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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꾸물꾸물하던 날씨는 정말 기상청의 예언대로 9일 오후가 되자 눈이 펑펑 내린다. 남녘에서는 모락모락 봄꽃 소식이 들려오는 3월에 말이다. 예년 같으면 한결 부드러워진 봄의 훈풍을 느끼며 하루하루 봄꽃이며 봄나물을 기다리고 있을 때인데, 올 겨울은 정말 유난스럽기도 하다.

 

오늘 지인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곳에 애마 잔차(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조금 갈등이 생긴다. 그래도 3월인데 설마 폭설이라도 내리겠어? 마음을 다잡고 안장에 성큼 올라타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가듯 의기양양하게 쏟아지는 눈발속으로 페달을 밟으며 나간다.  

  

의외의 봄눈에 도시는 화들짝 놀라는 모습들로 분주하다. 눈이 쌓이면서 저멀리 평범하게 서있던 북한산은 설산이 그려진 멋진 병풍으로 변하고, 불광천의 오리들도 물이 얼어 버릴까 뒤뚱거리며 발길질이 더욱 바빠진다. 눈소식에 도시인들은 금방 두 편으로 나뉜다. 곧 거북이로 변할 차속에서 내리는 눈발을 짜증스럽게 째려보는 사람들과 3월에 이게 웬일이냐며 까르르 웃으며 눈을 뭉쳐 서로 던지는 아이들과 젊은이들로...

 

몸으로 전해오는 눈길의 느낌도 한겨울과는 사뭇 다르다. 자전거 타이어를 꽉 붙들 듯하던 눈의 저항은 이제 봄의 기운으로 밀도가 풀려 가볍고 사근사근한 눈위를 달리는 것 같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좀 늦게 간다고 전해도 만나기로 한 사람은 타박은커녕 오히려 걱정하며 천천히 조심해서 오라고 한다. 눈은 누구도 못 말릴 속도전의 도시를 천천히 가게 하는 강력한 마력이 있나 보다.

 

늦는 것을 상대방에게 떳떳하게 양해 받으니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달리는 '관광 모드'로 자전거 속도가 바뀐다.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는 도로를 달리지 않고 일부러 공원도 지나고 한강 자전거길로 돌아서 가니 봄의 설경이 한결 여유롭게 다가온다.

    

같은 눈이라도 3월에 내리는 눈은 왠지 겨울눈 같지가 않아서 그런지 얼굴에 닿아도 한겨울의 차가움이 덜하다.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 그침이 없는 눈발에 도로는 물론 한강 둔치길에도 인적이 뚝 끊겼다. 한강과 한강을 잇는 다리들 위로 쉴새없이 내리는 눈도, 인적없는 한강 둔치길도 지난 겨울처럼 춥고 두렵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진다. 3월이라는 봄의 든든한 배경이 이렇게 눈이 쏟아져도 마음속에 난로를 갖게 하나 보다.

  

남겨둔 눈들을 모두 쏟아내는 듯 내리는 눈발이 아마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올 겨울 마지막 눈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떠나는 겨울은 이별이 못내 아쉬운지 집에 도착해서도 밤늦도록 창밖으로 하염없이 눈을 뿌린다. 곧 오늘 만난 춘설이 그리워질 것 같다.      


태그:#겨울, #춘설,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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