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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방법원은 4일, 지난 2009년 2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시국선언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전교조 인천지부장과 간부에게 법원이 유죄를 인정하는 '벌금형'과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시국선언문이 정부의 국정쇄신과 국민의 신뢰 회복을 촉구하는 내용이고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요한 기본권임을 감안하더라도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정치적인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초·중·고교 교사들은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때 다른 일반 공무원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면서 시국선언 자체를 집단행위로 인정, 유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시국선언 탄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목적으로 전교조 간부들과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친 행위는 기자회견으로 명칭하더라도 집회에 해당한다"며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과 법원 대립 사이에서 선택한 타협?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시국선언과 관련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자 시국선언을 정치활동으로 몰고 가려는 공안당국의 불순한 의도가 담긴 별건수사”라며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을 규탄했다.
▲ 전교조-공무원노조 기자회견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시국선언과 관련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자 시국선언을 정치활동으로 몰고 가려는 공안당국의 불순한 의도가 담긴 별건수사”라며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을 규탄했다.
ⓒ <교육희망> 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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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원과 검찰의 대립이 극에 달한 가운데 마침 용산참사 관련 재판에서 검찰이 신청한 재판부 기피 신청을 법원이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전의 미네르바 무죄 선고, 강기갑 대표 무죄 선고, PD수첩 무죄 선고, 정연주 KBS 사장 무죄 선고, 전북 시국선언 무죄 선고 등에서 망신을 당했던 검찰이 이후 15번이나 더 이어질 시국선언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도로 전교조와 한 정당을 연관시키기 위하여 정치활동 혐의를 기획하여 발표하였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를 받아서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노동부는 전교조 설립 취소를 운운하고 있고, 해당 교사들 전원 해임을 흘리고 있다. 이런 살벌한 가운데 인천지법에서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무죄를 내리기도 부담스럽고 유죄를 내리기도 부담스럽고, 검찰과 계속 싸우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항복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 선택한 것이 "유죄이되 형을 최하로 하거나 아예 선고를 유예하는 식으로 하여 실질적 처벌의 효과는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솔로몬의 선택'이라고 자족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비겁한 판단이었다.

물론 모든 재판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검토되어 선고되는 것이 타당하다. 판사가 양심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하는 것이 옳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 대한 집시법 위반 여부는 별도로 하더라도 시국선언 자체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인천지부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끝까지 법정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인천지법의 선고가 당당하지 못한 이유

인천지법의 선택이 비겁한 이유 중 첫 번째는 전혀 적용 법리가 다른 두 가지 사건, 즉 시국선언 자체의 위법성에 대한 국가공무원법 위반과 시국선언 탄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집시법 위반에 대한 선고를 별도로 하지 않고 한꺼번에 벌금 100만 원 또는 50만 원 선고유예를 내린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집시법 위반만으로도 벌금 100만 원을 받는 사례는 매우 흔하다. 따라서 집시법 위반만으로 벌금 100만 원을 받을 사건에 국가공무원법 위반을 끼워넣어서 형식적으로는 국가공무원법도 유죄를 인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양정에 넣지 않아 전혀 영향이 없도록 한 것이다. 인천 지부장이 "사실 상 무죄 선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재판부에서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집시법 위반 유죄 벌금 ○만원, 국가공무원법 위반 유죄 벌금 ○만원으로 합계 벌금 ○○만원에 처한다"라고 선고해야 했다. 마치 한나라당 조모 국회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위장 전입으로 처벌을 받을 때 인천지법이 "공직선거법 위반 벌금 50만원, 주민등록금 위반 벌금 20만원, 총합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것처럼 분리하여 선고하는 것이 시국선언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명확히 하여 혼란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번 선고가 비겁한 두 번째 이유는 국가공무원법 자체 적용에도 있다. 인천지법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교사가 교육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밝히는 것이 정치 활동"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활동 금지)에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교사가 집단적으로 의사를 밝히기 위하여 시국선언이라는 형식으로 발표한 것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집단행동 금지)를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교사들의 정치활동 혐의는 명백하게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상대로 할 것을 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런데 이번 시국선언은 정당이나 정치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판부 역시 국가공무원법 제66조와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의 유죄 선고를 내렸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의 정치활동 혐의에 대해서는 별도로 유죄 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시국선언이 유죄라면 국가공무원법 제66조가 아니라 제65조가 위반 유죄가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시비를 피하기 위하여 집단행동 금지 위반과 집시법 위반만 처벌 사유로 삼았다. 이 또한 이번 선고가 당당하지 못했다고 비판 받을 이유이다.

