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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조선일보> 12일치 1면에 실린 여중생 살해 피의자 김아무개의 중학교 생활기록부는 위와 같은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였다. 수우미양가 가운데 '양'이 많은데다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는 '행동특성' 내용이 줄줄이 적혀 있는 탓이다.

게다가 중3 때 '담임'이란 사람까지 찾아내 "(김아무개가) 거짓말쟁이로 알려져 따돌림을 당했다"는 고자질까지 들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해당 학교 교감 "생활기록부 우린 주지 않았다"

<조선일보> 3월 12일치 1면.
 <조선일보> 3월 12일치 1면.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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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김아무개는 흉악 범죄 피의자다. 돌팔매에 대한 합의는 얼마간 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생의 '떡잎' 시절인 초중학교 생활기록부까지 빼내 한 인생을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로 만드는 것은 지나친 행위라는 지적도 교육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생활기록부는 오로지 교육 필요에 따라 학생의 발달상황을 누적관리해온 기록이다. 현재 생활기록부는 법으로 수집 자체를 금하고 있는 '사상, 신조, 질병' 등 300여 항목의 은밀한 학생 정보가 '교사 종합의견란'과 '행동 특성' 등에 들어 있다. 쓰기에 따라선 또 다른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등으로 이의 유출을 철저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을 보면 "보유기관의 장은 개인정보 파일의 보유목적 외의 목적으로 처리정보를 이용하게 하거나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 없다"(10조)고 못 박고 있다. 당사자 또는 당사자의 위임을 받지 않은 채 생활기록부를 공개하거나 교육목적으로 수집된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 법은 공무원이 개인정보를 타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부당하게 제공했을 때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 같은 법률에 비춰본다면 김아무개의 생활기록부 누출은 범법 행위였다. 이런 행위를 벌인 곳은 과연 어디일까?

먼저 <조선>이 보도한 부산 ○○중학교 J교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은 13일 두 차례에 걸친 전화통화 내용이다.

- 김아무개 생활기록부 누출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조선일보> 인터넷 보니까 나와 있었다."

- <조선> 기자가 취재를 온 적이 있나?
"여러 기자들이 많이 왔고 취재 온 기자 중에 <조선>기자도 왔다."

- <조선> 기자에게 교감님 또는 학교 관계자가 생활기록부 보여줬나.
"전혀 그런 일 없다. 우린 주지 않았다. 기사의 사진을 보니 생활기록부가 접혀져 있었는데 왜 접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 경찰 쪽에서 생활기록부 보여 달라는 공문이나 부탁을 받은 적이 있나.
"그런 적 없다."

- 인터넷 기사를 본 뒤에 누가 누출했는지 알아보았나?
"알아보지는 않았다. 알아본들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 사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일 갖고 왜 자꾸 전화하는가."

J교감은 이 학교의 생활기록부 누출 사실에 대해 잡아뗐다. 종이 생활기록부가 스캔 작업 등을 거쳐 전산화되긴 했지만, 1차 누출 지는 이 학교일 가능성이 높다.

같은 날 해당 기사를 쓴 <조선> 소속 2명의 기자에게도 전자메일을 보냈다. '학교가 생활기록부 누출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활기록부를 입수했는지 알려 달라'는 질문이었다. 두 기자의 전자메일 수신 사실이 '수신확인' 시스템을 통해 확인됐지만, 두 기자는 모두  답을 하지 않았다.

'양가 아저씨'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아주, 양가 아저씨야! 양가 아저씨."

윤아무개 감사원장 후보가 2003년 9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들은 말이다. 이날 한 의원은 윤 후보의 중고등학교 학생생활기록부를 들먹이며 "후보자의 수학성적은 고 2, 3학년 전부 양하고 가뿐"이라면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이 같이 놀렸다.

이 당시 윤 후보와 그의 부인 학생생활기록부를 교육부가 학교에서 빼내 와 해당 국회의원에게 건네 준 사실이 들통 나 논란이 된 바 있다.

"노무현 누구인가/여 대선후보; '두뇌명철, 판단력 풍부… 비타협적 극히 독선적' 중3기록부"

2002년 대선을 앞둔 4월 29일치에서 <조선>이 실어놓은 기사 제목이었다. 중3 생활기록부를 입수해 상대를 공격한 본보기였다.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가 있다면 이런 송아지를 잘 교육해서 민주적인 사회인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기록한 내용이 바로 생활기록부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활기록부가 무차별 노출된다면 해괴한 '양가 아저씨'는 계속 나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생활기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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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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