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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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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수능 D-200대에 돌입한 고3학생들의 심정은 어떨까? 대학이라는 문턱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 같아 학생들의 관심은 온통 대학에 쏠려있다. 이렇다보니 미래의 자신의 모습인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대학교 과티를 입은 대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고3이 되기 전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러운 눈초리를 숨길 수 없다. 대학생이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교 길 버스 안에서 두 학생이 이러한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아, 나도 학교 이름 새겨진 옷 당당하게 입고 다니고 싶다."
"그러게, 과연 저 옷을 입을 수 있을까? 우리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자."

이 짧은 대화에는 우리 고3들의 현재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즉, 부러움과 동시에 걱정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한창 대학 얘기를 하던 중 , 한 친구가 내게 와서 말했다.

독서실 의자에 과티가 걸려있는 모습이다.
▲ 독서실 의자에 걸려있는 과티 독서실 의자에 과티가 걸려있는 모습이다.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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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독서실에 갔는데 독서실 옆자리에 어떤 언니가 새로 왔어. 그런데 그 언니는 30분에 한 번씩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어. 그래서 그 냄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든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라, 진한 화장이랑,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야한 옷 때문에 독서실에서도 사람들이 다 쳐다봤어. 처음엔 나도 쳐다보면서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냐고 투덜댔어.

그런데 말이지, 그 옆자리 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연히 그 언니 책상을 보게 됐다? 그런데 거기엔 00대학교라는 로고가 박혀있는 책들이  있는 거야. 와~ 사람이 달라 보이더라!? 그냥 그 언니가 하는 행동들이 정말 싫었는데, 대학교 이름을 보는 순간 다 이해가 되고, 능력이 있으니까 저렇게 하고 다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친구들은 그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분명히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좋지 않게 봤던 언니였는데, 학교 이름을 보는 순간 180도로 달라진 자신의 마음 자체가, 친구는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이 속물이 된 것 같다고 했으나 친구들은 모두 이해한다고 했다. 새삼 대학, 곧 학벌이라는 간판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지, 얘기를 듣고 있는 나 역시도 그 친구의 당시 입장이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는 이런 이중적 잣대로 판단하여 가치 혼란에 빠져야만 할까? 이러한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물질적 가치 추구에 함몰된 학벌주의, 무한경쟁의 신분 상승 욕구?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 차별 의식? 성장 중심의 논리에 따른 교육정책? 이 틀 속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이 현 체제에 순응하고, 타협하고 복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 꿈이나 이상과는 무관한, 주입된 목표의식?

오늘도 우리는 학교 야자며, 과외, 학원, 인강 등, 독서실로 쳇바퀴가 돌듯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이러한 생각 자체가 나의 현실적, 실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치부해버려야만 하는 비양심이 있다.

이제 막 고3에 올라와 윤리를 배우고 있는 중인데 수업 내용 중, 아리스토텔레스 왈! "知는 의지를 통하여 行함으로 德화 된다"는 이 철학적 과정이 지금에서는 개뿔(?)만큼도 우리에게 현실적 적합성이 없다는 것에 나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우리가 배우는 윤리는 단지 시험성적만을 위한 것인가?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현실적 욕망의 최대 기준치인 학벌쟁취, 학벌만 좋으면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아무리 나빠도 그 인간 자체가 달라 보이는 이런 시 방식. 따라서 윤리적 판단 기준도 뒤바뀌어 버리는 그런 현실 심리를 안고 사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 친구의 이중적인 심리, 그 자괴감이 왜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 친구들도, 나도, 모두 동감하고, 절감하고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

앞으로 수능까지 남은 기간 9개월, 이후 우리들의 사회적 계급, 신분이랄 수 있는 이 학벌! 이중의 가치 기준을 갖게 하는 이 신분증을 쟁취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 치러질 영어단어 시험공부가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내일도 새벽 6시에 기상, 등교하고 독서실에서 새벽 1시 반에야 집으로 향한다. 과분하리만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욕심을 내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평균치의 삶이라도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


태그:#사는이야기, #학생들의 이중성, #대학,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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