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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첫 개통된 우리나라 철도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지만,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를 이끌며 우리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2004년에는 땅위의 속도혁명으로 불리는 시속 300km의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올해부터는 국산 기술을 적용한 한국형 고속철도 KTX-II의 운행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철도는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시대 이후로는 도로에 밀려 큰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대도시 도시철도와 수도권 광역전철을 제외하고 간선철도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속철도 투자를 계기로 친환경 고효율 교통수단인 철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철도투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현재 간선철도 분야의 철도 투자는 대체적으로 신규노선 건설보다는 기존선 개량에 집중되고 있으며, 굴곡구간 직선화, 전기기관차가 달릴 수 있게 하는 전철화, 한 가닥의 선로를 두 가닥으로 늘려 선로용량을 높이는 복선화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의 단선 비전철이던 경의선은 복선전철로 개량되었다
 기존의 단선 비전철이던 경의선은 복선전철로 개량되었다
ⓒ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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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기존선 개량이 이루어지다보니 필연적으로 전국 각지에 철도 폐선부지가 생겨나고 있다. 구불구불하던 기존선 대신 직선으로 펴진 신규노선이 생겨나면, 기존선 구간은 폐선부지가 된다. 여기에 자재를 재활용하기 위하여 철로와 침목, 자갈을 걷어내고 나면, 길쭉한 형태의 땅이 남게 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이런 사례로는 광주 도심 경전선 구간, 목포 도심 호남선 구간, 장항선 아산시 구간 등이 있다. 또 앞으로는 서울의 경춘선 성북~갈매 구간, 부산 동해남부선 해운대 해안 구간, 경춘선 강촌역 주변 구간 등이 폐선부지로 바뀔 예정이다.

이러한 폐선부지는 새로 생겨나는 땅이므로,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도심구간의 폐선부지는 주변 인구가 많아서 쓰임새가 많다. 현재까지 폐선부지를 활용해온 방법은 주로 공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목포나 광주가 이런 사례이며, 인천의 주안-남인천간 옛 주인선 구간에서도 볼 수 있다.

인천 주인선 폐선부지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인천 주인선 폐선부지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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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금까지 도심 철도의 주변 지역이 열차의 진동이나 소음, 매연 등으로 주거환경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이를 보상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공원을 설치하면 주거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고 지가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2000년 8월 경전선 도심구간 폐선 이후 2002년부터 사업이 시작되어 공원화가 되었으며, 지난 1월 29일에 4단계 준공식이 있었다. 광주의 도심 철도 폐선부지 공원화 사례는 공무원과 시민단체,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친 도시개발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올해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경춘선 성북-갈매 구간의 철도가 폐선되는데, 서울시는 이곳 개발에 대한 공모전을 시행하였다. 공모작에 따르면 폐선부지에 흙길, 자전거길, 시간의 길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다양한 공원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하며, 열차정원, 레일바이크 등 다양한 테마시설도 설치된다고 한다. 이러한 공원이 설치되면, 철도의 근접 통과로 인하여 지역 분단, 진동, 소음, 안전사고 등이 발생하여, 주거환경이 열악했던 기존 경춘선 인접 지역의 큰 개선이 기대된다.

서울시의 경춘선 폐선부지 공원화 조감도
 서울시의 경춘선 폐선부지 공원화 조감도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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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러한 공원화를 강화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유원지화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라도 곡성역 남쪽의 전라선 폐선부지에서는 섬진강을 따라 간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레일바이크, 증기기관차 체험, 영화세트장 등이 결합된 종합 철도테마파크인 '섬진강 기차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달 발표된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녹색철도 국민제안공모에서는 폐선부지를 활용한 승마공원 설치, 해운대 해변가 폐선부지의 레일바이크 운영 등 폐선부지 유원지화 제안이 2건이나 수상을 하는 등 철도운영기관에서도 폐선부지의 공원화, 유원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종합 철도테마파크인 '섬진강 기차마을'
 종합 철도테마파크인 '섬진강 기차마을'
ⓒ 코레일관광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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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현재 폐선부지의 활용방안이 지나치게 공원위주로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도시에서 공원은 중요한 시설이기는 하지만, 폐선부지를 활용한 공원은 단점도 존재한다. 폭이 워낙 좁고 길이만 지나치게 긴 형태의 땅이라서 주차장 등의 각종 지원시설 설치가 곤란하고, 공간 활용성도 좋지가 않다. 주변 상황과 맞지 않는 무조건적인 공원화가 또 다른 도시 분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폐선부지가 생기면 무조건 공원만 만들게 아니라, 폐선부지의 교통기능을 유지하면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도심의 폐선부지는 땅의 형태상 도로나 철도를 만들기에 최적이다. 도심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교통기능을 극대화하기 유리하다. 기존 도로는 교차로가 많아 신호대기가 많지만, 폐철도부지는 도로와 구분이 잘 되어 있어 독립된 주행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렇게 교통 기능을 유지하면서 폐선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최우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폐선부지에 노면전차를 설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면전차는, 60년대 사라진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고 있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많은 도시에서 노면전차가 재도입되고 있다.