교육과 직접 관련 없는 교사들의 선언은 정치 활동?

인천지법은 "교사들이 교육과 관련 없는 정책에 대해서 의견을 밝힌 것"을 정치 활동으로 보아 공익에 반하는 집단행동이라고 판단하였는데 이는 명백하게 사실 관계를 오인하거나 교육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재판부가 학교 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교과서에만 있는 것으로 한정하여 교육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으면 교육과 관련없는 것으로 단정한 것은 1차원적인 교육관, 교육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민주주의와 정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사회 시간에 배우는 중요한 내용이다. 그리고 시국선언 내용의 가장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의 회복이고, 그 안에 자율형사립고 등 MB정부의 교육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교육과 무관한 것이니까 정치 활동이라고 하는 것은 판사가 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 자괴감까지 들게 만든다.

이런 판사의 논리대로 따지자면 교사들이 환경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면 그것도 교육과 관련없는 것이라고 하고, 통일과 관련된 것을 선언하면 그 역시 교육과 관련없는 것이라고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교육과 관련있는 것은 형식적으로 "교육"이라는 말이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판사들이 정말 이것을 모를까?

검사와 판사들이 명백하게 사실 관계를 오인하여 무시한 것이 있다. 사실 지금까지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이, 그들 판사들의 논리대로 하자면 '교육'자가 들어가지 않은, 교육과 상관없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 이번 시국선언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 교사 시국선언 또는 성명서 사례
새만금 간척 반대 시국선언(2001.05.25)
개혁실종-민생파탄-민주역행 우려 민주-시민-사회단체 비상시국선언(2001.07.13)
부시방한 반대 전교조 지회장 선언(2002.02.16),
학부모·교사 조선일보 구독 중지 선언(2001.07.24),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 만행 처벌을 위한 인천교사 선언(2002.11.27),
이라크전쟁 참전 및 추가파병 전면재검토 촉구 교사선언(2004.07.13),
"쌀 개방 반대, 식량주권 수호", 교육계 선언(2004.09.08),
전국교사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선언(2004.12.02),
교육부총리 퇴진 선언문(2005.09.30),
반민생 4대강 예산안 폐지 릴레이 선언(2009.09.29)

2001년 DJ 정부 시절에도 "개혁실종-민생파탄-민주역행 우려 민주-시민-사회단체 비상시국선언(2001.07.13)"의 내용으로 한 시국선언에 전교조 교사들이 참가했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 반대 선언도 했고, 쌀개방 반대 선언도 했다.

현재 MB정부 교과부와 검찰의 판단대로라면 이 모든 것들이 정치활동으로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 그런데 이전에 그들은 단 한번도 교사들의 이런 선언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선거와 관련되지 않으면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시국선언이 교육과 직접 관련이 없어서 정치활동이라는 '생뚱한'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일까.

이번 선고로 확실해 진 것 '그래도 해임은 무효다'

임병구 지부장은 이번 판결이 유죄를 인정한 것이므로 시국선언의 정당성을 위해서 끝까지 법정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하여 항소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선고 형량이 벌금 100 만원과 선고유예에 머문 것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시교육청의 중징계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맞다. 국가공무원법 위반과 집시법 위반을 묶어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은 것으로 해직을 당한 사례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도 단 한 건도 없다. 이와 비슷한 사례라고 회자되는 2004년의 '탄핵 무효 진보정치 실현 교사 선언'이라는 이름의 시국선언에서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교사들은 '견책' 이하의 징계를 받았다는 것을 교과부가 모를 리 없다.

현재 시국선언으로 해임된 교사들의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재심이 진행 중이며, 엊그제 이를 무효로 해 달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하였다. 시국선언의 정당성 여부는 앞으로 남은 14번의 지방법원 판결과 이후 진행될 상급심의 재판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의 유죄 여부와 상관없이 확실해진 것은 교과부와 교육청의 해임 등 중징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교과부의 각성이 촉구되며, 이후 교원소청위와 행정소송의 결과가 주목된다.


태그:#시국선언, #인천지법,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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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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