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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혹자는 '가족이 상처이고 집이 흉터'라고 표현했던가.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들이 가족이니만큼, 가족끼린 서로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내면서 살아간다. 살다보면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나 큰 것 같고 제일 아픈 것 같고, 그래서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상처가 더 이상 상처가 아니고, 상처가 힘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상처를 상처라고 보듬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가련한 인생인가 말이다. 각자 사느라 바빠 흩어져 있다가 명절이나 집안행사가 있으면 한 자리에 모이는 가족들... 가족이 보이지 않는 힘이고 위로이고 울타리라는 것을 이럴 때면 실감하게 된다. 혹 서로 불화했다가도 가족이기에,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것, 그럴 때 또 서로의 허물을 용납하고 서로 이해하며 덮어줄 수 있는 것, 가족이라는 것의 힘이다.

 

설을 맞아 며칠 동안 시댁으로 친정으로 오가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설 전날(13일)엔 큰 집에 갔다. 그날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명절 음식을 마련하는 가운데 하루가 지나갔고 저녁엔 윷놀이로 즐거웠다. 우리 시댁엔 명절이면 어김없이 남자 여자 모두 협력해서 지짐과 튀김을 만든다. 우리집은 남녀 모두가 참여하는 아주 좋은 명절 습관을 가지고 있어 좋다.

 

거실에 신문지를 펴고 그 위에 요리 재료 등을 놓았다. 그 옆으로 프라이팬과 휴대용 가스 두개 이상을 놓고 길고 둥글게 모여앉아 함께 튀기고 부쳤다. 부엌에선 부엌대로, 거실에선 거실대로 한 나절 내내 부치고 튀기고 하면서 먹기도 했다. 여자들 힘들다고 설거지도 남자들이 거들고 서로 도와서 즐겁게 음식 준비를 했다.

 

 

설날 당일 이른 아침엔 시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장만한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남편의 인도로 모두 함께 예배드리고 하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시부모님은 화목하게 설을 쇠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셨다. 오후엔 친정 부모님 집으로 가기 위해 시댁식구들한테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예전에는 육로로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차로 갔었지만 작년 추석 때부터는 진해 안골 여객선 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고 고향집으로 간다.

 

훨씬 수월하고 시간도 절약되는데 진작 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교통체증 걱정할 필요 없다. 진해 안골까지만 차로 가서 배를 차에 싣고 가면 된다. 배로 40분 정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다.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그래왔건만 우린 그 재미를 늦게 알았다. 하지만 이제 배타고 다닐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올 연말 거가대교가 개통되면 자동차를 타고도 한 시간가량이면 닿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배를 타고 내리면 집과 가까운 마을이 농소와 구영마을이 있다. 구영마을에서 내려서 장목을 에둘러 우리 마을로 향했다. 고향마을은 객지에 나가있다가 고향에 다니러 온 사람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로 인해 길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부모님과 동생이 우릴 반겼다.

 

이번 명절에 멀리 외국에 사는 여동생 부부는 전화만 했고 서울 언니도, 부산 동생도 오지 못해 전화 연락만 받았기에 설 명절이면 북적대던 분위기가 좀 덜했다. 일주일동안 하늘은 비 오고 흐리더니 좀처럼 하늘이 열리지 않고 있었다. 얼마동안 집안에 있던 우리는 모처럼 다니러온 집에서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부모님이 가꾸시는 밭을 둘러보고 밭 뒤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이전에도 밭에는 자주 와봤지만, 우리 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쭉 뒤로 넘어가면 바로 바닷가가 나온다는 걸 그동안 몰랐었다. 밭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까닭이었다. 가끔 우리 밭 옆길을 지나 언덕을 넘어가는 자동차나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냥 쭉 산길로 이어져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숲 속 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니 바다 쪽으로 이어진 비탈진 길과 계속 산허리를 돌아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우린 바닷가로 난 비탈길로 내려가 공터에 차를 세웠다. 푸른 바다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었고 깨끗한 몽돌밭 그리고 그 옆에 바위섬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릴 적에 가끔 와 보던 '대구지 바다'(?)였다. 어렸을 땐 마을에서 산을 넘어 갔던 곳인데 이렇게 오는 길이 있었구나. 여름철에 피서를 와도 좋을 것 같았다. 아기자기한 몽돌밭 깔린 바닷가, 물빛도 자갈밭도 깨끗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바닷가에만 가면 고동을 잡으려 드는 남편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낚시하는 사람들이 서 있는 바위 쪽으로 가더니 바닷물이 출렁이는 바위틈 사이로 손을 넣어 홍합을 따고 고동을 잡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미랑 바구니라도 좀 가지고 올걸 그랬다. 우리도 파래, 김 등 바다풀이 깔린 바닷가 얕은 바위들 사이로 고동을 잡으려고 시늉을 해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호젓한 바닷가를 거니는 것이 더 좋았다.