세계의 다양한 노면전차들
 세계의 다양한 노면전차들
ⓒ 알스톰, 지멘스, 봄바르디어, Lo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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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현대의 노면전차는 과거의 노면전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행 성능과 서비스 품질이 좋아졌다. 누구나 타기 쉬운 100% 저상형 설계, 도시 이미지와 맞는 참신한 디자인, 더 빨라진 속도와 더 강해진 등판능력, 연접대차 기술을 통한 대량수송가능, 중앙버스전용차로의 개념을 도입하여 자동차 교통과 분리함으로써 속도와 안전성 향상 등을 이루었으며, 이 때문에 유럽, 미국, 일본 심지어는 남미에서도 노면전차가 새로 도입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고밀도 대도시인 파리 도심에도 노면전차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파리의 노면전차는 잔디가 설치된 궤도 위를 달림으로써 소음을 줄이고, 도심 녹화에도 기여하는 일석이조를 얻고 있다.

잔디 위의 궤도를 달리는 파리 노면전차 T3라인
 잔디 위의 궤도를 달리는 파리 노면전차 T3라인
ⓒ Wikipedia,알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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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철도개량으로 생겨난 폐선부지를 무조건 공원화할 것이 아니라, 교통기능을 유지하면서 노면전차용 궤도를 설치하고, 신형 노면전차 차량을 운행시키며, 전체적으로 녹화, 식재 등을 통해 공원 기능을 부가한다면 훌륭한 도심교통수단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노면전차는 기존 도심철도를 달리던 육중한 기관차와 달리 규모가 작아서 훨씬 중압감이 적으며, 철도 설치에 따른 도심 분단 효과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노면전차는 길거리에서 곧바로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 보행자 친화적이며 접근성이 뛰어나다. 디젤기관차와 달리 매연이 없고, 전기기관차처럼 고압선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거지역과 가까운 폐선부지에서 도심밀착형 교통수단으로써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궤도바닥에 잔디를 깔거나 주변에 나무를 심는 등의 방법으로 환경개선도 이룰 수 있다.

노면전차는 도심 폐선철도부지의 대체 교통수단으로 최적이다. (사진은 위례신도시 구상도)
 노면전차는 도심 폐선철도부지의 대체 교통수단으로 최적이다. (사진은 위례신도시 구상도)
ⓒ 국토해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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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노면전차의 역할이 기대되는 것은 지선 교통수단으로의 활용이다. 모든 교통은 먼 거리를 빠르게 이어주는 이동성 기능과 다양한 지역에서 승객을 끌어 모으는 접근성 기능을 갖는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철도개량의 주목적은 철도의 굴곡을 펴고 속도를 높임으로써 간선기능을 높이는 것이다. 간선기능과 지선기능은 이율배반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철도의 간선기능이 높아지면 그만큼 지선기능은 떨어지게 된다.

즉 육중한 기관차가 보기 싫어 도심철도를 폐선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철도역이 멀어진다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경우 철도역이 가져오는 역세권 개발효과가 없어지면서 지역상권이 쇠퇴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제로 광주 도심의 남광주역의 경우, 경전선 도심철도 폐선으로 남광주역이 없어지면서 유동인구가 줄어들어, 역 앞의 남광주 시장이 타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폐선부지에 노면전차가 운행된다면 인접 철도역까지 지선교통수단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철도의 지역개발효과를 그대로 유지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폐선부지에 새로 생긴 노면전차를 타고, 새로 이설된 철도역까지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노면전차를 도심 내부까지 연장하면 지방 중소도시에도 새로운 도시철도 확보가 가능해진다.

경주, 포항, 원주역 등이 시 외곽으로 이설될 예정이다
 경주, 포항, 원주역 등이 시 외곽으로 이설될 예정이다
ⓒ 한국철도시설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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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경주역, 포항역, 원주역 등이 시외곽으로 이전될 예정인데, 이로 인해 생겨나는 폐선부지에 노면전차 등을 운행시켜 지선교통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진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선교통수단을 확보하지 않고, 무작정 역만 외곽으로 옮겨버리면 철도는 철도대로 승객을 잃고, 도시는 도시대로 개발동력을 잃어버리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는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도로 확충에 집중하다보니 철도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었다. 지금이라도 철도투자를 확대하면서 개량에 힘쓰고 있으니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철도개량으로 인하여 급작스럽게 생겨난 폐선부지를 무조건 공원화하기 급급하였지만, 앞으로 도시와 철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폐선부지 활용의 최적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분명 공원이 시급한 곳도 많겠지만, 폐선부지의 교통기능을 최대한 유지한다면 도시발전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곳도 많다. 특히 육중한 기관차가 달리던 철도의 대안으로써, 보행자 및 환경 친화적인 노면전차라는 좋은 대안이 있는 만큼 이를 적절히 활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우진 시민기자는 교통평론가, 미래철도DB 운영자(frdb.railplus.kr), 코레일 명예기자입니다



태그:#철도, #폐선부지, #노면전차, #코레일, #도시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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