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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끼리끼리 만나면 어쩔 수 없는 동색이 되는가 봅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며 농촌에서도 나이 50이 넘어도 한참 일을 해야 하는 중장년쯤으로 분류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만 해도 나이 오십이 넘으면 뒷짐을 지고 골목길을 걸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동네 어른, 중늙은이에 속했습니다.

 

골목에서 만나면 언제든지 '진지 잡수셨시유?' 하고 인사를 드려야 했던 그런 어른들, 욕지거리가 섞인 말들은커녕 장난도 개궂게는 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어른들이 어쩌다 동갑내기끼리 모이면 욕설이 섞인 말을 건네고, 툭툭 장난도 치며 낄낄거리고 웃기까지 하는 걸 보며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일이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한 없이 의젓해지고,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스러워 지는 줄 알았지만 막상 나이 50을 넘기며 살아보니 그게 아닙니다. 몸뚱이가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을 뿐 말 그대로 마음은 청춘입니다. 더더구나 어렸을 때부터 고향에서 함께 자라며 가깝게 지냈던 친구라도 만나면 마음은 발가숭이가 되고 하는 짓거리는 야단맞기에 딱 좋은 철부지가 되나 봅니다.

 

누구나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옛길

 

설을 쇠러가서 보냈던 시간, 고향친구와 함께 '산막이 가는 옛길'을 걸으며 보냈던 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발가숭이 철부지들이나 도전할 위험천만한 일로 어른들에게 들키면 야단맞기에 딱 좋은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내 고향 길이라서가 아니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복원되어 있는 '산막이 가는 옛길'은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걷기에 딱 좋습니다. 국립공원인 속리산 문장대에서 솟아 화양구곡을 휘돌아 흘러온 맑은 물을 가두고 있는 괴산수력발전소에서 댐을 이루고 있는 산자락을 따라 복원된 산막이 가는 옛길에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정취가 다 들어 있으니 남녀노소 모두가 추억을 회상하거나 아우르기에 딱 좋은 옛길입니다.

 

봄에 걸으면 마음에서 조차 새싹이 움틀 것 같고, 여름에 걸으면 강바람과 산바람이 번갈아가며 부채질을 해주니 저절로 시원해지는 길입니다. 가을에 찾으면 알록달록하게 물든 단풍 길을 즐기는 한량이 될 수 있고, 겨울에 걸으면 흑백의 산수화 소식을 걷는 방랑객으로 그려질 수 있으니 산에 몸담고 물에 마음 담글 수 있는 자연속의 길입니다.  

 

설을 전후해 내린 눈들로 산막이 가는 옛길에도 눈이 수북합니다. 한겨울이고 명절 밑이지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인적이 끊이지 않는 산막이 가는 옛길을 친구와 함께 걸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오가던 어릴 적 이야기에 슬그머니 자식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18번으로 등장하더니 언제부터인가 교육비에 대한 부담과 자식들 취업에 대한 걱정이 신세타령처럼 오고 갑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큰 딸에 대한 걱정, 입학을 앞둔 아들의 등록금을 걱정하다 그래도 국립대학을 입학하게 돼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하는 복원된 길의 끝입니다.   

 

머리 희끗희끗한 50대 남자들의 철부지 모험

 

누구도 그렇게 하자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어느새 눈이 질펀하게 녹아 있는 얼음, 폭이 200미터도 넘는 댐 위에 얼어있는 얼음 위를 자박자박 걷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기에 입춘 전이라면 무리를 지어 다녀도 끄떡없을 정도로 얼음이 강했겠지만 물밑으로 다가오고 있는 봄에 야금야금 녹고, 살살 풀리며 얇아지고 약해져 어른들의 마음으로는 감히 건너기가 두려운 얼음위로 댐을 건너겠다는 철부지 속셈입니다.

 

철부지 발길로 들어선 얼음판은 발목까지 푹푹 빠질 만큼 눈과 얼음이 녹아 있습니다. 붙박이처럼 고향을 지키며 살기에 좀 더 지리를 잘 아는 친구가 앞장서서 걸으며 남기는 발자국을 따라 살금살금 걷다보니 건너편 강둑에 닫게 됩니다.

 

산막이 가는 옛길을 걸을 때마다 강 건너로 보이던 그곳, 군자산자락으로 흘러내려 산줄기가 삼면을 물에 담그고 있어 내륙 속에서 반도를 이루고 있는 곳, 동네 사람들이 '벙디미'라고 부르는 산길을 걸었습니다.

