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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팽나무 우체국
▲ 우리 동네 팽나무 우체국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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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집배원 아저씨,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 벨소리 울리며
인터넷 미로 같은 골목길을,
오래된 팽나무 나이테처럼
온종일 돌고 돕니다.

거뭇거뭇 저승꽃
곱게 핀 동네 노친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뜨개질 하거나
콩나물 다듬거나
해바라기 즐기는
팽나무 그늘 속으로
따르릉 따르릉 
우리 동네 집배원 아저씨
달려오는 시각은 오후 세시…

(...아이고, 아저씨 팬지, 기다리다가 목빠지겠심더...)
(내 팬지는 오늘도 없능교...)
(아저씨요, 군대 간 우리 손자가 잘 있는지 모르겠심더...)
(아저씨요, 돈 벌러간 우리 며느리가 언제 소식 주겠능교 ?)

제각기 살아온 내용이 다르듯이 
기다림의 색깔도 저마다 다른 
동네 노친들 날마다 기다림 앓는
사람들처럼 손자 손녀 업고
당산나무 아래로 모여 듭니다.

곱창 골목마다 쏟아져 나오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 
갖가지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은 
당산나무 팽나무 가지마다
하얀 학의 다리처럼 접어서
매달아 놓은 사연의 무게만큼
등이 굽은 팽나무 한그루도
오후 세시에는

우리동네 우체통처럼
양지 햇살 받아 붉습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인지
서울 남대문 시장 분식점에서
배달일 한다는 며느리 편지를
석달 만에 받은 사연이
모두들 몹시나 궁금하다고
소리내어 읽어 보라고 해도 
끝내 함구한 채 
병든 손녀 업은 노친 하나
검은 비닐봉지처럼 
캄캄한 얼굴이 되어
마지막으로 돌아간
텅 빈 오후 세시
팽나무 그늘 속으로,

따릉 따릉 따르릉
우리동네 집배원 아저씨
한마리 연어처럼
거슬러 거슬러 
산동네 맨꼭대기 
보육원 깊은 마당 속으로 사라지면, 

출렁출렁 산복도로
동구 앞
허리 굽은 팽나무 발 아래로 
족자 그림처럼 펼쳐진 
바다 한 장도 어느새
황금 노을빛에 물든
오래된 그리움의 편지가 됩니다.


태그:#집배원, #우리동네, #우체국,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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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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