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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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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려대 학생이 쓴 '자퇴 선언' 대자보가 화제다. 신문에 인용된 글을 보니 "큰 배움 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돼 부모 앞에 죄송하다"는 것이 자퇴의 이유로 보인다.

좀 가볍게 얘기하자면, 수천만 원의 등록금과 수년의 시간에 대한 '본전 생각'이 든 것이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결국 돈 때문이야'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온갖 복잡한 문제들과 닿아있을 이번 사안을 조금 단순화해서 살펴보자는 뜻이다.

적자세대 고려대 김예슬 학생의 자퇴

언제부턴가 대학 등록금은 매년 두 자리씩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중반쯤이 그 시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대한민국에 상륙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자유화와 개방화(세계화) 그리고 유연화라는 더 없이 세련된 지상과제들 앞에 그동안 익숙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1996년 대부분의 대학들이 기존의 학과 체제를 허물고 '학부제'를 시작한 것도 그런 변화 가운데 하나다. 학부제와 학과 체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제도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당시 대학 사회 안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대학 등록금이 두 자리 수로 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세계 100위권 대학,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학 당국도 등록금을 무턱대고 올려대는 것이 민망했는지 서로 눈치를 보다 급기야 '담합'을 하기에 이르렀다. 몇몇 주요 대학들이 인상률을 소수점 아래 숫자까지 맞춘 것이다. 명백한 불법이었지만 정부는 침묵했다.

결국 1996년 3월에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일제히 강의실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김영삼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까지 겹치면서 대학생들과 정부는 날카롭게 부딪쳤고, 결국 그 과정에서 연세대 법학과 2학년이던 노수석 군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14년간 대학 등록금은 금융 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거의 예외 없이 올랐다. 그것도 아주 '무섭게' 말이다. 매년 봄이면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학생들과 대학 당국 그리고 정부의 마찰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물론이다.

등록금 인상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대학교육

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등록금넷)은 지난해 7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값 등록금' 이행, '등록금 상한제·후불제 ·차등책정제' 입법화, 고등교육재정 확충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등록금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등록금넷)은 지난해 7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값 등록금' 이행, '등록금 상한제·후불제 ·차등책정제' 입법화, 고등교육재정 확충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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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첫 머리에 쓴 '본전 생각'으로 돌아가 보자. 온전히 시장 논리로만 보면 '등록금'은 대학 교육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렇다면 역시 온전히 시장 논리로 이런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정말 대학 교육이라는 것은 그 많은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할 만큼 '가치있는' 상품일까, 다시 말해 대학 교육은 과연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쓸모가 있을까.

대학 교육을 역시 단순하게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으로 본다면, 이 상품의 가치는 졸업 이후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시점에서 매겨지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어느 정도나, 또는 얼마나 다양하게 뒷받침 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오늘 대한민국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 대학 교육의 가치(가격)가 턱없이 높게 매겨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엊그제 사상 최초로 대학진학률이 하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직 원인을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대학 교육의 비용 대비 효용에 대한 회의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만일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라면, 대학 교육이라는 상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대학 교육의 변화 속도는 결코 등록금 인상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정문.
 고려대학교 정문.
ⓒ 김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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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학생이 선택한 인간의 길, 건투를 빈다

해법은 간단하다. 대학 교육의 가격을 그 가치에 맞게 조정하면 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대학 등록금을 떠받치고 있는 어마어마한 거품을 빼야 한다. 더 이상 아무 쓸모도 없는 상품을 사기 위해 수천만 원의 돈을, 그것도 감당할 수조차 없을 빚을 져가며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대학 당국과 이명박 정부가 좋아하는 시장 논리가 아닌가. 이제 우리 사회가 대학 등록금의 '본전'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대자보에 이런 글도 등장한다.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부디 속단하지는 말기 바란다. 블로그에 올린 글도 아닌, 그저 자보 몇 장에 휘갈겨 쓴 글이 모 신문의 1면을 장식했으니 그 울림이 어디까지 전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 않은가. 학생이 선택한 "인간의 길", 그 울림이 더 멀리 퍼져나가기를 마음 깊이 응원한다.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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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미디어센터장입니다. 김예슬 학생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태그:#김예슬, #대학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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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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