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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의 배달도시락. 부모님의 점심 걱정을 해결 할 수 있을까?
 업체의 배달도시락. 부모님의 점심 걱정을 해결 할 수 있을까?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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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대형 마트 인터넷 쇼핑몰에서 홍보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보통은 제목만 보고 바로 휴지통으로 보내버리지만 유난히 눈길을 끈 문구가 있어 열어보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부모님 식사 걱정되십니까? 000에 맡겨 주세요."

저에겐 일흔 중반을 넘기신 친정 부모님과 여든 여덟이신 시어머니가 계십니다. 양가 어머님들 모두 평소엔 당신들의 식사를 직접 조리해 드실 정도는 되지만 문제는 노인들이다보니 건강상태가 일정치 않아 식사준비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날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사실 두 분 어머님들의 살림 솜씨는 나이 오십인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계십니다. 지금도 고추장, 된장같은 장류나 장아찌 같은 밑반찬, 산과 들에서 뜯어다 말려 둔 나물반찬들은 여전히 어머니들 손에 의지하고 있으니까요.

몸이 좋으실 때는 젊은 며느리나 딸들보다 훨씬 맛깔난 솜씨를 보이시는 어머니들이지만 일단 몸이 좋지 않아 자리에 누으시기라도 하면 당장 누가 차려주지 않으면 죽조차도 끓여 드시기 힘들어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후에 알게 되어 "자식들에게 전화라도 하지 왜 끼니를 거르셨냐?"고 속상한 마음에 오히려 화를 내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한 끼 굶으면 될 것을 뭐 대단한 일 났다고 자식들에게 전화 돌려가며 호들갑을 떠느냐는 겁니다. 죽을 만큼 아프면 모를까 식사 한 끼 거르는 정도로 자식들에게 전화를 해댄다면 자식들이 피곤해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오히려 니들이나 밥 잘 챙겨먹고 아프지 말라고 걱정을 하십니다.

자식으로서 참으로 면목없는 장면이지만 이런 장면 역시 반복이 되다보니 어느 날부터는 정말 그런가보다 부모님 식사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한 달에 한 두 번씩 형제들이 돌아가며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외식을 시켜드리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고 나머지 날들을 편히 보내는 것이지요.   

사실 전 못 된 딸입니다. 내 자식들이 먹는 학교 급식과 도시락에는 목숨을 걸 것처럼 적극적이지만 홀로 계신 부모님들의 끼니를 챙기는 데는 소홀한 것이 바로 저의 모습이니 말입니다.   
노인정에 설치된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드시는 어르신들
 노인정에 설치된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드시는 어르신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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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의 식사를 끼니마다 잘 챙겨드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 사는 방식이 달라져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부모님의 식사를 잘 챙겨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대부분 맞벌이다 보니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이 따로 사시는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함께 산다해도 어른들의 식사를 챙겨드리기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자식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자식과 함께 사는 경우 자식들의 식사를 챙겨 줄 수 있을 만큼의 건강과 능력이 되는 어르신들은 당신 식사를 챙기는 것도 즐겁고 나름대로 살림을 하면서 얻는 보람도 크다고 하지만 부엌살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지면 갑자기 천덕꾸러기가 되고 맙니다. 

노인정이나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식사를 하시는 대부분의 노인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늙은이들 따뜻한 밥 해주는 며느리가 어디 있어? 그저 지들 먹고 나가기 바쁘고 노인들이야 알아서 먹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데 그래도 이렇게 따뜻한 밥에 국 해주는 데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 이렇게 한 끼 더운밥 먹고 들어가면 저녁까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건강이 좋으실 때는 친정 부모님도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강의도 듣고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2500원짜리 식사로 점심을 해결하시곤 했습니다. 수급자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지만 일반 이용자들은 2500원을 내고 사 드셔야 합니다.

한 끼 2500원의 식대가 비싼 밥값은 아니지만 형편에 따라서는 부담스러워 하는 노인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그래도 운동 삼아, 소일거리 삼아 다니시는 노인복지관에서 친구 분들과 함께 따뜻한 식사를 마치고 커피한잔까지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2500원이라도 부담스럽다면서 식사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노인들을 볼 때면 같은 노인이라도 마음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복지관이나 노인정에서만큼은 회원에 한해 무료급식을 해주면 좋을텐데라며 아쉬운 심정을 드러내기도 하셨지요.

