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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의 시인을 평가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한 권의 시집만으론 지극히 일차적인 형식비평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형식주의 비평은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 작품에 다루어진 사회상, 혹은 그것이 미친 영향 등을 세밀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사주의 비평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찍이 엘리어트는 "시란 시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닌 시 자체"라고 하여 시를 그 무엇으로부터도 독립된 하나의 '자율적 구조체'로 보았던 형식주의자들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비평가가 작가를 버리고 작품만을 존중한다면 결국 문학 작품의 자리를 작가 쪽이 아니라 비평가 혹은 독자 쪽에 둔다는 위험을 떠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어떤 작품이고 그것의 잉태는 여러 정황들의 필연적인 교접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그 돌파구 가운데 하나는 작품을 보되 작품의 기저에 있는 여러 상황을 함께 볼 수 있는 관심일 것이다. 개인이 사용하는 언어나 그것을 끌어들이는 감정의 이면에는 그 사람의 삶을 말해주는 역사적인 필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시인은 중국 조선족 3세 석화다. 1958년 중국 룡정 출신으로 다른 조선족들보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1982년 연변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월간 <연변문학> 편집을 맡았다.

등단과 함께 '천지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시인상', '진달래문학상', '해란강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압록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연변 자치 주, 성, 국가 급의 문학상과 문예상을 50여 회나 수상함으로써 연변 조선족 사회에서는 일찌감치 자리매김을 확실하게 한 동포 시인이다. 1989년 시집 <세월의 귀>가 '지용문학상'에 당선됨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조선족 사회의 대들보 시인이 된 것이다.

시인 석화의 시를 읽기 위하여 필자는 우선 그들 사회에서 활동하는 다른 조선족 시인들의 시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변문학> 1년 치를 어렵게 구했고 참을성 있게 읽어나갔다. 같은 땅 같은 사회에서 이민족이라는 동질의 정서를 같이 노래하는 동료 시인들의 시들을 보지 않고선 시인 석화에 대한 본격 오독의 실수를 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시는 한국시 고유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정한에 뿌리 한 서정성에, 스토리 위주의 시가 일색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칫 깊이 있는 정신의 사유라든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수용의 긍정성을 떨어뜨리는 위험 인자로 작용하는 동시에, 혼자만 갖고 노는 자족의 놀이라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물론 그중엔 황춘옥의 <잎>이라든가, 리중의 <소멸>같이 현대시가 지양해야 할 교과서적인 시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더러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일상, 그것도 과거에 대한 회상이 주조를 이루고, 자연 현상 하나에도 억지 의미를 돌출해내려는 무리한 감정이입으로 인해 영탄조의 범주 안에 머물게 하는 그들의 시를 보며 필자는 귀하게 얻은 석화의 시집에 나름의 변별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쁨이었다.

마침내 필자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동명의 이름을 가졌다는 남다른 친근함으로 그의 시의 눈과 마음과 심장을 열어보기로 했다. 같이 시를 쓰는 입장이라는 팔자론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삶의 뿌리가 나와 다른 그가 살고 있는 연길이라는 지역을 탐험하며 조심스럽게 그의 시집 <세월의 귀>를 열어보자. 이로써 필자는 엘리어트의 말에 약간의 반기를 든 셈이다. "시는 시 그 자체"에다 "시인을 둘러싼 정황 엿보기"를 곁들인 또 한 번의 오독을 용서하시라.

2.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네

우선 그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언어의 평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길이라는 사회가 주는 낙후된 풍경이 그의 시에서는 거부감 없이 나타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필자가 십 년 전 <연변문학> 초청으로 동료 시인들과 연길에 갔을 때 우선 느꼈던 점은 발달 이전의 소도시 모습이었다. 1970년대 국내 소도시 풍경을 영화 세트장에서 보고 있는 듯, 생경하면서도 많이 봐왔던 우리네의 옛날 풍경이 거기엔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베이징과는 도저히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없었다. 서울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세련되고 싱싱한 베이징의 풍경. 전설 속을 헤매다 갑자기 뚫고나온 사람처럼 당혹감과 슬픔이 동시에 몰려왔던 기억이 새롭다.

낮은 건물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달린 간판들과 불균형의 글씨체, 그 속을 오가는 빨간 택시들과 택시 수보다 더 많은 자전거들. 그리고 40도를 넘는 폭염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상의를 벗어 던진 런닝 차림의 남자들이 나른한 표정으로 길가를 걸어 다니거나 아무데나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잠든 모습들. 쉽게 '촌스럽다'고 말해버릴 수 없는 연길 풍경 속에서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나 우린 서로에게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어는 시대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인 석화가 가지는 언어의 평이성과 또 나름대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기법의 시도는 연길이라는 사회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제대로 읽을 수 없으며, 필자에게 주어진 한권의 시집만으론 도저히 납득 불가능한 그의 화려한 수상 경력 역시 연길과 조선족이라는 두 개의 화두를 풀고서야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각 나라마다 수많은 문학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시인이 50여 회나 상을 수상했다는 것에서 필자는 일차적으로 모국을 떠나 있는 사람들의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이란 건 축제의 행사이고 축제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일시적이나마 하나로 묶는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시인 석화가 수상한 상의 이름이 모두 모국인 한국의 지명이나 산하를 딴 것이라는 것만 봐도 그들, 조선족 시인들이 가지는 향수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이해하고 나서야 필자는 중국 조선족 시인 석화의 시를 형식주의가 아닌 미력하나마 역사 전기적인 입장에서 그의 시가 주는 울림을 동포의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시에 사용된 띄어쓰기나 철자법, 행갈이 등은 원문 그대로 옮겼다. (참고로 이 글은 수년 전 필자가 대학원 재학 중에 임헌영 교수님께 레포트로 제출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3. 느리게 그러나 같이 

