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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말과 침묵>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산방한담> <버리고 떠나기>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 <나누는 기쁨>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텅 빈 충만> <인연이야기> <인도기행> <깨달음의 거울> <숫타니파타> 등, 지난 날 참 많은 법정 스님의 책을 읽었다.

법정 스님께서 위독하시다는 뉴스를 들은 며칠 전부터 지난날 함께 해 온 법정 스님의 책들을 헤아려보곤 했다. 스님의 은혜를 참 많이 입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지난날 법정 스님의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었으며, 지난 날 내 삶의 중요한 길을 결심하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얼마나 읽었던가

ⓒ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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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는 1974년 출간 이후 360만부 가량이 팔렸단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세상 모든 것을 잃어도 <무소유>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고 했단다. 불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잊지 못할 책이 되고 있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해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불자이자 지난날 한때 출가자의 길을 선택했던 내게 법정 스님의 책들은 좀 더 특별하다. 일반인들에게 '사람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법정 스님의 글에는 불교의 세계관, 생명관 등과 함께 '불자로서 마땅히 그리해야 할' 준엄한 가르침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만난 법정 스님의 책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앞만 보고 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하는 내용이 인상 깊게 담긴 <서 있는 사람들>(1978년 4월 샘터 출간)로 1981년이다. 어떻게 그 책을 읽었는지는 특별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만난 책은 <말과 침묵>인데 이 책과의 만남도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불교에 마음을 둔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법정 스님의 글들은 건강하고 실천적인 불교를 알게 했다는 것이다. 스님의 글을 만나기 전까지 내게 불교는 다소 염세적이고 비세속적인 것들이었다. 또한 출가자로서의 삶을 꿈꾸게 했다. 법정 스님은 불자인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스님이요, 책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였기 때문이다.

<무소유>와의 만남은 좀 더 특별하고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절에 함께 가서 한 이불 속 잠도 자고, 일요일이나 방학 때면 일부러 불러내 맛있는 밥도 사주셨던,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를 편지로 보내주시곤 하던 모 선생님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란 제목에 밑줄을 그어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곡절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낡은 108염주와 함께.

밤 열 시 가까이 되어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새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이 손에는 약사발이 들려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약을 마시라는 것이다. 이때의 일은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의 헌신적인 정성에 나는 어린애처럼 울고 말았다. 그때 그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암자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이래야 40여리 밖에 있는 구례읍이다.

그 무렵 교통수단이라고는 구례장날에만 장꾼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있었을 뿐이다. 그날은 장날도 아니었다. 그는 장장 80리 길을 걸어서 다녀온 것이다. 서로가 돈 한 푼 없는 처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구례까지 걸어가 탁발을 하였으리라. 그 돈으로 약을 지어 온 것이다. 머나먼 밤길을 걸어와 약을 달였던 것이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나는 평생 처음 온 심신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반의 정이 어떤 것인지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 <무소유> '잊을 수 없는 사람'중에서

머무는 곳마다 묵묵한 실천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 깊게 배려했다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쳐다보고마는 덜컹거리는 버스 창문의 나사를 조여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거나 등, 늘 깊은 감동으로 법정 스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자비보살 수연 스님의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감동스럽다. 이후 수연 스님은 내게 '제대로의 보살의 길'이 되고 있다.

이후 무소유를 몇 번 읽었던가. 1990년대 말부터 몇 년간은 해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책으로 <무소유>를 읽기도 했다. <무소유>는 이미 오래 전 양장본으로 재출간 됐지만 내가 처음 만난 <무소유>는 범우사에서 나온 작은 문고판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그때와 속은 같지만 책표지만 바뀐 것으로 2004년 화재 직후에 구입한 것이다.

화재로 한꺼번에 많은 책을 잃고 다시 마련해야하는 살림살이들이 많아 한창 쪼들릴 때 '아무리 쪼들려도 이 책만큼은 사두자' 싶어 열 권을 샀는데 <무소유>도 그중 한 권이다. 그때 이미 서점에서는 내가 처음 만난 문고판보다 글씨도 크고 읽기 좋게 재출간된 양장본이 팔리고 있었지만, 그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과 그 책을 보내주신 선생님과의 잊지 못할 특별한 인연 때문에 글 배열이 같은 문고판을 샀다.

