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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나서는 희망의 여정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안목을 갖게 되고, 변화된 감각과 사고로 자신의 현 위치와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

 

지난 2월 설을 전후해 4박 6일 일정으로 아내, 지인들과 함께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다녀왔다. 두 나라 모두 우리나라에 비해 못사는 나라다(캄보디아는 1인당 GNP 500달러, 베트남은 1000달러 정도). 반면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아픔을 수없이 겪은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두 나라 모두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큰  것보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사는 소박한 삶과 전쟁과 가난의 슬픈 역사 속에서도 결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20년간의 내전으로 생존마저 위태로워진 캄보디아와 60~70년대 우리네 상황과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는 베트남 여행을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 등의 실상을 깨닫고, 우리나라가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 우리집, 내 일터가 최고라는 생각을 온몸으로 체감한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사색 여행이었다.

 

오지의 나라로 여행을 시작하다

 

여행 첫날. 광주 광천터미널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안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광주는 비가 오는데, 이곳에 오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인천대교와 바다의 겨울 풍경이 낭만과 여행의 설렘을 더해 준다.

 

여행사 관계자를 만나 안내를 받고, 짐을 부치고, 발권하고, 약간의 돈을 환전하고, 검색대를 거쳐 면세점을 둘러본 후 탑승 게이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오후 7시경 우리나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늦게 이륙하였다. 동남아시아에서 비행기 출발의 지연은 예고 없이 다반사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130명이 탑승한 소형 비행기이지만, 우리네 비행기는 언제나 깨끗하고, 쾌적하다. 승무원들의 친절 서비스도 여전히 만점이다. 비행기 여행의 단점은 소음과 심한 기류변화에 따른 불안한 흔들림이다. 1시간 후에 음료와 식사가 나왔다. 잠 한 숨 붙이고, 입국 신고서 쓰고, 해운대 영화 한편 관람했더니,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이 눈앞이다. 소요시간은 5시간 20분.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후 0시 20분 경에 공항에 도착하여 짐 찾고, 공항 한쪽에서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현지 여행사 관계자 만나 여행 일정 안내 등 받고,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쉬었다.

 

공항의 규모는 우리네 지방공항 정도로 매우 작았다. 날씨는 완전 여름. 특이한 것은 개인적으로 입국절차를 밟는 사람들은 느리고 까다로운 입국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단체 관광객들은 무사통과다. 여행사를 통한 급행료(1인당 5달러) 덕분이라고 한다.

 

숙소시설과 환경은 기대 이하였다. 에어컨 소음은 심하고, 수질은 나빠 식수로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나라에서는 유료 생수로 양치질하고, 물도 생수로 먹어야 했다.

 

크메르 제국의 천년 영화 '앙코르 유적'

 

 

 

여행 둘째 날. 오전 8시에 아침을 먹었다. 식사는 아메리칸 푸드식으로 빈약하지만, 먹을 만했다. 오전 9시에 숙소에서 출발해 앙코르 왕국(앙코르 유적) 탐방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숙소에서 앙코르 사원까지는 툭툭이로 약 30분 정도 걸렸다.

 

거리에 나서니, 중고 오토바이와 자전거 천국, 도로관리 상태는 부실 그 자체였다. 집들은 호텔 등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는 60~70년대 우리네 허름한 달동네 같은 집들이었다. 골목길 및 간선도로 등은 비포장도로로 먼지가 수북했다. 신호등은 거의 전무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임자였다.

 

호텔에서 툭툭이(오토바이 뒤에 지붕달린 2-4인용 의자를 달고 다니는 목재로 만든 마차)를 타고 앙코르 유적지로 가서 매표소 앞에서 카메라 촬영에 응했다. 특별한 체험이기는 하나, 도로 먼지 등을 그대로 뒤집어 써야 하는 환경적인 문제가 있었다. 툭툭이 이용료는 1인당 20달러였다. 앙코르 유적지 이용료는 1인당 50달러. 의무적으로 촬영한 사진(지불한 돈은 8명에 3달러, 상술의 일환)을 부착한 출입증으로 사원 내 관람을 시작했다. 대정글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여행 시작 전 가이드의 유적지 관련 정보 청취했다. 유적지 내 면적이 반경 3㎞로 너무 넓어서 툭툭이나 자전거, 자동차로 이동했다. 도보로는 정해진 시간 내 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매표소 앞에서 앙코르 유적지로 가는 길 주변에 수 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와 무성하게 우거진 숲, 거대한 호수 해자, 이엉지붕으로 엮은 가게들이 있었다. 구걸 행위, 조잡한 물건을 파는 호객행위, 환경관리 방치 등은 옥에 티였다.