 

산길을 걷다 과수원을 가로질러 다시금 강가로 다가가니 얼음이 녹아 군데군데 드러난 물에서 오리들이 놀고 있습니다. 수심이 깊은 곳이라서 그런지 자맥질까지는 하는 것은 볼 수 없었지만 물과 얼음 사이를 오가며 치는 종종걸음과 푸덕거리는 날갯짓이 춥게만 느껴집니다.

 

철부지 발걸음으로 강을 건너왔지만 돌아갈 길이 막막합니다. 얼음만 건너면 바로 코앞이 돌아갈 곳이지만 산길을 따라 걸으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니 뉘엿뉘엿한 햇살을 받으며 친구가 앞서고 뒤를 따르는 순서로 건너왔던 강을 다시 건넙니다.

 

위쪽 보다는 강폭이 넓어서 240미터쯤 되는 얼음 위를 아장아장한 걸음으로 살금살금 걷습니다. 그렇게 고양이 걸음을 하며 중간쯤에 도착하니 얼음판에 숭숭 뚫린 구멍이 듬성듬성 드러납니다.

 

꽁꽁 언 얼음사이에 얼지 않고 듬성듬성 있는 구멍을 예전에는 숨구멍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농담 삼아 한국판 크레바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수초가 자라고 있는 근방정도에서만 얼음이 얼지 않는 숨구멍이 생겼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예서 저서 숨구멍이 숭숭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둘 셀 수 있었던 숨구멍이 셀 수 없을 만큼 다닥다닥 생겨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오염된 물이 흘러들고, 오염된 토사가 퇴적층을 이루며 방출하는 가스 때문일 거라고 하였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랑거리는 물이 숨구멍을 넘나듭니다. 확실하게 30미터는 넘을 수심, 듬성듬성한 숨구멍으로 신경을 자극할 만큼 날름거리는 물결을 보며 걸으려니 서로가 말이 없습니다.

 

웬만하면 '쿵' 소리가 나도록 얼음판을 내려 밟으며 '꺅' 하고 소리라도 질렀겠지만 반죽처럼 녹아있는 눈구덩이를 피하고, 듬성듬성하지만 물구멍 사이로 날름거리는 물결을 피하며 걷다보니 자신도 없고 엄두도 나질 않았습니다. 

 

직선거리로 가면 240미터쯤 되는 거리지만 반쯤은 녹은 눈이 방죽을 이루고 있는 곳은 빙 돌고, 숭숭 뚫려서 헛발 디디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물구멍을 피하며 걷다보니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중간에 멈춰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여차하면 빠져들 발아래 그곳, 수십m가 넘을 수심 아래의 세상이 머리에서 어른대는 걸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친구, 나이를 먹으며 앞이마가 넓어지고 머리카락조차 희끗희끗해진 탓에 '노옹'으로까지 불리는 친구인 노형렬의 모습은 이리 봐도 어른이고 저리 살펴도 영락없는 어른인데 이렇듯 위험천만한 철부지 노릇을 함께하고 있으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옵니다. 

 

ⓒ 임윤수

철부지마음으로 성큼 들어선 얼음길이지만 건너야 할 위험에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걷다보니 건넜던 강을 무사하게 다시 건너왔습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긴장하고, 서로가 염려하며 즐긴 위험천만한 행동, 얼음이 푸석푸석 녹아들어 가고 있는 수심 깊은 강을 대책 없이 건너는 것은 분명 혼날 짓이지만 철부지 시절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였기에 가능한 무모한 모험이며 철없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덧없이 먹는 나이, 철부지 마음으로 셈할 수 있었으면

 

뒷짐을 지고 마을골목길을 어슬렁거려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나이라고 생각하였던 나이에, 자식들이 그랬다면 빗자루 몽둥이로 종아리라도 때리려고 하였을 위험천만한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있으니 철부지 시절을 함께한 악동 친구를 만나면 언제 어디서고 철부지 악동이 되는 끼리끼리가 되나봅니다.  

 

'철들자 망령 나는 게 인생'이라고 하니 망령 나는 게 두려워 일부러 끼리끼리 만나 악동이 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흐르는 세월에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또 한 살의 나이를 친구와 보낸 철부지 시간으로 셈할 수 있었으면 정말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이 먹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마음은 철들지 않아도 어느덧 늙어 가는 나이가 된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산막이 가는 옛길은 2월 13일 다녀왔습니다.


태그:#숨구멍, #철부지, #산막이 가는 옛길, #괴산, #노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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