내게 '사람의 길'을 고민하게 한 법정 스님 그리고 책

내가 법정 스님의 책을 만난 1981년 당시만 해도 출가는 씻지 못할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나 세상을 등지며 택하는 새 삶의 길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런지라 승복을 입고 몇 날 며칠씩 절에 머물며 기도도 하고 이런저런 절일을 하는 날 보고 의미 담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법정 스님의 책을 만나기 전에 이미 내게 환희심이란 법명이 있었다. 반야심경은 물론 천수경까지 독송하곤 했었다. 틈만 나면 몇날 며칠씩 절에서 사는 나를 향한 세상 사람들 시선이 어떻거나 청소년기와 청년기 내가 생각하는 최고로 값진 삶은 보살, 즉 출가에 있었다. 나의 가장 간절하고 큰 꿈은 진정한 출가자, 제대로 된 보살의 길이었다.

이제 생각하면 나는 참 턱없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법정 스님을 처음 알게 된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 즈음에 난 법정 스님처럼 살고 싶은 꿈을 가졌었다. 이런지라 일반인들과 달리 법정 스님이 불자들에게 추천하는 <선가귀감>이나 <초발심자경문> <숫타니파타>를 남다른 감회로 읽기도 했다.

<선가귀감>은 서산대사가 조사들의 어록과 법문 중에서 교훈이 될 만한 것을 뽑은 것으로 법정 스님이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깨달음의 거울>이란 제목으로 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경전의 체계를 갖추기 전, 부처님이 초기 교단에서 말씀하신 것을 엮어 놓은 근본 경전입니다. <아함경>이 생기기 이전의 경전이기 때문에 표현이 매우 소박합니다. 어떤 법문을 들으면 마치 부처님의 육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초기 교단의 수행자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또 초기 교단의 수행자들에게 부처님은 어떤 가르침을 폈는가, 그 당시에는 어떻게 수행을 했는가 하는 것을 <숫타니파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전도 좋아해서 제가 번역을 몇 차례 했는데, 최근에 새롭게 장정을 해서 출간되었습니다. - 법정 스님

일반인들에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글로 유명한 <숫타니파타> 역시 내게는 남다르다. 법정 스님의 출가자로서의 청빈하고 맑은 삶이 존경스러워 나도 그렇게 살리라 막연하게 꿈꾸던 청소년기와 달리 청년기에 이 책을 읽으며 '보살의 길=출가수행자의 길'에 확신을 가졌고 몇 년 간의 고민을 접고 출가자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것과 가장 값진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다. 그때 함께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은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와 <나누는 기쁨> <진리의 말씀> 등이다. 이 책들은 선사들의 선문답과 보살의 길에 관한 것들을 스님이 경전 등에서 뽑아 엮은 것들로 송광사에서 운영하는 불일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많이 좌우하는 사춘기와 청년기에 출가수행자의 <홀로 사는 즐거움> 혹은 <텅 빈 충만>을 선택했다가 <서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어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 살아온 날을 되돌아볼 겨를조차 없이 살아가는 지금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길고 긴 곡절의 사연을 어찌 몇 줄 글로 설명할 수 있으랴!

다만 분명한 것은 한때 내게 출가수행자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하게 했던 법정 스님은 '진정한 출가란 그 형태에 있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출가만이 능사가 아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남에게 베풀고 남을 위해 사는 것도 제대로 된 보살의 길이자 진정한 출가다'라고 가르침으로써 출가를 놓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 대한 수많은 가치관과 인생관 등이 결정되기에 무척 중요한 시기인 사춘기에 법정스님을 만난 덕분에 '사람의 길'을 언제나 고민하고 염두에 두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날 법정스님의 책을 읽으며 얻은 가르침들을 어찌 모두 열거하랴. 아주 오래전 의미 있게 새겼으며 지금도 내게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는 법정 스님께서 들려준 이야기 하나.

법정 스님께서 해인사에서 참선을 배울 때였단다. 어느 날 방선 시간에 법당 주변을 돌고 있는데 어떤 보살이 장경각에서 내려오며 "팔만대장경은 어디에 있느냐?"며 묻더란다. 해서 "지금 보고 오지 않았느냐?"며 대답했더니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하더란다. 그때 눈이 번쩍 뜨이며 생각했단다. 아무리 지혜롭고 자비스러운 부처님의 말씀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아 있으면 한낱 빨래판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고.