 

 

약 1.5km 쯤 안으로 들어가 유적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앙코르톰 남문이었다. 이곳은 앙코르 왕국의 탐방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람얼굴의 모습을 한 탑문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으로는 양쪽으로 커다란 뱀을 껴안은 백여개 신상들의 대열을 난간으로 한 다리가 줄 지어 서 있다. 그러나 난간의 신상들 상당수가 훼손되어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버려진 자연유산과의 첫 만남이다. 

 

앙코르톰은 앙코르 제국의 마지막 왕성이었던 곳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1200년께 참족 침략에 대비해 건설한 것으로 폭 100m짜리 해자와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원 곳곳에 남아 있는 사면상 미소가 인상적인데, 특히 '크메르의 미소'로 꼽히는 사면상의 신비로운 미소가 발길을 붙잡는다.

 

앙코르톰의 출입문 위에 새겨진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은 자야바르만 7세다. 가이드는 "이 두상의 미소와 부드러운 곡선은 빛의 각도에 따라 200여 가지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앙코르톰을 관람한 후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바이욘 사원과 바푸론 사원 등을 둘러보았다. 사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대부분이 유사한 형태의 석조건물로 벽면(회랑)마다 앙코르 시대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양식, 문화, 신화 및 전설 등의 다양한 내용들이 당시 석공들의 독특한 조각기술로 새겨져 있었다.

 

20년 내전의 상처가 유적지 곳곳에 파괴나 훼손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 관람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일부 유적들은 보호막을 치고, 관람객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며 수리나 정비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파괴되거나 훼손된 앙코르 유적의 복원은 프랑스, 일본, 독일 등의 후원이나 원조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앙코르톰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지역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원 중에 하나로 사원이 200여개의 얼굴로 구성되어 54개의 탑들로 형성되어 있다. 특히 이곳에는 1200m의 부조물이 있는데, 당시 생활상과 전투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어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앙코르 주민들의 생활상 군대출동 모습, 종교행사 및 의복의 형태 등을 엿볼 수 있다.

 

바이욘 사원 주변 상점에서 코코넛으로 목을 축이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바이욘의 묘 앞에 섰다. 이 묘는 13세기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세워진 일종의 전승탑으로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웅장함과 화려함이 대단하다.

 

바이욘의 묘를 지나, 코끼리 테라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지금은 거의 평지 상태로 남아있지만, 그 옛날 영화로운 옛날의 남은 앙코르톰의 터전들이 관중석이 없는 넓은 잔디 축구장처럼 펼쳐져 있다. 그 왼편에는 왕들이 행사를 벌일 때에 앉아 있었을 법한 코끼리테라스가 있으며, 여기에는 코끼리들의 행렬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코끼리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관광객들이 하도 만져 반들반들해진 코끼리 상과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가두었다는 적벽 돌로 지어진 여러 개의 감옥도 인상적이다.

 

5개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는 높이 3m, 길이 300m의 코끼리 연단은 각종 축제나 군사 행렬의 사열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코끼리테라스의 뒷면에는 5개의 머리를 가진 말의 보조물이 있고 북쪽으로는 '레퍼왕'의 테라스가 이어져 있다.

 

앙코르 톰의 동쪽 문으로 빠져나와 툭툭이로 20분 정도 이동하여, 타프롬 사원으로 갔다. 거대한 고목의 나무뿌리가 휘감고 있는 타프롬 사원은 바욘 묘를 지은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툼레이더> 등의 영화에 나오는 폐허만 남은 괴기한 분위기의 사원이기도 한 이곳 타프롬 사원은 망가진 모습에서 오히려 그 가치가 느껴졌다. 이 사원의 가치는 어떤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폐허로 남아있는 그 자체인 듯했다.

 

타프롬 사원은 12세기에 지어진 불교 사원으로 전성기에는 승려 3000여 명이 살았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수백 년간 방치되는 동안 건축물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뿌리내린 나무들(스퐁나무)이 거목으로 자라나 많은 부분을 파괴했다. 지금도 발견 당시 폐허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가이드는 "새들이 나무씨앗을 이 사원의 갈라진 담벽 위에 떨어뜨려 그것이 싹이 트고 성장하여 지금과 같은 기이한 모습을 만들었다고"말했다. 많은 여행자들은 잘 복원된 유적보다 정글 속에 무심하게 방치된 타프롬에서 더욱 신비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앙코르 유적을 나와 숙소 근처 식당에서 우리네 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삼겹살, 풋고추, 된장국, 김치 등 모두가 우리와 비슷하고, 입맛에도 맞았다.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우리네 소주는 한병에 7달러, 이곳 소주는 10달러로 도수가 높은 일종의 고량주 형태였다.

