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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 점식식사 모습.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 점식식사 모습.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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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은 무조건 배급하자는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 - 김문수 경기도지사
"무상급식은 얼치기 좌파가 국민 현혹하기 위해 내세우는 정책." -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급식, 형편이 되는 사람은 자기 돈으로 사먹어야." - 이명박 대통령

이들은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다. 또 이들은 위의 발언이 증명하듯 '사회주의'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동원해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경남 합천군은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 깃발을 꽂은 '붉은 지방자치 단체'여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러한 질문을 갖고 11일 경남 합천군으로 향했다.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는 지자체다. 경남 창원시에서 출발한 버스는 황강을 건너 합천군에 이르렀다. 버스에서 보니 황강 둔치에 잘 조성된 공원이 보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해공원'이다.

그렇다. 합천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정당으로 따지면 한나라당이 지지를 받는 곳이다. 결국, 규모는 작아도 경남, 특히 그중에서 합천군은 한나라당의 안방 중의 안방이다. 한나라당의 논리를 빌리면, 이런 곳에서 '사회주의의 꽃'인 무상급식이 활짝 피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방 합천군,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
합천군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니, 택시를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기사들의 무리가 보였다. 슬쩍 다가가 대놓고 물었다.

"서울에서는 한나라당이 무상급식이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반대하고 있는데요?"
"뭐? 사회주의? 내 자식이 거지가? 합천군민이 전부 빨갱이가!"

서울에서 내려온 내게 한 택시기사의 경남 사투리는 '버럭' 화를 내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내 아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여그 학부모들이 무상급식 얼매나 좋아하는대예"라며 "내 아가 친환경 농산물 묵는데, 이 아빠보다 더 좋은 거 묵는다 아입니꺼, 내는 한우 비싸서 못 묵는데 갸는 학교에서 한우를 맘껏 묵으예"라며 웃었다.

그 기사에게 "아들이 다니는 합천초등학교에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기사는 "바로 조깁니더"라며 턱으로 가리켰다. 걸어가라는 말이었고, 그만큼 가까웠다.

낮 12시께, 합천초등학교 급식실에 도착하니 1, 2학년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식판을 보니 푸른빛이 도는 클로렐라쌀밥, 새송이크림스프, 딸기, 봄동겉절이, 햄버거스테이크가 놓여 있었다.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에서 11일 점식식사로 제공된 음식.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에서 11일 점식식사로 제공된 음식.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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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건, 학생들이 먹는 음식 식재료는 모두 지역 농민들이 친환경으로 재배한 것들이라는 사실! 이날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햄버거스테이크 역시 1등급 합천군 '황토한우'로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식재료는 이날 아침 농가에서 직접 배달돼 조리된 것이다.

식당 한쪽에 붙어 있는 음식물 원산지 표시를 보니, 한마디로 '감동'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오리고기, 식육가공, 쌀, 김치 모두 국내산이다. 100% 친환경 국내산. 오늘날 이런 원산지 표시, 정말 보기 어렵다.

1, 2학년이 식사를 마치면 곧바로 3~6학년들이 순서대로 들어와 식사한다. 부잣집 아이,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 아이,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모두 차별 없이 똑같이 공평하게 밥을 먹는다.

집에서도 못 먹는 좋은 음식, 학교에서 차별없이 먹는다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의 11일 급식실 주방 모습. 그날 아침 배송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조리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1등급 한우로 햄버거스테이크를 조리하는 모습.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의 11일 급식실 주방 모습. 그날 아침 배송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조리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1등급 한우로 햄버거스테이크를 조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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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신분이 다르고, 가정 경제 규모가 차이 나도 아무 문제가 아니다. 합천초교 전체 764명의 아이들은 모두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최상의 음식을 급식으로 먹고 있다. 사회적 시선이 어떠하든, 밥상에서는 차별이나 배제가 없다.

교장과 교감, 교사들도 모두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 교사 리암 파넬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한국말로 "맛있냐?"고 물으니 "Oh, Good!"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사실 애들한테 밥값 받는 게 좋은 건 아니죠. 돈 못 내는 아이들도 있는데, 독촉하는 것도 어른들이 할 일이 못돼요. 아이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요. 어린 아이들에게 눈칫밥 먹이면 되겠어요?"

김미경 합천초교 영양교사는 부산하게 음식을 나르며 말했다. 김 교사의 경력은 16년이고, 합천초교에는 3년 전에 왔다. 100% 친환경 무상급식 실현은 김 교사에게도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는 돈에 맞춰 음식을 했어요. 무상급식 이전엔, 어떻게 하면 값싸고 질 낮은 식재료를 갖고 질 좋게 보이는 음식을 만들까를 궁리했죠.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최고급 식재료로 최고 좋고 안전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 건강에도 좋으니, 당연히 영양교사로서 자부심도 커졌죠."

