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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가 3일로 'D-60일'을 맞았다. 이번 선거는 현 정권에 대한 중간심판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치는 이유다. 중요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형사건이 터져 파생변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국을 뒤흔든다.

 

그런데 1220톤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원인모를 사고로 두 동강 난 채 서해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깊고 차디찬 해저에서 표류하고 있지만 사고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원인규명조차 어렵다. 천안함 침몰이 세종시와 4대강 등 굵직한 선거변수를 밀어내고 정국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사고 직후부터 '북의 개입에 의한 사고', '내부사고'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사이에 거대 군함의 침몰원인은 안개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생존자 구조 작업은 더디고, 사고 경위는 오리무중인 채 항간엔 온갖 억측만 난무하고 있다. 사고원인에 대한 정부와 군 당국자들의 잇단 말 바꾸기, 생존자들에 대한 지나친 통제, 언론 취재 제한 등은 정보통신강국 이미지와는 전혀 걸맞지 않다.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사고 직전까지만 해도 세종시 반대여론과 천주교의 4대강 반대 선언, 조계종 외압설 및 각종 설화(舌禍) 등 정부와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많은 악재들이 천안함 침몰과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천안함 파생변수 위력은 더욱 거세질 기세다. 갈수록 혼미해지고 있는 천안함 침몰정국과 파생변수를 톺아본다.  

 

[# 하나] 원인규명 오락가락...천안함 침몰 엇박자 변수 누가 키우나?    

 

"안타깝게도 많은 실종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해군의 초동대응은 잘됐다고 생각한다.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안타깝지만 그나마 초기 대응이 잘 이루어져서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생각한다."

 

천안함 침몰 사고 후 이명박 대통령이 3월 27일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천안함 침몰사고 대응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 군 당국이 엇박자를 보임으로써 사고원인의 혼선을 키우고 있다. 오히려 엄청난 사고였음에도 청와대의 초기대응이 형식에 치우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청와대는 북한 연루 가능성을 두고 오락가락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들은 사고 이튿날 오전까지 "레이더에 포착된 미확인 물체가 새떼이며, 사고 해역이 NLL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북한 어뢰 공격 가능성이 낮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두 번째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마친 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진상규명에 나서고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입장을 선회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2일 국회에서 침몰 원인과 관련해 '어뢰 가능성'을 시사, 진상 규명에 혼선만 가중시켰다는 따가운 비판까지 덤으로 샀다. 그런가 하면 보수신문들은 끊임없이 북한의 개입 가능성에 초점을 둔 기사와 사설로 여론을 흐리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초기부터 북의 개입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4월 1일과 3월 31일치 <조선일보>의 뉴스 가공은 전형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31일 조선일보는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는 기사를 1면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이 기사는 "사고 발생 지역인 백령도에서 멀지 않은 북한 서해안 잠수함 기지에서 천안함이 침몰한 지난 26일을 전후해 잠수정(또는 반잠수정)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 3일 <한겨레신문> '정도 벗어난 천안함 보도'(성한표 칼럼) 중

 

수색·구조에 전력을 다하고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군 당국은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려 그들을 돌봐주는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지역 및 진보언론들과는 달랐다. 사고원인에 대한 혼선을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는 정부와 군 당국은 명쾌한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이 뭐라고 해명해도 수상쩍다는 반응은 바로 이 때문이다.   

 

[# 둘] MB·한나라당 지지율 하락, 일시적 현상일까? 

 

 

지난달 29일. 천안함 침몰사고 후 주목할 만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2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던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사고 직후인 3월 4주차 실시한 주간 정례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48.0%) 대비 3.6%p 하락한 44.4%로 조사됐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4.1%p 증가한 43.9%를 기록했다.

