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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에 나온 검찰은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서류 뭉치가 변호인에게 전달되자 권오성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법정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변호인들이 "워낙 양이 많아서…"라며 서류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권 부장검사는 "증거 신청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서류뭉치는 재판 중반까지 수세에 몰린 검찰이 마련한 회심의 반격 카드였다.

 

권오성 부장검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증거 제출 취지를 설명해 나갔다.

 

"한명숙 전 총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분양받아 가지고 있는 1일 사용료가 66만 원인 제주의 고급 골프빌리지를 2008년과 2009년 2회에 걸쳐 26일간 무료로 사용했다. 숙박기간 동안 곽 전 사장의 골프회원권으로 골프를 수차례 쳤으며, 이용 대금을 대납하도록 하거나 곽 전 사장의 요청에 의해 회원특별할인 혜택을 받았다."

 

그는 '66만 원', '26일간', '수차례'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의 주장은 한 전 총리측의 반박과 달랐다. 제주에 머물며 자서전을 쓴 것은 맞지만,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의 소개로 골프빌리지에 머물렀을 뿐 곽 전 사장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수 차례 골프를 쳤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서전 집필 기간 중 제주를 방문한 친인척이 골프를 쳤지만, 한 전 총리는 라운딩에 나서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투숙객 이름으로 골프 예약을 하다보니 한 전 총리의 이름이 남겨졌을 뿐이라는 해명이다.   

 

변호인단의 반발이 터져나왔지만 권 부장검사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한명숙 전 총리는 지금까지 이 법정에서 자신은 곽 전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뿐 아니라 단 1원도 받은 사실이 없고 친분이 두터운 사이도 아니라고 시종일관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앞서의 사실은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으로부터 총리공관에서 부담 없이 5만 달러를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것과 골프를 친 사실이 없다고 말하는 것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거짓말'을 강조했다. 이태관 검사는 "한 전 총리는 곽 전 사장의 콘도에서 20여일간 머물면서 자서전까지 썼다"며 "이는 최근까지도 두 사람이 친분을 유지해왔다는 증거"라고 지원 사격을 했다.

 

그러나 한 전 총리의 거짓말을 강조한 검찰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한 전 총리는 "돈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주장한 적 있지만, "아예 모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골프를 쳤다"는 주장 역시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공짜 골프'·'위증'... 반격 카드 내놓은 검찰

 

변호인들이 "이 정도의 증거를 재판 막바지에 채택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 자리는 개인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찬 당일 돈을 받았는지의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고 따졌지만 때는 늦었다.

 

공개된 재판에서 나온 검찰의 주장은 실시간으로 전파를 탔고 이내 양측의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졌다.

 

검찰은 이날 한 전 총리측의 '위증 교사' 의혹도 거론했다. 2006년 12월 20일 오찬 당시 경호를 맡았던 윤아무개씨가 한 전 총리의 측근을 만난 후 증언 내용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권 부장검사는 "윤씨가 위증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며 "곧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한 전 총리측은 "재판을 앞두고 공동 신청한 증인을 변호인단이 만난게 무슨 잘못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변호인단이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접촉한 사실을 마치 '위증 교사'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전 총리측은 또 재판에서 검찰에 불리한 증언을 한윤아무개씨를 주말에 두 번이나 재소환해 조사한데 대해서도 의심하고 있다. 오히려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현직 경찰관인 윤씨에게 회유와 협박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공짜 골프'와 함께 '위증 교사' 논란도 한 전 총리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힐 만한 이슈라는 점에서 검찰의 노림수는 쉽게 드러난다. 곽 전 사장의 오락가락 진술이 신빙성을 잃은 만큼 '도덕성'을 앞세운 한 전 총리 주장의 신뢰성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진실 게임으로 흐른 양측 공방

 

하지만 검찰이 이런 전략으로 재판 마지막날 웃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이날 제기한 '골프 논란'은 공소 사실이 아니어서 유무죄를 다툴 사안이 아니고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증거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법정은 개인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다"는 변호인의 말처럼 도덕성과 유무죄 판단은 별개다.

 

또 한 전 총리가 설사 공짜 골프를 쳤다 해도 이는 곽 전 사장과의 친분 관계를 증명하는 정황일 뿐이고 두 사람이 친하다고 해도 뇌물 수수 사실을 단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한 전 총리가 제주의 골프빌리지를 이용했다는 2008년과 2009년은 한 전 총리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때라, 2006년 곽 전 사장의 석탄공사 지원이나 2007년 남동발전 사장 선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때문에 야당 쪽에서는 "유죄 판결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검찰이 지방선거에 미칠 피장을 차단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 한 전 총리 흠집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반격 카드가 재판 막바지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공여자의 진술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는 뇌물 사건의 특성상 두 사람의 친분관계가 유무죄 판단에 참고할 수 있는 정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마지막 고비될 한명숙 피고인 신문

 

이에 따라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있는 오는 29일 10차 공판은 양측 모두에게 마지막 고비가 될 전망이다.

 

한명숙 전 총리 측은 "검찰이 제주도 골프빌리지 문제를 악의적인 흠집내기에 활용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 전 총리 측은 이날 골프 비용 대납 등 검찰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일전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도 제주 골프빌리지 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10차 공판에서는 모두 진술이나 현장검증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언급을 피해온 한 전 총리가 여러 쟁점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밝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곽영욱 전 사장을 정세균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함께 오찬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아들 유학 비용은 어떻게 조달했는지 등 남은 쟁점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역전 승부수를 띄운 검찰과 승부를 굳히려는 변호인, 양측이 마지막 칼날을 벼르고 있다.


태그:#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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