 

얕은 산이 등 뒤에서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그 밑에는 깨끗한 몽돌 밭, 그 앞에 펼쳐진 맑은 바다 빛... 아버지는 함께 왔지만 별 흥미가 없는 듯 먼저 걸어올라가시고 엄마와 나, 남편과 여동생은 자갈길 걷다가 바위틈에서 바다가 주는 선물들을 찾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인 15일엔 남동생 부부가 배로 왔다.

 

어린 조카들 셋이 집에 들어서자 북적북적 활기가 넘치다 못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조카들은 얼마나 영특한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궁금증과 호기심 덩어리로 똘똘뭉친 조카들은 나와 남편에게 쉴 새 없이 문제를 내라고 종용했고 나와 남편은 그동안 잘 쓰지 않던 머리를 써가면서 문제를 냈지만 척척 맞추는 조카들 감당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 낸 것을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답을 해서 우린 혀를 내둘러야 했다. 남동생이 온 날 밤엔 새벽 늦게까지 엄마랑 올케랑, 나랑 동생들이랑 한 방에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사실, 이날 저녁에 우린 양산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배 시간을 놓치고 말았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엔 새벽 늦게까지 눈을 빛내면서, 혹은 졸음 쏟아지는 눈꺼풀을 자꾸 밀어 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시절이야기를 비롯해서 부모님이 고생했던 이야기, 화젯거리는 무궁무진했다. 마치 이 밤을 그냥 자 버린다면 아까워서 안 된다는 듯 새벽까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도 다음날엔 일찍 일어났고 모처럼 날씨가 맑아서 온 가족 모두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멀리 바람의 언덕이 있는 곳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지칠 것 같아 가다가 우리 마을 근처마을 바닷가에서 내려서 바닷가에서 놀았다. 학섬 휴게소 앞 바닷가였다. 바다 한가운데 학섬이 보였다. 몽돌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조카들과 큰 돌을 앞에 세워두고 돌을 던져 넘어뜨리기도 하고 가져간 간식을 먹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얼마동안 앉아있던 우린 썰물 때라 다시 마을로 돌아왔고 코팅 장갑을 하나씩 끼고 대야, 호미, 소쿠리 등을 준비해 바닷가에 고동 잡으러 나갔다. 어린 조카들도 뒤따랐다. 골목길을 벗어나 어릴 적에 자주 뛰어놀던 거리거리를 지나 닭서 방파제 길을 걸어갈 때, 지난 시간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바람이 찼다. 하지만 고동 잡는 재미가 추위도 참게 했다. 한 겨울에도 바다는 이렇게 바다를 찾은 우리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저녁 식탁은 덕분에 더 풍성해졌다. 아버지의 기도 후에 저녁식사를 했다. 모처럼 명절을 맞아 모인 가족들은 작은 것에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함께 하는 그 재미에 푹 빠졌다. 부모님은 모인 아들, 딸들 가족들 때문에 편히 잠들지 못하시는데도 흐뭇하신 듯했다.

 

우리도 오랜만에 마음 푹 놓아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쉬는 즐거움을 느꼈다. 설을 맞았지만 오지 못한 가족들이 생각났다. 전화연락이라도 받은 이들은 그래도 괜찮지만 전화조차도 오지 않는 자녀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걱정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보다. 부모 마음을 그들이 다 알까.

 

다시 일상이 있는 곳으로 오기 전까지 우린 추억이 있는 시골집에서 가족의 끈끈한 정을 마음껏 느꼈고 추억어린 바닷가에 나가 놀기도 하면서 쉼을 얻었다. 다시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흐뭇한 피로감이었다.

 

역시 아무리 바빠도 가족의 따뜻한 부대낌이 가끔 필요한가보다. 함께 웃고 얘기하고 뒹굴고 또 많은 날들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가보다. 살면서 곁에 없고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응원하는 가족이 있고, 보이지 않는 가족의 지원과 응원으로 또 힘차게 한 발씩 내딛고 살아가나보다.


태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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