 

한나라당 역시 동반 하락했다. 전주 대비 5.2%p 하락한 39.9%를 기록했다. 지지 텃밭인 대구, 경북(57.4%)에선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었으나, 그 외 지역에선 큰 폭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부산, 경남(46.5%,↓10.3%p)에서 낙폭이 가장 컸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전주 대비 3.3%p 상승한 27.2%를 기록했다. 특히 대전, 충청 지역에서 25.7%의 지지를 얻어 한 주 사이 8.3%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 지역에서도 지지율 상승폭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리얼미터>는 "천안함 침몰이라는 또 다른 악재가 터진데다, 군 수색작업이 계속 난항을 보이면서 추가하락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예측도 나왔다. 천안함 침몰 이전엔 2주 연속 상승해 50%에 육박하던 지지율이 이처럼 급격히 돌아선 것은 일시적 현상일까?

 

분명한 것은 세종시와 4대강 반대여론 확산, 여당 내부의 설화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이루던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상승곡선을 천안함이 꺾었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 셋] 4대강 반대·조계종 외압 파생변수, 천안함과 함께 침몰?

 

천안함 침몰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중요성을 적극 피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조계종 외압설까지 겹쳐 세종시 수정에 따른 파생변수와 함께 지방선거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언론은 연일 의제설정 우선 순위로 꼽았다.

 

<리얼미터>가 3월 24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찬반여론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4대강 살리기 반대가 49.9%로 찬성(36.7%)보다 13.2%p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12월 22일 실시된 조사에서 찬성 35.9%, 반대 51%로 나타난 것과 비교할 때 최근 정부의 4대강 사업 강조에도 불구하고, 반대 여론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은 것이다.

 

특히 천주교 주교회의의 강경한 4대강 반대 입장 표명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천주교 신자들의 58.2%(찬성 35.1%)가 반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 기독교(54.2%), 불교(50.9%), 무교(45.1%) 순으로 반대 의견이 높았다. 천주교의 4대강 반대 선언과 조계종 외압설 등 각종 설화가 악재로 이어지면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이 특이하다. 대통령 지지율의 경우 서울(↓ 8%p) 및 인천, 경기(↓ 7%p) 등 수도권에서 하락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역시 서울(47.9%,↓6.3%p), 인천, 경기(39.0%,↓4.5%p)에서 모두 하락했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의 이번 지방선거 영향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천암함 침몰사고 원인의 파생변수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일 <폴리뉴스>의'천안함 침몰 실종자 가족, "정부가 시간끌기 쇼하고 있다"'란 제목의 기사가 이런 점에서 시선을 끈다.

 

"천안함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수색 작업이 더딘 상황과 관련, '정부가 시간을 끌어 은폐, 조작하기 위해 쇼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종자가족들의 불만은 폭발수준에 다달아 가고 있는 분위기다."

 

수상쩍다. 때마침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세종시와 4대강 반대여론, 여당 원내대표의 '좌파스님' 발언에서 비롯된 설화, 심지어 독도문제까지 언론의 주요 의제에서 멀어지고 있지 않은가?    

 

[# 넷] '천암함 침몰' 미스터리, 6·2 지방선거까지 가나? 

 

'왜 새떼를 향해 함포 76㎜ 주포를 사격했나?'

'천안함이 백령도 연안에 가까이 접근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정비 부족에 따른 장비 고장이 천안함 사고의 원인은 아니었나?'

 

군이 천안함 침몰 열흘이 되도록 사고원인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세간의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국회 긴급 현안질문에서 천안함 침몰원인과 관련,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책임이 크다. 모순된 답변을 내놓으면서 진상규명에 혼선만 가중시키고 말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가장 큰  문제의 핵심은 침몰된 천안함의 교신일지에 있다. 정부와 군은 군사기밀 등을 이유로 '공개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도 "진상규명을 위해 필수"라며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천안함은 침몰직전까지 해군 2함대사령부는 물론 인근에서 작전을 벌이던 속초함과 통신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교신기록은 사고 원인을 밝혀줄 핵심자료로 지목된다.