그의 시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살고 있는 이방인의 향수가 주조를 이룬다. '도문을 가며 3'이라는 부제가 붙여진 <피안>이라는 시를 보면 그런 그의 심경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기실 모두가 저쪽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바라보고있을수밖에 없다

엷은 안개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한줄기 강물, 먼
서쪽나라의 어느 하늘밑을 흘러가는 요단강처럼 우
리는 누구나가 다 한줄기 강물을 갖고 있다

피안 혹은 대안이라 부르는 저쪽켠의 강기슭 아슴푸
레 바라다보이는 저쪽 기슭으로 늘 건너가보고싶지
만 피와 살과 뼈가 너무 무겁다

기실 모두가 다 다시 저쪽으로 건너갈것이지만 지금
은 그냥 그저 건너가보고싶은 생각뿐이다

지금 저쪽 기슭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계실 어느
분도 이와 같은 시를 쓰고 있을까
                   시 <피안> 전문

피안이란 불교에서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 또는 그 경지를 말한다. 시인은 그곳에 고국을 두고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이민족이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정처 없음과 본질적 그리움이 이 시의 주조라고 말할 수 있다. 3연에서 "저쪽 기슭으로 늘 건너가보고싶지/ 만 피와 살과 뼈가 너무 무겁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것은 이미 타국에서 정착된 시인의 삶의 뿌리가 너무 깊어 고국이 그리워도 그곳으로 옮겨 심을 수 없다는 한탄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비단 그만의 한탄은 아닐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남의 나라에 뿌리내려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남의 나라라는 현재의 거주지 사이에서의 방황은 공통분모가 아니겠는가.

시인 자신을 형상화한 시로는 <천지꽃>이라는 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센티멘탈한 서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 시는 현대 연길 조선족 시인들의 공통적인 시풍이 그대로 배어 있다.

가는길 길손이라
갈길 바빠도

다시 돌아 눈길주며
외우는 이름

어느날 내 이허물
다 벗어놓고

너처럼 피어나랴
이 천지간에
    시 <천지꽃>중에서

그러나 시인 석화에게선 다른 조선족 시인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으니, 그것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형식과 소재의 참신성이다. <유리컵과 사랑학 개론>이라든가 <작품> 연작시가 바로 그것인데 <연변문학>에 수록된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의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 세례를 받아 물질문명에 편승된 자아의 울림이 뿌리 깊은 향수와 정한을 채색하며 그의 앞으로의 시의 행보를 말해준다.

포도주
오렌지주스
혹은 랭커피
그 이름으로
그는 다시 명명된다
      시 <유리컵과 사랑학 개론>중에서

철근+시멘트+타일+...+땅= 벽체
      시 <작품 36 (가감승제와 방정식)>중에서

1,2,3,4,5,6,7,8,9,10이 차례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했다
나는 <아니다>라고 했다
<2240158070406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0433-256-219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시 <작품 39 (협박)>중에서

자기가 나비인지 나비가 자기인지 누구는 모르겠다
고 했다지만 내가 지금 도대체 정말 무엇
인지 모르겠다
필경 전생에 걸상이나 전화기나 유리창이나 그러한
것들은 아니였겠는데 마주보이는것들은 모두가 딱
딱하고 빤질빤질하고 윤기도는것들뿐이다
개나 돼지나 그와 같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
            시 <작품 91 (탈출)>중에서

위에 인용한 시들은 필자에게 새롭게 도래한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상 확대가 얼마만큼의 표현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엿보게 한다. 조선족 시인 석화의 특출성은 여기에 있다. 어쩔 수 없이 뿌리 깊은 사회주의적 미학 의식에 바탕을 뒀다고는 하나 새로운 문명 즉 모더니즘적인 요소를 실험하고 있는 그의 시야말로, 조선족의 시가 중국 본토의 시에 비해 형편없이 질이 떨어진다는 혹평을 거둬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필자는 그의 화려한 수상 경력에 박수와 함께 동의를 보낸다.

4. 외람된, 그러나 뜨거운

내밀한 정서의 공감만으론 폭넓은 독자와의 의사소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시가 일방적인 읊조림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치열한 인식과 구체성,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항상성 유지, 이 모든 것이 결합된다면 조선족 시인 석화는 왕성한 시작 활동과 더불어 우리에게 더 많은 좋은 시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언젠가 모 문학잡지에서 어느 시인의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좋은 시는 좋고 나쁜 시는 나쁘다!"
필자는 선승의 화두와도 같던 그 짧은 문장에 지금까지도 혼란과 함께 주눅이 든다.

잘쓴 시와 못쓴 시에 대한 구별이나 판단은 어느 정도 보편적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나, 어떤 시가 좋은 시고 또 어떤 시가 나쁜 시인지는 이십 년 가까이 시를 써오고 있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것이 늘 숙제다.


태그:#조선족, #연길, #이방인, #동포,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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