 

캄보디아의 새로운 희망, 세계최대의 석조건물 '앙코르와트'

 

식사 후 앙코르 유적으로 다시 들어가 앙코르 유적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앙코르와트사원을 방문했다. 앙코르톰보다 반세기 앞선 12세기 수르야바르만 2세 때 건립된 "도시의 사원"이란 뜻의 앙코르와트는 프놈펜 북서쪽 약 250km, 주도(州都) 씨엠립 북쪽 5km의 톤레샵 호수 북안 근처에 있다.

 

가이드는 "앙코르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왕으로 기록된 사람은 자야바르만 2세이며, 지금의 앙코르 지역을 도읍으로 건립한 왕은 아쇼 바르만 1세고 앙코르와트를 건축한 사람은 수르야바르만 2세이다"며 "앙코르 유적 대부분의 사원이 동쪽을 향해 있다, 그러나 앙코르와트 사원은 서쪽을 향해 있고, 초기 학자들은 그래서 앙코르와트 사원을 죽음의 사원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과학적으로 하나 둘씩 앙코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사원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고, 천문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우주의 변화를 표현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앙코르 유적은 1431년 크메르 왕조의 수도가 남동 메콩강(江) 유역으로 천도된 것을 계기로 버려지고 유적군의 존재조차 잊혀 졌는데, 1860년대 프랑스의 앙리무오에 의해서 앙코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에 의해 본격적으로 보존과 연구가 진행되면서 캄보디아의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해자(톤레샵 호수-'톤레'는 '똘레'라는 말로 '강(江)'을 뜻하고 '샵'은 '호수'라는 뜻이다)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한 앙코르와트의 탑문을 지나니, 3층탑의 중앙사원을 중심으로 2중, 3중으로 회랑이 감싸고 있는 웅장한 사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중앙탑을 정점으로 좌우로 균형 잡힌 사원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탓인지 우중충하고 어두운 인상을 주지만, 가까이 제2회랑 앞의 호수에 비친 중앙사원의 모습은 앙코르 왕국(크메르 제국)의 신비스런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는 듯했다.

 

제2, 제3 회랑을 끼고 사원을 도니, 끝없이 이어지는 압살라(춤추는 여인)의 부조가 이어지는데, 그 내용은 고대 인도의 서사시인 라마야나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한다.

 

제3 회랑을 지나 중앙신전으로 향하여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 연꽃모양의 중앙탑에 오르니, 끝없이 펼쳐진 늪과 밀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거칠은 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하고 나니, 눈 아래에 회랑의 압살라에 눈이 팔려 보지 못했던 불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곳 내부에 조각되어 있는 부조물들은 앙코르 예술품 중 최고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앙코르와트에서 가장 높은 3층 성소는 승려 계급 외에 오직 왕만이 오를 수 있는 신성한 장소로 정상에 오르면 사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본래 앙코르와트는 힌두교사원으로 건립되었지만 그 후 앙코르 왕국이 서서히 몰락하면서 힌두교의 영향이 줄어들었고, 힌두교와 뿌리를 같이한 불교의 불상들이 들어서면서 불교 사원으로 변했다고 한다.

 

가이드는 "앙코르제국은 분에 넘치는 사원건립에 국운을 건 탓인지 앙코르와트의 건립을 계기로 서서히 멸망의 길로 접어들어 400년 동안 잊혀진 왕국으로 밀림 속에 은둔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전에 먼저 둘러본 앙코르톰이 앙코르왕국의 생활터전이었다면, 앙코르와트는 사원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 유적지라는 느낌이 든다. 앙코르톰보다 반세기 앞서서 먼저 세워진 앙코르와트는 폐허만 남은 다른 앙코르왕국의 유적지 중에서 그래도 원형이 많이 보존된 채 남아 있는 것 같다.

 

앙코르 유적을 6시간 동안 주마간산격으로 돌아보았지만, 당시 앙코르 제국의 천년 영화와 영광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앙코르 유적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입이 캄보디아의 재건을 돕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됐다. 20년 내전으로 가난과 질병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그나마 앙코르 유적이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인당 20달러 하는 발마사지를 받고, 북한의 평양 식당에서 한식으로 식사 후 북한공연을 관람 한 후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TV에서 자주 보았던 '반갑습니다, 그리운 금강산, 아리랑, 다시 만나요' 등 낯익은 북한 노래를 접하니, 눈물이 절로 났다. 이곳에서는 북한 화가들의 그림과 술 등 기념품도 함께 팔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하늘이 만든 천상의 섬 '하롱베이')로 이어집니다.


태그:#캄보디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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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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