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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열공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 신경민 기자의 보신각 타종 중계를 비판하는 클로징 멘트가 떠올랐다. 8일 밤, 엄기영 MBC 사장의 전격 사퇴 소식을 전하는 각 방송사 뉴스를 비교해보니 정말 그랬다.

현장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말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8일 오전 엄기영 MBC 사장이 기자들에게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8일 오전 엄기영 MBC 사장이 기자들에게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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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사장이 침통한 얼굴로 직접 사퇴 의사를 밝히는 뉴스 화면. 그 '화면의 사실'에서 '현장의 진실'과 가장 가까운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를 위해 우선 각 방송사가 편집하기 전 '원본'을 돌려보자. <오마이뉴스> 동영상을 근거로 계산하니 42초 분량이다.

"방송문화진흥회, 오늘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저는 문화방송 사장 사퇴하겠습니다. 할 얘기는 많지만, 할 얘기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접겠습니다."

사퇴하겠다고 하기 전까지가 '알맹이'다. 그들이 사장 노릇을 하려고 하니까, 방문진이 뭐 하는 곳인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란 말에는 허수아비 노릇을 못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 사퇴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는 엄 사장이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고별사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 엄 사장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책임 경영의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인사권을 공공연히 유린당한 사장이 책임경영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방문진 부분 '잘라 낸' MBC의 고뇌, 엄 사장 말 대부분 전한 SBS

 8일 저녁 SBS <8시 뉴스>
 8일 저녁 SBS <8시 뉴스>
ⓒ SBS 보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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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퇴 이유가 담겨 있는 "도대체 무얼 하라는 건지…"가 핵심이다. 엄 사장의 사퇴를 밝히는 '현장의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화면의 사실'이다. 그럼 방송 3사는 이 말을 어떻게 전달했는가. '당사자'라 할 수 있는 MBC <뉴스데스크>부터 살펴보자.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도대체 무얼 하라는 건지 … 저는 문화방송 사장 사퇴하겠습니다."

그 앞 부분 "방송문화진흥회, 오늘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는"을 '날렸다'. 자사 문제를 대하는 MBC 보도국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SBS <8시 뉴스>는 "엄기영 사장은 방문진의 존재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리포트와 함께 이렇게 보도했다.

"도대체 무얼 하라는 건지… 저는 문화방송 사장 사퇴하겠습니다."

엄 사장 말을 거의 모두 전한 셈이다. 그렇다면 KBS <뉴스9>가 선택한 '화면의 사실'은 어떠했을까. MBC·SBS 보도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것도 이 대목에서다. 유독 "도대체 무얼 하라는 건지…"란 말을 싹둑 잘라냈다.

"저는 문화방송 사장 사퇴하겠습니다. 할 얘기는 많지만, 할 얘기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접겠습니다."

현장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화면의 진실을 죽인 KBS

 8일 오후 엄기영 사장이 후배들에게 MBC를 부탁한다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8일 오후 엄기영 사장이 후배들에게 MBC를 부탁한다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독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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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상한 보도 아닌가. 고작 나중에 얘기하겠다는 '사족'을 살리려고, "도대체 무얼 하라는 건지…"란 말을 죽이는 선택을 했다. 방송뉴스 한 꼭지는 보통 1분 30초 내외, 시간에 쫓겨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편집상의 오류나 실수?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날 KBS와 SBS는 엄 사장 사퇴 소식을 각각 1분37초 보도했다. MBC는 1분46초로 가장 긴 시간을 내보냈다. 그 중에서 엄 사장의 말은 MBC가 16초 동안 전했고, KBS는 13초, SBS는 9초만 내보냈다. 방송뉴스에서 '4초'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허비하며 '알맹이'는 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현장의 진실'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자의 자기검열인가, '윗선'의 코드 맞추기인가. KBS는 '도대체 무얼 하라고' 있는 방송인가. 바로 공영방송 아닌가.

엄기영 사장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양보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그 소식을 전하는 '화면의 사실'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양보하면 허수아비가 된다는 '진실'이 드러난다. MBC가 지금 처한 위기의 본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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