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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1주일 앞둔 2월 23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는 사교육비 조사를 한 이후 최초로 2009년 상반기에 비하여 2009년 하반기 사교육비가 줄었고, 전체적으로도 사교육비 증가율이 둔화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의 원인을 입학사정관제 도입, 외고 입시 개선, 자율형사립고 등 학교 다양화 정책 등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은 사교육비 총액이 늘었고, 극심한 경제난에 실질 소득이 줄었는데 실질 사교육비는 훨씬 더 많이 늘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정부의 아전인수식 해석을 비판했다.

또 국민의 시선을 끄는 것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실이 발표한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사립대학의 외고 출신 입학생 비율이다. 올해 입학생들의 출신 학교를 분석한 결과 인문사회계열 합격자 중에서 외고 출신 합격생의 비율이 연세대 48.9%, 고려대 41.3%로 거의 절반에 이르렀다. 작년보다 10% 이상 증가한 수치인데 최근 고교 등급제와 외고 우대 등으로 계속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외고 편중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 불평등 심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참고로 전국에는 고등학교가 3000곳 있고, 그 중 외고는 30곳으로 전체의 1%다.

3월 9일 개학 1주일 만에 전국 초등학교 3∼5학년과 중학교 1∼2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진단평가라는 이름의 일제고사가 진행됐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중 유일하게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만 학교에 시험 참가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고 나머지 시도는 모두 의무적으로 참가하도록 했다. 현재 서울과 강원도에서 일제고사를 반대한 10명의 교사들이 시도교육청에 의해 해임된 것이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교육청은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이번 진단평가에도 서울, 울산, 전남 등 전국 각지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간 학생들이 있어 다시 교육 당국과 마찰이 예상된다.

UN 사회권 위원회는 우리 교육을 어떻게 보고 있나

'유엔 사회권위원회'로 불리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UN committee on Economical, Social, Cultural rights)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 이하 사회권 규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유엔 산하 기관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 유엔 사회권 규약에 가입해 1995년과 2001년에 이어 2009년 세번째로 '규약 이행 여부'를 심사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교육을 포함,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2009년 심사에서 나온 권고 건수는 83건으로, 1995년 20건, 2001년 30건에 비해 급증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인권 수준의 후퇴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 권고사항을 주제별로 분석해 보면 법제도(6개), 여성아동청소년(18개), 교육(7개), 이주 외국인(14개), 노동(13개), 사회보장(6개), 주거(11개), 건강(2개) 등으로, 교육과 아동청소년 등과 관련된 내용이 무척 많다.

최근의 교육 기사에서 보듯 우리 초중등 교육의 큰 문제가 높은 사교육비, 교육불평등, 일제고사 등이라는 점은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그런데 과연 국제 사회, 특히 UN은 우리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고 있을까?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현 정부는 과연 국제적 표준에 맞게, UN이 권고하는 방향으로 우리 교육을 이끌어 가고 있을까?

[UN이 본 긍정성] "무상-의무교육 확대, 체벌금지"는 사회주의 정책?

UN 사회권위원회는 이 권고문을 통하여 2001년 2차 심사 이후의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분야 인권 상황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으로 호주제 폐지 등 8개를 밝히고 있다.

UN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는 지난 11월 우리 나라에 대한 3번째 유엔 사회권 국제협약 3번째 이행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한국의 사교육비,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교육불평등, 일제고사 등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런 국제사회의 권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UN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는 지난 11월 우리 나라에 대한 3번째 유엔 사회권 국제협약 3번째 이행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한국의 사교육비,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교육불평등, 일제고사 등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런 국제사회의 권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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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위원회가 2001년 이후 개선되었다고 밝힌 8가지 인권 과제 중에서 교육 분야에서 3가지가 제시됐다. 2004년 중학교 과정을 포함하여 무상·의무교육의 확대,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그 대안으로 도입한 '그린 마일리지 제도'의 시범적 운영, 그리고 문화 생활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문화 바우처 프로그램의 도입이다.

이것들은 거의 모두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참여정부 또는 DJ 정부에서 추진한 과제들이다. 특히 현재 김상곤 경기교육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무상급식의 확대와 체벌 금지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은 UN이 한국의 교육 분야 모범 사례로 제시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국 교육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습게도 무상급식과 체벌금지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논리대로라면 UN이 한국 좌파세력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권고문을 낸 것이고, 이런 주장이라면 UN도 사회주의 단체라는 의미가 되어 버린다.

