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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66만 원(세금공제 전)→154만 원(세금공제 후)
고정지출
방세: 43만 원, 관리비(가스비·전기세 포함): 10만 원, 월 대출금 상환액: 50만 원, 휴대폰요금: 5만 원, 적금: 10만 원, 청약저축: 2만 원, 인터넷·TV: 3만 원 , 차비: 6만 원, 보험료: 부모님 납부
용돈: 25만 원

노란색 포스트잇에 수입과 지출내역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던 박지희(26·가명)씨는 '용돈: 25만 원'에서 씁쓸하게 웃었다. 부산이 고향인 박씨는 지난해 8월 서울에 있는 한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부산에서 1년 반 동안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박씨에게 물었다.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일단 제 돈 나가는 게 너무 많아요. 집세부터 시작해서 가스비, 전기세, 인터넷 요금….부산에서 직장 다닐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영화보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자주 가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도 한 달에 80만 원씩 적금도 들었어요. 증권계좌도 갖고. 나름 '재테크'라는 걸 했죠. 지금이요? 문화생활 완전 끊었죠. 영화는 주로 다운받아서 보고. 회사에서 문화상품권 주면 그걸로 보고(웃음). 인터넷 쇼핑도 완전 끊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사례 1] 25살, 취업 때문에 시작된 고달픈 '서울살이'

 반지하남의 화장대이자 텔레비전 선반. 아기자기한 분홍색, 파란색 키티인형이 상큼함(?)을 더해준다.
 반지하방 모습(자료사진)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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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5월 박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부산의 한 여행사에 취직했다. 그는 이곳에 취직하기 이틀 전까지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이듬해인 2008년 경제위기로 인해 여행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나이든 선배들 중심으로 권고사직을 당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 본 박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싶었다. 그때부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 먹고,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떠나면서 남은 돈은 대략 600만 원 정도. 그는 2008년 12월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시험 준비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달에 100만 원가량의 돈이 들었다. 1평 남짓한 고시원 비용이 무려 42만 원이었다. 동영상도 보고 책도 사고 밥도 먹어야 했다. 5~6개월간 공부를 하면서 2번의 시험을 치다보니 가진 돈은 이미 바닥났다. 공무원 시험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감당할 경제적 여건도, 마음의 여유도 점점 사라졌다. 작년 6월 결국 박씨는 다시 부산에 갔다. 그리고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2개월 동안 이력서를 진짜 많이 썼어요.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경기도 파주의 회사까지…. 지금 부산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어요. 같이 여행사 다니던 친구 한 명도 일 그만두고 5개월 동안이나 부산에서 일 구하다가 결국 고향인 마산에서 취직했어요." 

부산사람만 취업을 위해 상경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8월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지방출신의 20~30대 성인남녀 10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8명이 취업을 위해 상경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취업의 기회가 많아서'(40.3%)가 가장 많았고,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서'(17.4%), '문화생활 등 삶의 만족도가 높을 것 같아서'(16.8%), '취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12.7%), '지방보다 연봉이 높아서'(9.6%)가 그 뒤를 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실제로 취업을 위해 상경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50.4%로 절반이 넘었다. 최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취업을 위해 서울에 오는 지방구직자'를 뜻하는 말인 '서울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두 번째 직장은 좀 더 신중하게 구하려 했지만 박씨의 마음은 급했다. 수중에 돈이 없다보니 더욱 그랬다. 구직활동을 하는 두달 동안 어머니와의 마찰도 잦았다. 그러다 2009년 8월 서울의 한 외국계 회사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다. 기쁨도 잠시, 곧장 출근해야 했지만,살 집이 없었다. 3일 안에 집을 구해야 했다.

"내집 마련? 2만 원짜리 주택청약 하나만 믿고 있어요"

"원룸보다는 안전한 오피스텔을 원했는데 아는 데가 없었어요. 회사 근처인 종각에 집을 구하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더라고요. 서울에 있는 친구가 사는 원룸에 가본 적이 있는데 보증금 500에 월세 40인데도 방이 너무 작고 안 좋았어요."


