 청명과 한식(6일)을 맞아 행여 산불이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하루였다. 방송에서도 숲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거나 연관되는 노래를 들려줘서, 누구라도 나무와 숲을 떠올리지 않고는 하루를 보내기 힘들었을 성 싶다.

 

이런 날, 나도 문득 산을 떠올렸다. 지난해 여름, 때 아닌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곧 남부산림연구소와 국립농업과학원으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은 소나무들을 품은, 순식간에 '민둥산'이란 이름이 붙어버린 사천시 사남면 화전리에 있는 그 산이다.

 

사실 이 산은 큰 도로 가에 있는지라 오고가며 자주 보게 된다. 숨은 사연을 도통 모르는 사람은 "저 산, 어찌 된 거지?"하고 묻는다. 내용을 조금 아는 사람은 "저런 짓을 한 사람은 식겁해야 된다"고 열을 올리곤 한다.

 

정말 어찌된 일일까? 어릴 적, 다른 곳은 몰라도 이 산만큼은 늘 푸르렀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나무로 구들을 데우던 시절, 함부로 나무를 못 베게 하니 큰길가에 있던 나무는 엄두도 못 내고 대신 깊은 산골짝으로 나무하러 다녔던 터라 푸름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이 산이 붉게 물들었다. 처음엔 그 전해 가을부터 이어졌던 유난스런 가뭄 탓에 소나무 건강이 좋지 않은가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말라죽어가는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일부분만 고사현상이 집중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사천시가 전문기관에 의뢰한 결과 이 소나무들은 누군가가 고의로 홈을 파고 제초제를 주입한 까닭에 죽어가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에 따라 곧 범인이 붙잡혔다. 범인은 다름 아닌 산 주인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유실수를 심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무를 임의로 고사시키거나 훼손할 경우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왜 그 같은 일을 저질렀는지 그 속마음은 알기 힘들다. 다만 문제의 임야가 개발가능성이 높은 지역인 반면 숲의 건강도가 높아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린다. 또 비교적 어린 소나무는 두고 수령이 높은 것을 모조리 죽인 것도 특징이다.

 

 

어쨌거나 그 산, 빡빡머리에 드문드문 긴 머리카락 몇 올 남겨 둔 모양을 한 그 산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잘려 나간 나무들은 파쇄처리를 거쳐 다시 온산에 뿌려졌다. 다시 올 생명들을 살찌울 자양분이 된 셈이다. 그리고 운 좋게 살아남은 몇몇 소나무 사이로 어린 편백나무가 새로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사천시에 알아보니 5년생 편백 3000그루를 2헥타르에 걸쳐 심었단다. 복구에 들어간 비용 3600만원은 나무를 일부러 고사시킨 산 주인이 부담했다고 한다.

 

그가 스스로 망친 숲에 편백나무를 심은 것은 '복구명령'이라는 사천시의 행정처분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던 만큼 형사처벌이 남아 있다.

 

그는 지금 구속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훼손한 산림을 복구하라는 뜻으로 법원이 취한 조치로 보인다. 산림의 복구 여부는 이후 재판에 있어 양형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3월29일, 사천시는 산림복구에 관한 준공승인을 했다. 이로써 정 씨는 불법을 행한 뒤 복구 조치를 어느 정도 한 셈이고,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사법부의 몫으로 남았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인지 아니면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인지 현재로선 알기 힘들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미 망쳐버린 숲이 건강성을 회복하려면 다시 수 십 년이 걸린다는 것이고, 인간의 인내심이 그 세월을 기다려 줄 만큼 되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흉측한 민둥산의 모습을 한참 더 볼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식목일, #소나무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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