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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우리 인간적으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민주노동당이 국민들의 고통과 눈물과 한숨 끌어안고,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선거 때만 되면 표는 엉뚱한 데 주느냐 이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우리 선거 농사 한 번 멋지게 지어봅시다."

 

지난 1월 30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 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2천 명의 당원 앞에서 강기갑 대표는 이렇게 '투정'을 부렸다.

 

강 대표는 KBS <개그콘서트>의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을 패러디한 '서보원'(서민인권보장위원회) 공연 중 익살을 섞어 그간의 고민을 솔직히 드러냈다. 

 

당원들도 유쾌하게 웃음으로 응대했다. 강 대표와 함께 출연한 최형권 최고위원과 오병윤 사무총장도 "서민들이 기를 펴는 그날까지 민노당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며 흥을 돋우었다.

 

이날 강 대표와 당 지도부의 공연은 "민노당의 투쟁적 이미지를 불식시킬 만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공중부양'으로 1년간 강 대표에게 질기게 붙어 있던 '국회 폭력' 꼬리표와 '의원직 박탈'의 불안감을 법원의 무죄 판결을 통해 시원하게 떨쳐버린 지 꼭 보름 만이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 '국회 폭력' 꼬리표는 '불법 정당'이라는 낙인으로 변했다.
 
민주노동당에 '불법 정당' 낙인 찍는 검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정치 활동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은 수사 초점을 민노당으로 돌렸다. 경찰은 '편파 수사'·'별건 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네 차례에 걸쳐 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강 대표와 함께 공연했던 최형권 최고위원은 지난 7일 경찰의 압수수색에 항의하다 분당경찰서로 연행됐다. 오병윤 사무총장에게는 9일 서버의 하드 디스크를 빼돌린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강기갑 체제'의 시련은 이렇게 다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지난 8일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공무원의 시국선언이 사상과 양심의 표현'이라는 재판부의 판결에 억지 시비를 걸고 그 배후에 민주노동당이 있다는 억지근거를 만들려 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또 "시국선언을 빌미로 전교조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별건의 정황만을 가지고 원내정당에 대해 이토록 무차별적인 수사를 벌이는 이유가 뭐겠냐"며 "민주노동당을 흠집 내서 반MB선거연대와 야권 후보단일화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경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6.2 지방선거를 앞둔 민노당에 확실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오병윤 사무총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당의 손발을 확실하게 묶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오 사무총장은 현재 6.2 지방선거 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다.

 

민노당 최고위원들과 의원단은 서울 문래동 중앙당사에서 경찰의 추가 압수수색과 오 사무총장 검거에 대비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각 지역 당사에서도 당직자들을 중심으로 자체 비상 농성을 진행 중이다. 6.2 지방선거가 '강기갑 체제'의 마지막 성적표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악재 중의 악재'가 닥친 셈이다.

 

민노당 관계자는 "외부에서 느끼는 온도와 당 내부에서 느끼는 온도 차가 상당하다"며 "당원들이 이 상황을 상당히 엄중하다고 느끼는 만큼 어쩔 수 없이 당력이 여기로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은 "당이 비상체제로 돌입하면서 일상업무는 마비됐고 6.2 지방선거 관련 업무도 중단된 상태"라며 "선대본부 역시 체계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운영하려고 할 때 일이 터져 업무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현재 당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우 대변인은 또 "각 지역의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자들이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있는데 힘을 실어줘야 할 최고위원들과 의원들이 농성에 집중해야 하는 지금 상황도 좋진 않다"며 "서울시와 같은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도 빨리 정리해야 하는데 지금 이 문제로 인해 자꾸 뒤로 밀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6.2 지방선거 앞두고 당력 소모... '야권공조'로 뚫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진보신당과 분당한 이후 조금씩 완만하게나마 상승세를 그리고 있던 당원 가입 추세에 이번 경찰 수사가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8일 "지구당 운영 경험으로 볼 때 경찰이 당원 정보를 확보한다는 것은 당의 존립을 흔드는 일"이라며 "만약 당시 지구당 당원들의 정보가 경찰에 들어갔다면 소속 당원 중 1/3이 불이익 등을 우려해 탈당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의엽 민노당 정책위부의장은 "진성당원들이 대다수인 당의 특성상 당원들이 이로 인해 탈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2008년 집단 탈당 사태를 돌이켜봐도 민노당 당원들은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활발히 활동한다"고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정책위부의장은 또 "정치적 쟁점이 형성되고 당 내부의 결집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완만하게 준비될 선거가 속도감 있고 적극적으로 준비되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노당은 이날 오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민주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야3당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야당탄압·정당파괴 만행' 규탄대회를 열고 시련을 돌파하기 위한 '연대'를 공고히 했다. 

 

강기갑 대표는 이날 "이 문제가 민노당의 문제로 제기됐지만 우리 시민사회단체 뿐 아니라 전 야당들에 대한 탄압의 예고편"이라며 "이럴수록 더 단결하고 하나 되는 마음으로 결의해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을 6.2 지방선거에서 확실히 심판하고 국민적 승리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태그:#민주노동당, #강기갑, #전교조, #서버 압수수색, #공중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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