경기도 부천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3만 원의 오피스텔을 얻은 건 그 때문이었다. '비슷한 가격이면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곳에 살자'고 생각했다. 보증금 500만 원은 대출을 받았다. 한 달에 50만 원씩 갚고 있는 중이다. '적금처럼 생각하고 갚자' 마음먹었지만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자친구는 인천에 있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만 원인 아파트에서 살아요. 보증금 2000만 원은 집에서 대줬다 그러더라고요. 그런 거보면 솔직히 부러워요. 예전에 저처럼 집에서 회사 다니는 애들도 그렇고, 지방에서 올라왔어도 집에서 전세금 대주는 애들도 그렇고. 저는 저축할 생각을 아예 못하거든요."

오피스텔을 얻었지만 3개월 동안은 TV도, 인터넷도 안 달고 살았다. 가구도 하나 없었다. 수습기간 동안은 월급이 80%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달 월급은 1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월급이 오르면서 가전도구들을 하나하나 장만하기 시작했다. 부산 집에는 두 달에 한 번씩 가는데, 웬만하면 대구가 고향인 남자친구가 집에 내려갈 때 차를 얻어 타고 간다. KTX를 타고 가려면 왕복 10만 원 가량 든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부산에 있는 것보다 좋은 점도 없다. 월급은 똑같은데 쓰는 돈은 더 많다. 하지만 다음 일거리를 마련 안 하고 그만둘 순 없으니 어쩔 수 없다. 8개월 동안 모은 돈? 대출금 500만 원 가운데 350만 원을 갚았고 적금은 50만 원을 모았다. 청약은 10만 원이 쌓였다. 

"내집 마련이요? 일단 집을 옮겨야죠. 더 작은 데로. 더 싼 데로. 지금은 청약 2만 원짜리 이거 하나만 믿고 있어요. 이걸 2년 넣으면 1순위가 되거든요. 청약저축 넣으러 갔더니 최소 2만 원은 넣어야 한다는데, 2만 원 이상은 넣을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으로서는 저를 위해 투자하는 게 적금 10만 원이랑 2만 원뿐이에요. 12만 원을 모으기 위해서 한 달을 일하는 거죠. 뭐 어쩌겠어요. 부산을 가든지, 계속 이렇게 살든지, 돈 많은 남자랑 결혼을 하든지. 셋 중 하나죠(웃음)."

[#사례 2] 취직한 그녀가 자취촌을 못 떠나는 이유  

 옥상에서 본 풍경.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빼곡하다. 저 많은 옥탑에서도 다들 열심히 살고 있겠지?
 서울시내에 위치한 옥탑들의 모습(자료사진)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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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36만 원(세금공제 전)→115만 원(세금공제 후)
고정지출
방세: 20만 원, 관리비(가스비·전기세 포함): 6만 원, 휴대폰요금: 4만 원, 청약: 2만 원, 인터넷: 3만 원, 차비: 5만 원, 요쿠르트: 3만 2000원, 헬스: 5만 2000원, 신문: 2만 5000원.

서울살이의 고달픔에 대해서는 김미영(26·가명)씨가 '선배'다. 김치찌개를 하도 많이 끓여먹어서 이젠 보기만 해도 그 맛이 느껴지는 경지에 다다른 자취 6년차다. 역시 부산이 고향인 김씨는 2004년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2월 김씨는 무려 6년 만에 대학을 졸업을 했다. 김씨는 아버지로부터 "의대도 아니고 무슨 6년을 다니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에 있는 한 기업에 취직했다. 9학기를 다니는 동안 약 70~80군데의 기업에 원서를 넣은 결과다. 연봉은 상여금을 포함해 3200만원 정도(세금공제 전). 기본급 170만원에 상여금이 650%다. 2008년 12월 대졸 신입 평균 연봉이 2440만원인 것을 생각하면 높은 편이다.

