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대학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납부하게 하자는 목소리가 높고 신문과 방송 역시 앞다투어 수수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 등록금 신용카드 수납을 거부하는 대학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고액의 학비로 학부모와 학생들이 겪는 고통이 크기 때문에 신용카드 결제를 통해 대학 등록금 분할 납부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  학비 카드 결제 정부가 나서야
한겨레 - 금융당국, 대학등록금 카드납부 실태조사
            등록금넷, 등록금 카드 납부 거부 대학 추가 고발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집회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집회
ⓒ 참여연대

관련사진보기


전국의 시민사회, 학부모 단체 등 550여 개 단체가 모인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는 지난달 18일 등록금 신용카드 수납을 거부하고 있는 등록금액 상위 10개 대학을 대검찰청에 고발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저 역시 550여 개 시민단체 중 한 단체에 속해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하지만 대학 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납부하자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록금 카드 납부, 카드회사만 이익... 등록금 분할 납부 요구해야

왜냐하면 대학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납부할 경우 대학은 수수료를 부담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이자를 부담함으로써 결국 카드회사의 배만 불려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용(信用)카드라는 그럴 듯한 이름 뒤에 숨겨져 있는 신용카드의 본질은 사실 부채카드입니다. 언제나 '빚'을 낼 수 있는 카드가 신용카드의 본 모습이지요. 김대중 정부 시절 수많은 국민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든 주범도 결국 이 부채(신용)카드였습니다.

물론, 신용카드 사용의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나 과세 당국이 신용카드 사용에 대하여 소득공제혜택을 마련하는 등 카드 사용을 권장한 것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사업자들의 소득을 파악함으로써 과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등록금의 경우는 사정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대학 등록금은 이미 연말정산시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납부 제도가 없어도 대학들이 등록금 수입을 누락시키는 일도 없고 과세 대상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등록금 동결을 주장하는 대학생 대표 기자회견
 등록금 동결을 주장하는 대학생 대표 기자회견
ⓒ 이민우

관련사진보기


따라서 시민사회단체와 학부모 단체 그리고 대학 총학생회는 대학 등록금이 비싸기 때문에 신용카드 회사를 거쳐서 등록금을 할부로 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등록금을 분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게 더 필요해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과 학부모들은 고액의 등록금을 이자 부담 없이 분할하여 납부할 수 있고, 대학은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고 등록금을 나누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신용카드 납부보다 더 이익입니다. 학생, 학부모와 대학 당국간에 신용카드 회사를 거치지 않는 '우애와 소통의 경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알아봤더니 이런 주장은 대학 등록금 관련 토론회에서도 종종 나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립대 233곳 등 전국 315개 대학이 분납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생색내기'라고 하는군요. 연세·중앙대 등 43곳이(18.5%)이 1개월, 이화여대·성균관대 등 100곳(43%) 등이 2개월에 걸쳐 등록금을 분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등록금이 500만원이라고 하면 두 달 동안 250만원씩 두번을 내야 하는 건데 이건 한번에 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2009년 이용률이 2.6%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네요.

대학등록금만 학기 단위... 고교 분기납, 유치원 월납

지금처럼 눈 가리고 아웅라는 생색내기용 분납이 아니라 가계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진정한 분납제가 실시되어야 합니다. 사실, 고등학교 학비는 분기별로, 유치원, 학원비는 모두 월별로 납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유독 대학 등록금만 1학기 단위로 납부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등록금 신용카드 납부 운동을 추진하는 시민단체와 대학 총학생회는 신용카드 납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운동 대신에 대학 등록금을 학생과 학부모의 사정에 따라 월별, 분기별로 나누어 납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제의 진짜 본질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비싼 대학 등록금입니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켜 대학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대학도 무상교육이 되어야겠지만 우선 급하다고 하여 신용카드로 분납하자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등록금, #신용카드, #분납, #시민단체, #총학생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