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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님,

세상은 분명히

스님 편이 아니었는데도

밤낮으로

 

이 춥고 헐벗은 

세상에게 

겹겹이 옷을

입혀 오신 스님…

 

그러나

정작

스님께서

이 가난한 세상이

스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혀주려는

그 수의를

왜 입지 않고,

 

그 먼 먼 도리천에서도,

멀고 멀고 높고 높은 

아득한 수미산까지

어떻게 헐벗은 채 가시려는지요 ? 

 

그렇게 스님이 야멸차게 

세상을 등지고 

무소유의 뜻으로 일관하셨어도,

 

이 세상에서

물거품 같이 사라질

물질주의 세상이 

끝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그 어떤 세상의

세상도 

아마도

스님의 초지일관의 무소유 

이해는 할 수 있다 해도

그 뜻을 따를 세상은

한 세상도

이 세상에는 없을 듯 합니다.

 

스님,

성속에 살면서도

성속보다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해서

그 사랑의 태산만한

죄만큼 …

 

깊고 깊은 

첩첩산중

골짜기에 

스스로 스님을

버리고 버려

한마리 노루처럼

외롭게 사셨던 스님.

 

스님, 

허구 많은 세상 중에 

춥고 배고픈 세상은

스님의 사랑 아직 받지 못한 세상 많습니다.

아니 아직 스님의 편지가

도착하지 않은 세상도 있습니다.

 

스님이 먼 먼 저 전생에서

부모님과 처자식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 듯이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 밥버러지 세상의 저는 

그저 스님의 다비장에

가 볼 생각도 없이

꾸역꾸역 밥을 먹습니다.

 

그래도 스님을 가장

사랑했던 삼천대계의 활짝 핀 꽃들을 보세요.

사방천지 전쟁 난듯 야단입니다.

이승에서 고생 많으셨다고

저승길목마다 저것 보세요.

 

저렇게 환영하듯이 꽃 폭탄을 터뜨립니다.

한 장 한 장 꽃잎 즈려 밟고 

오고 갈 곳 없는

춥고 배고픈 영혼들도  

깡마른 햇살을

염화처럼 꺾어서 

따르고 있습니다

 

*'봄의 이변,' 제목은, 법정스님의 '물소리 바람소리'에서 인용함.

 

법정 스님을 꼭 두 번 뵈었다. 한 번은 87년인가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열린 강연회(공식적 강연제목은 너무 오래되어서 잊어버렸다)에서 뵈었다. 그러나 다행히 난 뒷좌석에서라도 앉을 수 있었지만, 그날 스님과 고은 시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몰린 인파와 이에 동원된 경찰 등으로, 강연장에 늦게 도착한 청중들은 장내 밖에서 스피커를 통해 법정 스님의 강연을 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리였다. 그러나 만남의 시간은 정말 1분도 채 안되었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내 머리에서는 스님의 그 무쇠라도 뚫을 듯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불과 얼마 전, 나는 법정 스님의 사회사업 단체 '맑고 향기롭게'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받았다. 그 신문에는 법정 스님 글이 빠짐 없이 연재 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스님의 연재의 글이 정말 마지막이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무심히 읽었으리라. 그보다는 법정 스님의 글이 연재되고 있는 '맑고 향기롭게' 신문에 내 글이 함께 게재되었다는 것에 가슴 설레였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 바람처럼 스치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인연도 수 억만겁의 윤회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와 법정 스님의 인연도 작은 만남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베스트 셀러의 저자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정신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겠다.

 

스님의 글 한편 읽고 선뜻 나서서 많은 재산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다면, 법정 스님의 글을 새겨 읽어 마음의 양식으로 삼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후자들 속에서도, 가장 앞줄에 서고자 밀고 당기는 마니아 팬에 속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님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덧붙이는 글 | 법정 스님


태그:#법정 스님, #물소리, #바람소리, #무소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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