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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6차 공판이 끝난 후 법정을 나서는 한명숙 전 총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전 공판에서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던 한 전 총리가 법원에서 보여준 첫 미소였다.

 

반면 검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공판을 마친 시각이 오후 9시 30분이 넘었지만 검사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검찰청으로 복귀한 검사들은 이날 공판에서 검찰에 당혹감을 안긴 증언을 반박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그 다음날인 19일 오전, 법정에 나온 이태관 검사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한명숙의 미소와 검사의 붉게 충혈된 눈

 

재판 중 심야 조사를 해야 할 만큼 이번 재판에서 검찰의 중간 성적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오락가락 진술에 이어 법정에 나온 증인들도 검찰에서 진술했던 내용을 번복해 검찰의 부실 수사를 방증했다. 특히 2006년 오찬 당시 총리공관에 함께 있었던 경호원과 수행과장 등 증인들은 검찰 조서 내용을 부인하고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한 증언을 쏟아내면서 검찰을 코너에 몰았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건넸다는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오찬 당시 경호원이었던 윤아무개씨는 "만 8년을 근무하는 동안 오찬 행사가 끝난 후 총리가 늦게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수행과장 강아무개씨도 "오찬이 끝나면 항상 총리가 손님들을 안내해 먼저 나왔다"고 말했다.

 

이는 오찬이 끝난 후 다른 참석자들이 먼저 나가고 한명숙-곽영욱 두 사람만 남은 상황에서 5만 달러를 건넸다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재판부도 검찰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검찰에 공소장을 손질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김형두 재판장은 "공소장에는 '건네줬다'고 했는데 테이블에 놓거나 비서를 통해 전달한 것까지 포함된다면 구체적 행위가 특정되지 않는다"며 "좀 이상하다"고 면박을 줬다.

 

검찰은 곧바로 해명을 내놓았지만 되려 부실 수사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권오성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는 "'건네주었다'에는 의자에 두고 나왔다는 방법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며 "기소할 때부터 손으로 건넸는지 식탁이나 의자에 놨는지 추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기소 당시 검찰이 곽 전 사장이 돈을 전달한 방법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방청석 술렁... 검찰의 부실 수사 흔적들

 

부실 수사의 흔적은 이뿐이 아니었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챙겨 해외여행 경비나 아들의 유학비용으로 썼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한 전 총리 아들의 학교나 학비에 대해서도 정확한 조사를 하지 않고 추정으로 일관했다.

 

검찰은 증인 신문을 하면서 "한 전 총리 아들이 미국의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데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1년 학비가 4만~5만 달러이고 체류 비용까지 하면 연간 10만 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버클리 대학이냐"고 확인하자 검찰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아카데미인지 유니버시티인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답해 방청석에서 실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검찰의 헛발질은 계속됐다. 한 전 총리의 의전비서관이었던 조아무개씨가 "한 전 총리 아들이 전공을 음악에서 경영학 쪽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자, 검찰은 "바뀌었습니까"라고 되묻고는 "MBA(경영학 석사)를 한다 해도 학비가 많이 들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또 검찰이 한 전 총리의 수뢰를 뒷받침할 증거로 조씨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달러 환전을 한 내역을 제출한 것도 논란이 일었다.

 

조씨가 그 기간 2950달러를 원화로 바꿨는데 환전 날짜가 총리공관 오찬 전인 2006년 7월~11월까지였던 것이다. 조씨는 "곽 전 사장이 돈을 줬다는 오찬 날짜가 2006년 12월 20일인데 그 환전 내역이 곽씨의 5만 달러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 했다.

 

반환점 돈 '한명숙 재판'... 검찰 반전카드 있을까

 

이쯤 되면 검찰의 공소장이 "좀 이상하다"는 재판부의 판단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현재 검찰은 낙제점을 만회하기 위해 이미 법정에서 증언한 증인을 다시 소환해 조사를 진행하는 무리수를 두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검찰로서는 곽 전 사장이 5만 달러를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핵심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진술을 번복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가닥 희망이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의 진술 신빙성이 큰 타격을 입어 그의 말만으로는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법원은 금융거래 사실 등 직접 물증이 없는 뇌물 사건의 유무죄 판단에 있어 공여자의 진술이 얼마나 일관되고 구체적인지를 따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락가락하는 곽 전 사장의 진술로는 당시 총리공관에서 한 전 총리와 참석자들의 동선 등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 확정조차 불가능해 검찰로서는 유죄 입증을 위해 반전 카드가 될 만한 추가 증거 제시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24일 열릴 8차 공판은 이번 재판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곽 전 사장이 석탄공사 사장에 지원하고 남동발전 사장으로 가게 된 과정에 한 전 총리의 입김이 작용했는가를 밝혀줄 인사들이 법정에 서기 때문이다. 

 

이날 공판에는 이원걸 전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차관 등 산자부 관계자들과 공기업 사장 지원서 작성을 도운 대한통운 직원 등 7명이 증인으로 나온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한 전 총리의 인사 청탁과 5만 달러의 대가성 입증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법정에 직접 나올지 불확실하긴 하지만 당시 산자부 장관이었던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증인으로 신청돼 있는 26일 9차 공판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미 법정에 나와 "한 전 총리는 공기업 사장 인사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밝힌 터라 이들이 어떤 진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태그:#한명숙, #곽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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