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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와 막걸리 그리고 아버지

 

근 한 달 만에 타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모레가 설날인데 내일 잠시 함께 점심을 나눌 시간 되세요?"

 

지난 신정에도 타우의 '해가 바뀌는 것이 아쉽다'는 이유로 술과 밥을 나누었지요. 타우는 여전히 그리하여야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여기는 듯합니다.

 

다음날, 안상규 화백님과 공영석 선생님과 함께 성동사거리의 한 불고기집으로 안내받았습니다.

 

타우는 자리에 앉자 인원에 맞춘 불고기 4인분과 막걸리 한 병, 육회 한 접시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안 선생님이 주로 드시는 된장찌개에 3천 원을 더하면 불고기를 드실 수 있습니다. 양도 많고 맛도 좋습니다."

 

그동안 늘 된장찌개만 드시는 안 선생님을 위해 맛도 좋고 값도 싼 집을 물색해두었다가 그 집을 알려주고 싶어서 명절을 앞둔 날 그곳으로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술을 끊다시피 하신 공 선생님도 막걸리 두어 잔을 비웠습니다. 아삭한 배에 버무린 고소하고 차진 육회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명절을 앞둔 날, 아버지께서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 한 되를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었지요. 아버지는 명절에 쓰기위해 준비한 쇠고기를 육회로 해서 그 막걸리를 비웠습니다. 오늘처럼 눈이 흩날리는 길을 막걸리 주전자를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온 뒤, 그 때 저도 안주감 육회를 맛보았습니다."

 

 

타우의 '육회와 막걸리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회상 때문에 우리는 아무 저항 없이 막걸리 한 병을 더 비웠습니다. 육회 접시도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불고기 정식도 남김없이 비웠습니다. 불고기집 창문 너머 바로 보이는, 오두산 통일 전망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작은 동산은 이틀에 걸쳐 내린 잣눈이 아직 녹지 않았고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40여 년 전 타우가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는 날도 이런 날씨였지 싶습니다.

 

타우는 명절을 앞둔 날, 이제는 그 막걸리를 사가지고 가도 그것을 먹어줄 아버지가 계시지 않음이 아쉬워 머리가 흰 사람들을 모셔다가 막걸리에 육회를 바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딸과 아들의 짜파게티 끓이는 법

 

고향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리 찾아뵈었던 아들 영대와 큰 딸 나리가 설날을 아빠와 함께 보내기위해 까치설날에 헤이리로 왔습니다.

 

이틀 동안 모티프원 청소를 도와주어서 저는 오랜만에 원고 몇 꼭지를 쓸 수 있는 여유를 낼 수도 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아들·딸과 함께 있으니 성가신 점도 있지만 어쩐지 마음은 든든하고 포근했습니다.

 

나리는 몇 번 내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늦잠을 자다가 야단을 맞았고 간식용 짜파게티를 끓이다가 다시 나무람을 당했습니다. 나리의 특징은 여러 번의 초책을 당하고도 여전히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리에게 내가 이틀 동안 함께하면서 추어준 점입니다.

 

특히 큰 질책을 받았던 것은 짜파게티 하나를 조리하면서 면을 끓일 물을 냄비에 거의 그득하게 넣고 가스불을 켜둔 점입니다. 어차피 면을 익히고 끓은 물을 버려야하므로 그 반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말입니다.

 

에너지의 효율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 점은 커피를 끓이는데도 항상 엿보입니다. 한 사람을 위한 커피를 타기위해서는 전기 포터에 단 한 잔 분의 물만 끊이면 될 일입니다. 그렇지만 포터에 반쯤을 채우고 물을 끊이면 커피 열 잔의 분량이 넘습니다. 나머지 아홉 잔 분의 물을 끓인 에너지는 낭비된 것입니다.

 

반면 영대는 꾸중보다는 상찬을 받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영대도 짜파게티를 끓여서 먹고 있었습니다. 익힌 만두도 함께 놓아서 말입니다. 만두를 어떻게 조리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짜파게티 면을 끓이고 면을 건진 다음 그 끊는 물에 냉동만두 7개를 넣어서 만들었어요. 끓은 물을 그냥 버리기가 아깝잖아요. 또한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과 함께 보통 만두를 함께 시켜서 먹잖아요. 짜장면과 만두의 조화 아니겠어요. 7개를 짜장면에 둘러놓으니 데커레이션도 되고요."

 

평소 영대의 에너지에 대한 인식은 저보다도 철저합니다. 미처 등불을 끄지 않고 외출이라도 하면 오히려 아들이 제게 치도곤을 안기곤하지요.

 

나리는 여전히 캘린더에는 붉은 글씨인 내일도 연극연습이 있다고 합니다. 성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늦은 밤 나리가 다시 서울로 가야한다, 고 문을 나서니 마음 한구석에는 찬바람 한줄기 스친 것처럼 서운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아버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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