취직을 했지만 김씨는 여전히 자취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2006년부터 4년째다. 학교 근처에 위치한 5명이 함께 사는 옥탑집에 살고 있다. 방은 각자 쓰고 거실과 화장실은 같이 쓴다. 예전에는 동아리 선배, 동기가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았다. 다른 방에 사는 사람들과는 인사도 잘 안 하고 지낸다. 집 크기는 한 평 반 정도,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이다.


"솔직히 직장인 됐으니까 혼자 살고 싶어요. 그런데 다른 데는 비싸니까 돈을 모을 수가 없어요. 집에서 전세를 얻어줄 형편도 안 되고. 지난번에는 아빠가 그러더라고요. '미안하다'고. 원룸으로 가면 40만 원 정도 드는데 거기가 2배 더 좋은 건 아니잖아요. 주위에 보면 40만 원짜리 집도 코딱지만 하고(웃음). 어차피 월세는 버리는 돈이잖아요." 


지은 지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옥탑집은 그 어느 곳보다도 먼저 '지구온난화'를 느낀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잠을 못 이룰 때도 있다. 여럿이서 같이 살다보니 친구나 가족을 데리고 나올 때도 불편하다. 크게 웃지도 못한다. 그래도 집값이 싸니까 참는다. 기자가 박지희씨가 노란 포스트잇에 써놓은 지출내역을 보여주자 김씨는 '방세: 43만 원, 관리비: 10만 원' 옆에다 엑스(X) 표를 치면서 말했다.

"이래선 돈 절대 못 모아요."

자취촌에서는 김씨뿐만 아니라 양복을 입고 다니는 직장인들도 자주 볼 수 있다. 김씨의 남자 선배 같은 경우도 그렇다. 이들은 대학생 때 살던 비교적 싼 가격의 전셋집을 몇년째 떠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또 다시 "월세 내면 돈 못 모으는 건 진리에요. 진리"라고 강조한다.

"전세자금 어떻게 마련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는 총 54개 대학이 있으며 재학생은 26만 9000명이다. 이 가운데 지방학생은 14만 1000명으로 전체학생의 50%가 넘는다. 하지만 대학의 기숙사 수용인원은 총 1만7500명으로 수용률은 지방학생 대비 12% 그친다. 그 외에는 학교 인근의 소형주택에 살고 있다. 지방학생의 집세 부담은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연봉 3000만 원이 넘는 기업에 들어가긴 했지만 3개월 동안 수습이라 아직은 급여의 80%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기본급이 170만 원이니까 지난달 월급은 136만 원 정도, 세금을 떼고 나니 115만 원가량이 남았다. 수습기간 동안에는 상여금이 없다. 예전에는 방세도 집에서 내주고 용돈도 받아썼는데 이제부터는 모든 돈을 자신의 월급으로 충당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학자금이다. 김씨는 지금까지 64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다음달부터 상환에 들어간다. 치아 치료도 하고 라식수술도 하려면 1년 동안은 돈 모으기가 어려울 것 같다. 컴퓨터도 작년 3월부터 고장이 나 남자친구의 넷북을 빌려 쓰고 있는데 본체를 고치려면 40만 원 정도가 든단다.

'품위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정장도 사고 가방도 사고 구두도 사야한다. 돈을 벌면 꼭 그만큼 쓸 데가 생긴다. 참 신기하다. 김씨는 아직까지는 재테크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다. 규모 없이 돈을 쓰다보니 두 번째 월급을 받기 직전엔 잔고가 4000원이 남아있었단다.  

"나중에 전세로 옮긴다고 하면 돈을 모아야 하는데 전세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요. 5000만 원 정도는 필요하다던데 1년에 1000만 원을 모은다고 하면 5년을 모아야 하잖아요. 수습 3개월 동안은 돈을 못 모으고, 취업초기에는 이런 저런 돈이 많이 들고. 같이 회사 다니는 선배 한 명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한 달에 150만 원씩 저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만날 같은 옷을 입고 다녀요. 가방은 떨어져 있고. 그렇게 살면 집은 빨리 살 수 있겠지만 삶은 피폐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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