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철회 모임대표를 비롯한 '우리천 아끼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지역의 생명수인 벌교천, 낙안천변에 꽃나무를 심기 위해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천을 가꿔야겠다고 생각하고 꽃나무를 식재하는 경우는 이 지역에 지금껏 없던 신기한(?) 광경이다.

 

회원이나 지역민들은 물론이며 말 못하는 하천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오늘따라 요란스럽게 물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흐르고 있다. 하기야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진다는데 자연이나 사람이나 다른 맘이 있겠는가마는 그동안 쓰레기를 덮고 살았던 하천이었기에 꽃단장에 설레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지난 28일 오전 10시, 철쭉 300여 그루가 고향을 떠났다. 벌교 장좌리 이동석 회원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나무들이다. 이씨는 "딸처럼 키웠던 철쭉이기에 집 떠나는 것에 서운함이 있지만 좋은 일에 쓰이기에 더없이 기쁘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씨는 이번 행사를 위해 자신이 기르던 철쭉 300그루를 희사했다.

 

 

식재장소는 고인관 회원의 의견에 따라 벌교천과 낙안천의 중간지점이며 세 갈래의 물길이 모이는 순천시 낙안면 이곡마을앞 하천으로 정했다. 하천 둑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벌교읍 지동리며 또 한쪽은 낙안면 이곡마을인 곳이다.

 

정철회 대표는 "이 지역은 원래 하나의 문화권이며 하나의 물줄기입니다, 101년 전까지 한 형제였는데 아쉽게도 행정구역이 나뉜 지역입니다"라며 "그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봉합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그보다는 먼저 그 어느 곳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하천인데 점점 오염돼 가고 있어 안타까움에 시작하게 됐습니다"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박동훈 회원은 "앞으로 저희 회원들은 이곳을 '우리천'이라 부를 생각입니다, 땅은 움직일 수 없어 행정구역 명칭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물은 흐르는 것이기에 너와 내가 없고 상류인 낙안물이 하류인 벌교에 다다르면서 서로 하나가 되기에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우리천'임을 각인시켰다.

 

 

오후 1시 30분경, 예정된 장소로 이동한 회원들은 철쭉을 트럭에서 내리기 바쁘게 일을 시작했다. 10여분 동안 구덩이를 파고 물주전자를 들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이때쯤 해서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법한 말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꾹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결국 필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사실 하천의 쓰레기들이 너무 심하네요."

 

다른 회원들도 눈이 있기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겠지만 장소를 선정한 사람 때문인지 서로 눈치만 보면서 일만했던 것 같다. 철쭉 식재 장소를 잡은 고인관 회원이 말을 받았다.

 

"좀 깨끗하고 괜찮은 장소를 잡아 생색내는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행사가 뭔 의미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굳게 맘먹고 이곳을 택했습니다"라고 속내를 내 비쳤다.

 

그때부터 회원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 엄청난 쓰레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말들이었다. 사실, 삽 정도가 고작인 장비와 이런 일이 주업이 아닌 7~8명의 회원들이 이 많은 쓰레기를 치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치우는 데까지 치워보기로 하고 벌교읍사무소와 낙안면사무소의 협조를 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일하는 도중 회원 중에 한명인 김남표 사진작가는 "널려있는 쓰레기와 철쭉을 심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면서 작가적 시점에서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일승 회원을 향해 "쓰레기만 없다면 정말 멋진 흙길과 하천인데요…"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벌교가 고향인 장일승 회원은 "이 길을 따라 벌교와 낙안간을 걷기도 했었다"면서 "우리가 열심히 가꿔 가능하다면 '올레길'처럼 걷는 길로 만들면 어떠냐?"고 회원들의 의중을 묻는 질문을 내뱉었다. 의견은 곧바로 급물살을 탔다.

 

앞으로 철쭉도 '지역사랑 철쭉'으로 명하고 누군가 하천 가꾸기를 위해 금액을 희사하면 그 금액만큼의 철쭉을 구입해 희사한 사람의 이름으로 심어주자는 의견과 그렇게 철쭉길이 계속 이어지면 그 길을 따라 걸어서 왕래할 수 있는 '올레길'을 만들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그들은 4시간 동안 철쭉 300그루와 하천변 다듬기를 실시했다. 힘에 부쳤지만 가능한 보이는 쓰레기는 한쪽으로 치워보려는 노력도 했고 행여 누가 밟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철쭉 나무마다 빨간 리본을 달아놓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하천을 가꿔보겠다고 나섰던 일이 이 지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휴일, 개인 시간을 쪼개 4시간동안이나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면서 지역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대해 함께 참여한 필자도 어깨가 으쓱거렸다. 더구나 생색내기 행사가 아님을 확인한 그 시각부터는 더욱 그랬다.

 

부디 이번 행사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고 꾸준하게 이어져 벌교천과 낙안천이 지금은 비록 많이 헝클어진 하천이지만 생태하천으로 거듭나고, '지역사랑 철쭉' 이벤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둑길이 아름다운 꽃길로 변해 지역에 새로운 올레길이 탄생하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벌교천, #낙안천, #철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