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수정: 26일 오후 6시 15분]

 

"참 잘 만들어 놨어, 운동 시설에, 아이들 놀이터에 없는 게 없잖아."

"뭐여, 흙 밟을 곳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나무는 다 잘라 버리고 물가에는 내려가지도 못하게 해 놓았어. 헬스클럽도 아닌데 뭔 놈의 운동기구는 그렇게 많이 갔다 놓는지, 원..."

 

자전거 출근길(자출길) 옥수역 밑에서 다리 쉼을 하는 사이 아침 운동 나온 초로의 부부가 옆의자에 앉아 옥신각신한다. 그렇게 깊던 겨울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한강 길가에 푸른 풀들이 올라오고 마지막 남은 철새들이 무리지어 북쪽하늘로 날아간다.

 

그런데 올해 한강의 봄은 예년 같지 않다. 봄의 전령은 오히려 겨우내 중단됐던 공사의 굉음 소리가 됐고 훨씬 더 요란하다. 한강은 거대한 공사장이다. 시민들을 위해 편의시설을 짓고 새길을 낸다고 하지만 수년에 걸친 공사,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사는 사람들을 피곤하고 짜증나게 한다.

 

차량 진입이 금지된 자전거길을 당연하다는 듯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공사차량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공사하는 사람들의 승용차들, 쌓여 있는 공사 자재들.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해야 할 자전거 출근길이 이런 것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하니 지하철 출근길 고욕과 별반 다른 게 없다.

 

봄의 학살, 아카시아 나무 수십 그루가 잘려 나가

 

몇 년째 자전거 출퇴근을 하면서 좋아지는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이제는 베어져 없지만 동작대교 북단 다리 밑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10여 년 됨직한 나무는 4월이면 분홍색 복숭아꽃을 피웠다. 누가 일부러 심지도 않았을 복숭아나무. 수년째 꽃이 피고 지더니 몇 해 전 수해로 나무가 넘어졌는데 일으켜 세울 새도 없이 싹뚝 잘라 버렸다. 왜 자르냐는 항의에 조경한 나무도 아니고 수해가 나면 물길에 걸림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0년 3월 한강에서 또 하나의 참혹한 살육을 본다. 응봉산 개나리가 지고 한참을 지나 늦봄이 되면, 옥수역으로 가는 자전거길 옆 철뚝에는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그때가 되면 비릿하고 달콤한 꽃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이 아니더라도 그 냄새는 너무 좋았고 시각과 후각은 행복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카시아 나무가 어느 한순간 모조리 베어져 버렸다. 허벅지만큼 굵은 나무도 손가락 같이 어린 나무도 모두 잘라 버렸다. 조경한 나무가 아니어서일까? 아니면 유해수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너무나 어이없는 처사에 할말을 잃는다. 거기에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떤 시설을 한들 아카시아꽃 향기가 살아날 수 있겠는가? 

 

이 아카시아 나무는 철도청이 잘라냈다고 한다. 가시권 확보를 위해 매년 하고 있는 작업이라는데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반경 1km 안에 야외 운동시설 3곳... 예산 낭비는 아닌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한강의 르네상스 사업의 옥수 지역(중랑천 하류의 갈림길에서부터 반포대교에 이르는 북단 자전거길 주변) 공사를 보면 한강을 또 하나의 청계천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환경론자들은 청계천을 대리석으로 잘 지은 거대한 인공어항이라고 비판한다. 한강의 옥수지역은 중랑천과 합류되어지는 지점으로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철새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지금 놀이터와 운동시설이 들어서는 대부분도 갈대숲이 우거진 자연 녹지지역이었다. 이런 곳을 포클레인으로 밀고 자전거길을 새로 내고 보행전용도로를 새로 조성했다. 기존 자건거도로가 있고 보행전용도로 또한 불과 2~3년 전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 자전거도로와 보행전용도로를 놔두고 자연녹지를 파헤쳐 새로 길을 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불과 2, 3년 전에 보행전용도로를 따로 만들고 이제 와서 다른 또 다른 보행도로를 만든다면 전형적인 예산 낭비이고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정책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뿐 아니다. 금호 나들목을 내면서 갈대숲을 밀고 운동시설을 설치한 게 2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운동시설은 다 철거(다시 설치할런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철거되어 한쪽에 놓여 있다)하고 새로운 운동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또 새로 설치하는 운동시설에서 불과 200, 300m도 못 가서 옥수역 밑에 작년 가을에 설치해 놓은 운동시설이 있다. 옥수역에서 한남역으로 가는 방향 400, 500m도 못 미친 곳에 또 한 똑같은 운동시설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옥수역 반경 1km 안에 똑같은 운동시설이 3곳에 설치되어지는 것이다. 자연 녹지를 밀고, 있었던 운동시설을 철거하고 1km 반경에 같은 운동시설을 세 군데나 설치하는 것, 과연 시민을 위한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중랑천의 유람선길, 철새보호구역과 공존할 수 있는가

 

청계천과 중랑천 합류지점부터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2km 남짓한 철새보호구역이 있다. 여기는 겨울이 되면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들고 낚시는 물론 각종 개발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주변 갈대밭이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무자비하게 파헤쳐지고 조림되지 않는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다. 장마 때는 개구리 소리도 들리고 뱀도 자전거를 피해 급히 몸을 숨기던 갈대밭이 없어지는 것이다.

 

서울시는 곧 중랑천에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한다. 그럼 이 지역에 바닥을 파내는 공사뿐만 아니라 각종 대공사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 철새보호구역은 더 이상 철새의 보금자리 구실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시에 철새보호구역을 그대로 두고 중랑천 유람선길을 열 수 있는 묘안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갈대밭이 없어지고 유람선과 수상택시가 오가는 중랑천을, 스테인리스로 만든 철새 모형을 바라보며 보금자리라고 찾아오는 철새가 얼마나 될까? 전망 좋은 곳에 새로 놓이는 벤치를 보면서, 내년에도 저 벤치에 앉아 수많은 겨울철새를 볼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이 든다.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의 분리. 자전거와 보행자의 접촉사고가 잦게 일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잘하는 사업임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강쪽 경사면에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강 아래와 완전히 차단됐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쇠로 된 안전 펜스까지 쳐놓았으니 강아래 쪽을 내려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단지 전망대에 앉아 흘러가는 물구경을 하라는 의도가 아니라면 강아래로 내려 갈 수 있는 통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낚시꾼들이 쇠로 된 펜스 밑으로 기어서 절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침 자출길의 금호나들목 근처. 갈대밭을 밀어낸 운동장만한 공터에 아스팔트를 깔고 있다. 어떤 편리한 시설들이 들어설지 알길 없지만 철새와 각종 야생동물들이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봄과 함께 시작한 각종 공사들. 혹시 중복되어 예산 낭비는 없는지, 각종 개발이 모양만 내고 생태 환경을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깊게 관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강이 단지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 아니라 아카시아 향기, 새소리, 물장구치기를 할 수 있는 오감이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스팔트로 덮이고 선택받지 못한 나무들이 잘려 나가는 걸 보면서 한강이 지자체 호화 청사, 실내 놀이공원 같이 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나만의 기우일까.


태그:#한강 르네상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