 

"군은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 때는 세간의 의혹을 해소한다며 자진해서 교신일지를 공개한 바 있다. 결국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군이 정해진 원칙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논리나 사정에 따라 교신일지의 공개여부를 정해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교신일지 비공개를 두고 '군이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의구심이 커지는 배경이다." - 3일 <경향신문> '여야·실종자 가족 "교신일지 공개하라"' 기사 중

 

도대체 언제까지 시간을 끌 셈인가, 지방선거까지? 오죽하면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을 영화 '괴물'과 비유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FT는 1일 '한국인들, 국가를 실제 괴물로 여겨(South Koreans see their state as the real monster)'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부에 대한 불신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영화 괴물의 진짜 악당은 겁에 질리고 비탄에 잠긴 사람들을 잘못 이끌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국가 그 자체"라는 비판이 따갑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가장 일차적이고 믿을만한 사실에 속한다. 천안함 침몰과정과 관련된 사실을 제일 많이 수집한 쪽은 해군 당국이다. 하지만 해군은 침몰원인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 58명의 증언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군은 도대체 누구의 편이기에 저토록 주저주저 하는 걸까. 그러나 진실을 아무리 은폐한다 한들 호락호락 넘어가는 시대는 지났다. 정보통신 강국에 사는 국민들이다.

 

[# 다섯] '의사사건' 경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

    

정보폭발이 날로 가속화되면서 어떤 일이나 사람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목적으로 조작한 사건이나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미국의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Daniel Boorstin)은 이러한 현상을 '의사사건'(pseudo: '조작사건' 또는 '사이비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는 "의사사건의 범람으로 인해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자연스러운 현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선거철,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투표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문화가 갈수록 미디어에 의존하면서 미디어는 의사사건의 도구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현명한 대중을 우매한 군중으로 만들어 버리곤 하는 의사사건이 지역감정과 이념 등 감성정치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 사례들이 많다.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를 며칠 앞두고 김영삼 후보는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으로 선거운동기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시 전 법무부 장관과 부산지역 주요 기관장들이 식사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고 말한 것이 비화돼 지역주의를 조장했다. 그러나 이 논란은 오히려 위기의식을 느낀 김영삼 후보 지지자들을 더욱 결속시키는 역풍으로 작용했다. 결국 김영삼 후보는 2위 김대중 후보와의 격차를 더욱 벌이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역감정을 자극해 바람을 일으킨 감성정치의 유명한 사례다.

 

15대 대선에서도 나타났다. 1997년 당시 안기부는 그 해 8월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김대중 후보에게 '북한이 김 후보에게 호의적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은 이른바 '북풍'에 끝없이 추락했지만 수사에 나선 검찰은 북한의 공작을 전 안기부장 등이 이용했다고 발표하고 전 안기부장 등 6명을 구속했다. 코너에 몰렸던 김대중 후보는 다시 지지율을 회복했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데올로기를 자극하려던 감성정치가 되레 역풍을 만난 꼴이다.

 

2002년 16대 대선 민주당 후보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장인의 친북행위 의혹에 휘말렸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후보는 '그렇다고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는 특유의 화법과 솔직한 호소로 난국을 돌파했다. 이처럼 이념 또는 감정을 자극시키거나 심지어 '바다에 빠져죽자'는 극한 표현까지 들고 나서는가 하면 극약처방까지 서슴지 않는 의사사건은 정치의 해악중 하나다. 다니엘 부어스틴도 깜짝 놀랄 정도다.

 

천안호 침몰사건 원인을 놓고 갈지자를 걷는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태도와 청와대 및 정부, 군 당국의 모호한 진실규명 태도가 의사사건을 자꾸만 떠오르게 한다. 천안함 사고에서 비롯된 파생변수들이 지방선거로 확산돼 희생자 가족은 물론 국민을 두 번, 세 번 울리고 기만해서는 안 된다. 의사사건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태그:#천안함, #의사사건,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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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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