영양교사로서의 자부심. 곁에서 지켜보니 그럴 만했다. 합천초교 급식실 바로 앞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이 담긴 장독대가 설치돼 있다. 학교에서 직접 만든 장들은 학생들 급식에 이용된다. 급식에 화학조미료는 사용되지 않는다. 인근에 있는 남정초교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는 매실 액은 물론이고 멸치액젓도 직접 만들어 급식에 사용한다.

민근숙 남정초교 영양교사는 "솔직히 나도 집에서는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한다"며 "아이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학부모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교사들 역시 친환경 무상급식을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다. 교육적으로 탁월한 제도이면서, 교사들의 업무를 확 줄여준다는 것이다. 박태정 합천초교 교감의 무상급식 자랑은 결국 교육 그 자체다.

"아이들에게 급식비 통지서 발부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그게 끝인 줄 압니까? 누가 돈 못 냈는지 확인해야지, 특히 돈 내라고 부모에게 전화하는 건 정말 교사로서 체면이 안 서는 일이죠. 그런데, 돈 못 내는 아이들이 많으면 그걸 다 학교 운영비로 채워야 합니다. 운영비 줄어들면 결국 학교교육이 부실해지요. 그러면 저희들은 돈 걷으라고 교사들 채근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다시 교사들은 스트레스 받아 교육에 집중을 못 하죠. 무상급식 이거, 대단히 좋은 교육 정책입니다."

"도로포장 1km 안 하면 무상급식 가능, 우선 순위의 문제"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합천초교 점식식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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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구 5만2000여명의 작은 군이자, 한나라당 안방인 합천군은 어떻게 무상급식을 시작했을까. 한 마디로, 공무원-교사-농민-시민운동가의 환상적 결합 때문에 가능했다. 이 중에서도 합천군민들은 군청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합천군의 1년 예산은 약 3200억 원이다. 재정자립도는 12.72%에 불과해, 경남 10개 군의 재정자립도 15.1%보다 낮다. 이렇게 작은 지자체에서 무상급식비 약 17억 원을 내고 있다. 여기에 경남교육청 예산 16억 원을 더해 총 약 33억 원으로 초중고 전체 37개교 4769명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고교생들은 저녁까지 학교에서 먹고 있다. 

심의조 합천군수는 한나라당 소속이고, 군의회도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다. 군청은 물론이고, 군의회는 정치 논리로 무상급식을 바라보지 않았다. 무상급식은 교육과 복지였다.

심의조 합천군수는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를 알아보니 바로 교육 부실 때문이었고, 2005년 합천군에서만 중학교 졸업생 40%가 진주나 부산으로 떠났었다"며 "결국 우리는 농촌과 합천군을 지키기 위해 교육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심 군수는 "교육 강화를 위해 약 100억 원의 교육발전기금을 모집해 '합천 종합교육회관'을 운영했는데,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학생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오히려 도시에서 합천으로 오고 있다"며 "최상의 교육복지를 위해 무상급식도 실시했는데, 주민과 학생들의 호응이 아주 높다"고 덧붙였다.

심 군수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 합천군은 5년 전부터 인구가 줄지 않고 있으며, 학생들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래도 재정자립도 12.72%인 작은 군에서 무상급식비 17억 원을 내는 게 쉽지는 않을 터. 하지만 심 군수의 대답은 간단하고 쉬웠다.

"도로포장 1km만 안 하면 됩니다. 아이들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죠. 합천군은 작기 때문에 무상급식이 가능하다고요? 반대로 생각하십시오. 대도시는 그만큼 예산이 많지 않습니까? 예산 집행에서 뭘 우선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농민-학생-지자체 모두가 좋은데, 왜 안해?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남정초교의 장독대. 이 학교는 된장, 고추장, 간장은 물론이고 매실액도 직접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한나라당의 '안방' 경남 합천군은 초중고 100%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고 있다. 합천군 남정초교의 장독대. 이 학교는 된장, 고추장, 간장은 물론이고 매실액도 직접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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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생활 여건도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천군 대양면 대목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에 공급하는 강재성씨는 "학교라는 안정한 팔로가 있어 농사짓는 일이 다소 편해졌고, 귀농자들도 늘고 있다"며 "농촌 환경도 좋아지고 있는데, 무상급식으로 농민-학생-지자체 모두가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무상급식 실시로 학생은 건강해지고 학교는 교육에 집중하며, 농촌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자체는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경남 합천군은 이 모든 걸 증명하고 있다.

11일 저녁 합천군을 떠나기 직전 학부모 김아무개(43)씨에게 다시 물었다.

"서울에서는 한나라당이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무상급식 반대하고 있는데요?"
"지들 지지하는 경남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가! 지들 '안방'에서는 다 무상급식하는데, 여그 군수랑 의원들은 빨갱이 수괴가!"

합천에 들어올 때처럼 '버럭' 화내는 소리로 들렸다.


태그:#무상급식, #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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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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