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열매를 놓아버린 상수리나무의 열매 꼬투리
▲ 상수리 열매를 놓아버린 상수리나무의 열매 꼬투리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꽃샘추위가 있을 것이라는 예보도 있지만, 이미 봄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녘에서는 꽃소식이 들려오고, 이젠 서울에도 푸릇푸릇 봄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4대강 개발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줄기를 따라 오랜 세월 살아온 버드나무의 가지들은 잔뜩 물을 머금고 연록의 빛깔을 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항상 새롭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것은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기 때문에 맞이할 수 있는 것이고, 봄에 새로이 솟아오르는 새싹들은 가는 것이 있어서 오는 것입니다.

품고 있는 씨앗을 전부 놓아버리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 솔방울 품고 있는 씨앗을 전부 놓아버리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화려했던 날들을 뒤로 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들, 그리하여 봄이 오게 하는 것들을 찾아 도심 속에 남아있는 흙의 흔적들을 밟으며 따스한 봄기운을 느낍니다.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고 해도 흙이 있는 곳마다 생명의 기운이 싹트고 있는 것을 봅니다.
흙과 물과 햇살이 어우러지는 곳엔 아무리 초라해도 사계(四季)의 기운이 다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척박한 곳에 살아도 '사람'은 '사람'이듯 말입니다.

가야 할 때를 알아 가고 그리 하여 올 것을 오게 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가는 것이 있어 오는 것이 있으니, 치열한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쪼그라 들어가고 있는 은행나무 열매
▲ 은행나무 열매 쪼그라 들어가고 있는 은행나무 열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도심에서 가는 것의 흔적들을 찾아보니 상수리나무의 꼬투리, 솔방울, 은행 같은 것들이 도심공원 주변에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가는 것들 사이로 봄의 색깔이 연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초라하지만 냉이, 개망초, 돌나물, 꽃마리, 꽃다지 같은 싹들이 나와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처음으로 나오는 싹들은 한결같이 들꽃 중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 심지어는 잡초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인간사와 어찌도 그리 닮아있는 것인지, 잡초같은 풀꽃에서부터 봄은 시작되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마치 우리네 인간사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속이 텅 빈 느릿느릿 달팽이, 텅 빈 충만과 느릿느릿을 동시에 들려주고 있다.
▲ 달팽이 속이 텅 빈 느릿느릿 달팽이, 텅 빈 충만과 느릿느릿을 동시에 들려주고 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거닐다가 내가 좋아하는 달팽이의 흔적을 만났습니다.
'도심 속에서도 달팽이가 살고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 그 느릿느릿 달팽이의 텅 빈 껍질, 그 껍질을 들어올린 꿩밥의 새순, 이 모든 조화로움은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입니다.

자연이 만든 작품, 그것은 때론 너무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화가 나서,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신음하는 흔적들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너무도 끔찍하고, 두려워서 차마 직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만 들여다 보면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텅 빈 충만과 느릿느릿의 만남, 가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오는 것으로 인한 희망같은 것들을 동시에 봅니다.

도심 속 달팽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올해는 천천히 걸으며 도심 속 달팽이를 만나봐야겠습니다.

포자를 다 날리고 텅 비어있는 이끼의 포장낭
▲ 이끼의 포자낭 포자를 다 날리고 텅 비어있는 이끼의 포장낭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가는 것이 있어 또다시 새롭게 오는 신비, 그 신비로운 새싹
▲ 이끼의 새싹 가는 것이 있어 또다시 새롭게 오는 신비, 그 신비로운 새싹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포자낭을 텅 비워버린 이끼와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끼의 싹도 만났습니다. 이 역시도 가는 것과 오는 것의 조화입니다. 그러고보면 가는 것과 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돌아감'은 '본향'을 향해 가는 것, 그리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은 '온 곳으로 갔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자연 중에서 사람만은 그 '돌아감의 과정'인 죽음을 대할 때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그만큼 반자연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증거기도 하겠지요.

사람은 자연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인 것 같지만, 가만 살펴보면 인간들처럼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라 철저하게 약자들을 배려하는 질서가 들어있습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것을 희생시키고, 또 자신도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됨으로써 자연의 순환고리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뿌리채 뽑아버리고, 멸종시켜버리는 일들도 서슴치 않고 합니다. 마치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말입니다.

봄마중을 나갔다가 만난 가는 것들과 도심 속 달팽이 껍질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제 조금 내 마음도 봄맞이를 할 준비가 되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강바람의 포토&에세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봄맞이, #달팽이, #포자낭, #은행나무, #솔방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