거의 모든 판단의 기준을 미국과 유엔에 두고 있는 보수세력이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말로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면서 정작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우수 사례로 권고하는 '무상의무교육 확대, 체벌 금지' 등 최소한의 긍정적인 조치마저도 이념적 잣대로 매도하며 무시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 상황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UN이 본 부정성] 일제고사, 높은 사교육비, 교육 불평등 심화 등

UN 사회권위원회가 우리 교육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몇 개 되지 않는데 반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무척 많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높은 사교육비와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교육 불평등 심화, 일제고사 등이다.

이 위원회는 "한국의 학생들 사이에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야기된 '임상적 우울증'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증가한 것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히며 한국 정부 당국에 이와 관련하여 5가지를 권고하였다.

"사설학원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행할 것, 대안 학습모델을 설치할 것,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 부담이 야기하는 장기간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 부모와 국민들에게 교육할 것, 사설학원과 야간학원의 영업을 제한할 것, 학교들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고,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제약하는 일제고사(Iljegosa) 제도를 재고 할 것"이 구체적 권고 사항이었다. 우습게도 일제고사는 영어로 표현할 적절한 용어가 없어서 한국식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위원회는 사교육과 관련해서도 별도의 항목으로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높은 교육비, 교육 분야에서도 점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자료와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개인 과외와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의하여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학생들이 (부모의) 경제력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 당국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 서민 가계에 심각한 부담이 되고 있으며, 중산층의 삶의 질 하락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저소득층에게 교육 분야에서의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이렇게 UN 사회권위원회는 우리 나라의 일제고사의 문제점과 사교육비의 문제, 그리고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교육의 불평등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비판적인 교육단체가 주장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우리교육, 특히 현 정부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UN 권고 무시하고 국제 사회와 거꾸로 가는 우리 교육

UN사회권 위원회는 일제고사의 재고를 우리 정부에게 권고했지만 우리 정부는 반대로 일제고사를 반대한 교사들을 해고하고, 실시 횟수와 예산을 늘이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국가수준학업성취(NAEP)도 평가를 표집으로 하고, 학교와 학생의 참가 역시 자기 의사에 따라 거부할 수 있다.

영국도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서는 이미 모든 학년에서의 일제고사식 학업성취도 평가가 폐지되었고, 잉글랜드에서도 중학교 수준의 일제고사(SATs)를 폐지하여 초등학교 4학년에만 남았으며 이마저도 교장들과 교사들이 공동으로 보이콧을 선언한 상황이다. 일본도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가 일본식 일제고사(전국학업능력조사)를 표집평가로 전환하여 일제고사(Iljegosa)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제도가 되었다.

또한 UN 사회권 위원회는 무상교육과 의무교육의 확대를 우수 사례로 권고하고 있지만 김상곤 경기교육감을 비롯한 교육계 개혁세력이 주장하는 무상 급식 추진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체벌 금지 역시 이 위원회는 모범 사례로 제시되고 있지만 한나라당과 보수적 단체들은 학교 현실을 무시한 좌파 정책 어쩌고 하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 정부는 사교육비 감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추진하는 정책마다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는 것들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위원회가 지적한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상위권 대학 진출 기회의 제약으로 대표되는 교육불평등의 대물림 역시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 최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의 자료에 의하면 연세대와 고려대의 올해 합격생 중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외고 출신이 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 위원회는 이 권고문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국민의 사회경제문화적 권리, 특히 사회적 약자를 위한 권리가 경제 규모에 맞게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약자가 더 취약한 의료, 교육, 물-전기 공급 등 공공 영역의 과도한 사유화와 빈약한 공적 사회 지출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와 지원 받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로의 위상 변화를 거론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격'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격을 논하는 정부라면 국제사회의 대표적 기구인 UN의 권고를 회원국으로서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권고한 내용을 받아들여 일제고사와 학생 체벌을 금지하고, 사회적 약자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사설 학원의 영업을 제한하는 등 사교육비를 실질적으로 경감하여 교육불평등의 심화를 막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제적 표준이고, 국격을 높이는 길이다.

왜 말로는 국제사회의 일원, 국제적 표준, UN 회원국의 책임, 국격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중요한 교육분야의 국제적 표준을 지키고 있지 않는지에 대한 비판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태그:#유엔, #사회권위원회, #일제고사, #사교육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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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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