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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제주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배인준, 아래 편협) 부장 세미나는 2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 자리에 초청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사들 사이에는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 및 보도채널 사업자 선정이란 민감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또 이날 공교롭게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MBC 좌파 청소"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현 정부의 '방송 장악'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면서 최시중 위원장 행보에도 눈길이 쏠렸다.   

 

최 위원장 스스로 2년 전 청와대 등과 교감해 KBS 사장 선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전례가 있고, 김우룡 등 방문진 이사 임명자로서 최근 MBC 사태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날 따라 최 위원장의 '위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동아일보> 출신 언론계 대선배로서 '훈수'는커녕 언론계 후배들의 거듭된 추궁에 눈물까지 보였다. 하지만 정작 MBC와 <동아일보> 간부를 비롯해 전국 언론사 문화-미디어부장 3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김우룡 이사장 발언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최시중 위원장 역시 세미나 뒤 <오마이뉴스> 기자의 개별적 질문에 "할 말이 없다"며 직접적 답변을 피했다.

 

"정부에서 언론사에 지시하는 행위 제약 받아"

 

오히려 이 자리에선 월드컵 중계방송권 문제, 종편 사업자 선정, 수신료 인상, 중간광고 허용 문제 등 각 언론사들의 '민원성 질문'이 쏟아졌다. 최 위원장조차 이를 두고 "언론인이 아니라 경영자 같은 인상"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다.

 

월드컵 중계권 문제를 놓고는 지상파 방송 3사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자기소개 시간에 이재숙 KBS 부장은 "수신료와 보편적 시청권 보장을 위한 중계권에 대해 원하는 말씀을 해 달라"고 주문했고, 조상휘 MBC 팀장도 "KBS와 입장이 같다"고 거들었다. 이에 조민성 SBS 부장은 "사실 논의가 잘되고 있다, 기다려달라"고 조심스레 맞받았다.

 

수신료 인상 문제와 관련, 최 위원장은 KBS의 경영합리화 노력이란 단서를 달면서도 "가능하면 빠르게, 금년 하반기부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서 "폭은 5000~6000원(현재 월 2500원) 사이가 적절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중계방송권에 대해서는 "세계 스포츠계 경쟁은 정부가 간여할 건 아니"라면서 "가능하면 3사가 합의를 통해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각사 CEO들이 양보할 선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노력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그 전날(17일) 방통위 권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또 "중계권료가 2조 5천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여서 SBS에 애국심이나 우정을 내세워 강권할 입장이 아니"라면서 "방송법이 정부 영향의 한계를 세심하게 제약해 놨기 때문에 정부에서 언론사에 하는 지시나 지시적 성격의 행위가 제약받고 있다"며 방통위 권한의 한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조선일보> 창간기념식 참석 두고 논란 일기도

 

종편 사업자 선정 작업이 계속 미뤄지는 것에 대해서도 언론사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지난해 7월 방송법 등 미디어관계법이 통과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심사기준 등 최소한의 밑그림조차 나오지 않아 의심을 사고 있다. 실제 일부에선 정부에서 특정 언론사를 사실상 정해놓고 타 언론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선정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5일 최시중 위원장이 <조선일보> 90주년 창간기념식에 참석한 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창간 10주년, 20주년 등 의미 있는 행사에는 참석해 왔다"면서 "그 원칙에 따라 <조선> 행사에 간 것이고 <동아>(90주년), SBS(20주년) 행사에도 갈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최시중 위원장은 "헌재에서 (미디어법) 위헌 논란이 매듭지어진 게 지난해 11월이고 (방송법) 시행령을 만들어 넘겼는데 국회에서 심의가 늦어졌다"면서 "언론사들이 전년도 재무구조나 경영상황 자료를 제출하려면 3월이 지날 수밖에 없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하면 정치적 불합리가 있고 국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저절로 6월 뒤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방선거 끝나면 가능한 빨리 서둘러서 올해 안에 결론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기존 지상파 방송에선 "종편을 서두르다 다시 방송광고시장이 회복 안 되면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오히려 속도 조절을 요구했고, 지방일간지에선 사업자 선정기준에 지방신문 참여를 보장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종편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미안" 눈시울 붉혀

 

최시중의 눈물은 이처럼 언론사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나왔다. 윤창중 편협 부회장(<문화일보> 논설위원)이 "(최 위원장이) 언론계 대선배로서 당대 최고의 권세를 갖고 있는 것은 정말 환영하고 축하할 일"이라고 한껏 치켜세운 뒤 "미디어법 통과 때는 집권당 차원에서 속도전을 하더니 방송 통신 문제 결정이 너무 느린 거 아니냐, 어떤 복선이나 저울질이 깔려 있는 거 아니냐"고 최 위원장을 압박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언론계 선배로서 이래서 되는가 싶다"면서 "(후배들이) 언론계 떠났을 때 50대 중반으로 인생 이모작 준비할 시기인데, 난 3, 4모작 하고 있는데, 이렇게 공감하는 사람들 만나니…"하면서 말끝을 흐리다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잠시 장내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잠시 후 표정을 수습한 최 위원장은 "종편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정치적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화답하듯 사회자는 "진심을 전달하려 한 것"이라고 상황을 정리하고 "대선배 뒷모습이 아름답도록 박수로 끝내자"고 서둘러 세미나를 마쳤다.

 

"정통부 해체, 사려 깊지 못한 개편"... 방송 장악 반성은?

 

김우룡 이사장 발언 논란을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이날 최시중 위원장의 모습은 2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최 위원장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의 검찰 연행 직후인 2008년 8월 11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KBS 대책회의'를 주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자리엔 <동아일보> 후배인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현 홍보수석)이 늘 함께했고, 국정원 간부나 KBS 전직 간부도 끼어 있었다.

 

그해 12월엔 MBC 대주주인 방문진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MBC 정명론을 제기하며 경영진을 압박했다. 급기야 지난해 7월 말 김우룡 이사장 등 친정부 인사들을 대거 방문진 이사로 임명했고 올해 초 엄기영 사장 교체에 성공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방통위 뿐 아니라 청와대, 감사원, 검찰까지 동원한 전방위 공세를 펼친 정부에 '영향력'의 한계는 없어 보였다.

 

최 위원장은 이날 "정보통신부 해체는 참 아쉽다"면서 "IT 산업을 20년 헌신의 노력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이뤄놓았는데 사려 깊지 못한 개편으로 부작용을 낳게 된 거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명박 정부 초기 잘못된 정부 개편을 반성했다.

 

마찬가지로 종편 선정에 정치적 고려는 없다는, 또 이제는 정부에서 언론사에 이래저래 지시할 수 없다는 최 위원장의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먼저 언론사 '후배들' 앞에서 흘린 눈물 이상의 진정어린 대국민 사과가 필요해 보인다. 당장 김우룡 이사장의 '좌파 청소' 발언이 결자해지의 첫 시험대가 될 듯하다. 


태그:#최시중, #방통위, #김우룡, #방송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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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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