법정스님께서 1960년대 초에 통도사 운허스님을 도와 불교사전 편찬을 도운 계기를 설명한 이 글을 사춘기에 읽으며 팔만대장경을 보고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빨래판이라고 대답한 그 보살이 또 다른 나인 것 같아 출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아는 만큼, 인식한 만큼 보이고 느낄 수 있을 것이기에.

"세상 모든 길을 다 막아 버리려는 듯 큰 눈이 내리던 20대의 어느 겨울날, 나는 그 무엇에도 막힘없이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 효봉 스님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나는 그 자리에서 출가를 결심하고 며칠 뒤 경남 통영에 있는 작은 절로 내려가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단박에 삭발을 결정하고 얻어 입은 승복까지도 그리 편할 수가 없었건만, 집을 떠나오기 전 나를 붙잡은 것이 책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어렵사리 모은 책들을 버리고 떠나는 게 못내 망설여졌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차마 다 버릴 수가 없어서 서너 권만 챙겨 가리라 마음먹고 이 책 저 책을 뽑았다가 다시 꽂아 놓기를 꼬박 사흘 밤. 책은 내게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 - 법정 스님

불자로서 이처럼 남다른 감회와 인연으로 법정 스님의 책들을 읽기도 했지만, 스님 덕분에 의미 있는 책과 아름다운 사람들을 여럿 만나기도 했다. <닥터 노먼 베쑨> <희망의 이유> <그리스인 조르바> <작은 것이 아름답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식물의 정신세계> 등은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며 선택했던 책들로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 책들이다.

너무 떨어져 살았구나, 다시 <숫타니파타>를 읽어야겠다

불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에 마련된 법정 스님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드리고 있다.
 불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에 마련된 법정 스님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드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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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늘은 법정 스님이 다비와 함께 세상을 떠나는 날이다.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가르침과 위안을 주셨던 법정 스님은 지금 어디쯤에 계실까? 오전 10시쯤 타오르기 시작했을 다비의 불꽃은 며칠 전 내린 눈 속에서도 싹을 틔워 올릴 준비를 했었을 뭇 생명들에게 거센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온기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제가 의지하고 늘 수지독송(경전이나 책을 항상 잊지 않고 지니며 소리 내어 읽음) 하며 곁에 두고 스승으로 삼는 서적을 몇 권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초발심자경문>입니다. 제가 중이 된 지 반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 <초발심자경문>을 읽습니다. 절에 들어와 처음 은사스님(효봉 스님) 앞에 꿇어앉아 그 전날 배운 것을 외워 가며 익혔던 글입니다. 단지 글만 풀이하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옛 수행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행했는가 하는 것을 그 글을 통해 낱낱이 배울 수 있었기에, 늘 그 가르침이 저한테 남아 있습니다.

백지 상태로 처음 절에 와서 배우는 교훈이 <초발심자경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초발심자경문>을 읽으면 새롭습니다. 지금도 7월 보름 하안거 해제일이 되면 제가 계를 받은 그날로 돌아가 예불 끝에 꼭 <초발심자경문>을 독송합니다.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지니기 위함입니다. 또 제가 거처하는 오두막 불단에도 <초발심자경문>을 늘 모시고 있습니다. - 법정 스님의 '수행자는 늙지 않는다'중에서

출가수행자의 길을 놓아야만 했던 1988년 가을, 송광사에서 며칠 머물며 잠깐 뵈었던 스님의 모습이 요즘 며칠 흐릿하게 떠오르곤 한다. 밤새 베개 속을 타고 흐르던 송광사 계곡 물소리와 함께. 그동안 먹고 사는 일에 너무 얽매여 출가 수행자의 길을 놓던 그때 스님과 내 자신에게 약속한 보살의 길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반성과 함께.

스님은 사춘기와 청년기의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출가의 길을 놓던 날 '다시 태어나면 그렇게 살리라'의 서원을 세우게 했다. 지난날 한때 가장 닮고 싶었던 법정 스님은 이렇게 가셨지만 법정 스님께서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수지독송했다는 <초발심자경문>과 내게 출가자의 길을 선택하게 했던 <숫타니파타>를 읽어야겠다.


태그:#법정스님, #수행자, #숫타니파타, #무소유, #서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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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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