제가 살고 있는 분당지역에는 이런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주로 빈곤층이나 영세민 층이 주거하고 있는 임대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한곳인 하얀 마을 무료급식소는 저도 봉사를 다니는 곳입니다.

이곳은 임대아파트 단지 내 노인정에 설치된 무료급식소로 10년 가까이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노인정 회원 160분을 위한 점심급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들이시지만 무료급식을 받으시는 분들 중 수급자 비율은 30%이내라고 합니다.  
지자체로부터 1인당 3천원 지원을 받아 만들어 지는 무료 점심. 따뜻한 밥과 국, 끼니마다 고기와 생선이 번갈아가며 올려진다
 지자체로부터 1인당 3천원 지원을 받아 만들어 지는 무료 점심. 따뜻한 밥과 국, 끼니마다 고기와 생선이 번갈아가며 올려진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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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내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차별 없이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고 난 후 이 아파트의 노인정 이용률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빈곤층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라고 주변에서 기피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이제는 주변에 더 좋은 아파트에 사시는 노인 분들까지도 무료급식소 때문이 이 아파트를 부러워 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자체에서 무료급식소에 지원하는 비용은 1인당 3천원입니다. 대부분의 무료급식소가 종교단체나 복지단체에 위탁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최대한 전액을 급식에 사용되도록 노력하고 있어 질 높은 급식을 제공 할 수 있다는 것이 급식소 운영자들의 말입니다.

위탁급식업체에서 영업이익을 남기기 위해 부실한 도시락을 배달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봉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종교단체나 복지단체에서는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3000원의 비용으로도 충분히 양질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걸어서 오지 못하는 중증환자나, 노인들을 위해서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를 빌려 배달도 해주고 있습니다. 배달하면서 노인들의 건강상태와 안전유무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니 무료급식소가 노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다른 반찬에 따뜻한 밥과 국이 나오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나이 먹으면 내 밥 끓여먹기가 제일 싫은 거야. 며느리 밥 얻어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런데 이런 급식소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 아프면 집으로 배달까지 해주고. 이런 급식소만 있으면 굶어죽는 노인들이 생길 리가 없지."

5천5백원짜리 배달점심. 싼값에 이용할 수 있다면 부모님 점심걱정에 대안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5천5백원짜리 배달점심. 싼값에 이용할 수 있다면 부모님 점심걱정에 대안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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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온 부모님 도시락배달 광고를 보니 1인 1식 비용에 5천5백원, 6천원을 책정해 놓았습니다. 물론 원가 3천원의 무료급식소 밥이나 2500원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노인복지관 밥에 비해 반찬의 가짓수나 영양 면에서 조금 차별화가 되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부모님 두 분이 하루 두 끼씩만 배달해 드신다고 해도 한 달 30만원 전후의 비용이 들어 적은 부담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자식들이 십시일반 도와드릴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큰 부담이 아닐 수 도 있지만 형편상 자식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는 노인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셈이지요.

독거노인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 일본의 경우 편의점에서 노인들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포처럼 퍼져있는 편의점 망을 이용해 노인들에게 따뜻한 밥을 신속하게 배달해주는 것과 동시에 안부까지 확인해 주는 서비스라는데 비용만 적당하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서비스가 확산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저에게 부모님들의 식사는 아이들의 급식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 이 문제는 저 역시 노인세대가 되었을 때 겪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요. 노인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독거노인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맞벌이 가정역시 늘어나 부모의 점심을 챙겨드리는 며느리를 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심을 굶는 노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굶지는 않는다고 해도 식사다운 식사를 하는 노인들이 몇이나 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드려보았습니다. 이런 도시락 서비스가 있는데 배달 시켜드릴까요? 라고 말이죠. 대답은 짤막했습니다.

"도시락 사 보낼 돈 있으면 현금으로 줘라. 그 돈이면 한달내내 고기에 생선에 맛있게 해먹고 살테니." 


태그:#노인급식, #무료급식소, #노인정, #노인복지관, #배달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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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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