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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언어를 배우다 보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는 기분이 싹트는 것 같아요.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새로운 말을 배운다는 건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에요."

필자가 나가사키에서 한국어 강좌를 연 것은 작년 3월 말의 일이었다. 내 자신이 강좌를 열었다기보다, 이미 자체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던 모임에 강사로 초대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평화운동을 하던 나는 배움과 성숙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가사키에 왔다. 그러나 처음에는 비자 문제나 현지 생활비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다행히 주변의 동료와 선배, 가족들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으며 나 자신도 "일단 가보면, 그곳에 길은 있다."라는 '무대뽀' 정신으로 나가사키에 '와 버렸다'.

길은 정말 있었다. 이미 한 해 전부터 한일 시민이 함께 하는 평화기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오키나와 등지를 함께 답사하고 내가 한국인 원폭피해자 1,2세 분들과 함께 나가사키를 찾았을 때도 반겨주었던 일본인 여성이 아르바이트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먼저 말을 꺼내 주었던 것이다. 그분이 소개해준 아르바이트가 바로 한글교실이었으며,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나의 데뷔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장소는 천연비누와 약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제품만을 사용하는 친환경 미용실 '하늘의 절반' , 수업횟수는 한 달에 두 번, 학생수는 들쭉날쭉하지만 7명이다.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미용실 주인 기우라 씨, 내게 한글교실 아르바이트를 만들어준 간호사 출신의 아오키 씨, 한국이 너무 좋아 일년에도 수 차례 한국 여행을 간다는 여행 마니아 오다 씨, 교사 출신으로 나가사키에서는 유명인물인 시민운동가 가와조에 씨, 원폭 피폭의 체험을 국내외의 사람들에게 전하며 반핵평화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히로세 씨,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귀여운 공무원 출신의 니시쿠비 씨가 첫 멤버였다. 

대체로 나가사키에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알음알음 이 미용실을 찾아든 사람들이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를 공부하자"라며 마음을 합쳤다. 그리고 기우라 씨가 미용실을 수업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어교사가 한 달에 두 번밖에 수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이들에게는 시간이 남게 되었다. 이렇게 기묘하고 우스꽝스런 이유로 한국어 수업은 시작되었지만, 수다 반 공부 반의 한국어 수업은 매우 즐겁다.

어처구니 없으나 재미있는 탄생 비화를 가진 모임인 만큼, 이 수업의 목표와 공부 방식은 '한국어를 잘해야만 한다.' '죽자 사자 공부한다.'가 아니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함께 즐기는 것'이 수업의 원칙이며, 처음부터 함께 즐기자는 것이 우리들의 약속이었다. 나 역시 "한국어를 배워 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며,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분들이 나에게 일부러 한국어를 '배워 주고 계시다'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미용실의 수업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한글교실 학생들. 대다수가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인생에는 내공이 있는 분들. 미용실 한글교실 팀의 평균연령은 62세 정도이지만, 평화자료관 한국어 강좌 팀은 비교적 젊다.
 미용실의 수업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한글교실 학생들. 대다수가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인생에는 내공이 있는 분들. 미용실 한글교실 팀의 평균연령은 62세 정도이지만, 평화자료관 한국어 강좌 팀은 비교적 젊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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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절반은 수다이다. 대신 수업시간을 길게 잡기 때문에 진도는 확실히 나간다. 일본어는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 등을 섞어 사용하지만 글자수나 발음의 종류가 매우 간소하다. 게다가 한국어와 일본어는 문법과 어순이 쏙 빼닮았다. 또 한국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필자는 제법 한자에 노출되고 한자를 공부할 기회가 많은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미용실 반이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한국어는 확실히 일본어와 문법은 거의 같지만, 문자의 양과 발음 때문에 상당히 어려워요."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미용실 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우라 씨는 글자를 써야 입밖으로 발음도 낼 수 있고, 그래야 외워진다면서 항상 모든 글자를 일일이 적어가면서 발음을 한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이 "나중에 혼자서 공부할 때 쓰면 안 돼요? 다른 사람들이 기우라 씨가 노트에 전부 적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배우고 연습할 것도 많은데 수업이 느려져."라고 핀잔을 주는 이도 있다. 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업이 한참 진행중일 때 니시쿠비 씨의 소개로 도중에 참여하기 시작한 와타나베 씨는 학구파이다. 나가사키 시내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판 새만금이라 할 수 있는 갯벌 매립과 간척사업으로 생명의 바다와 갯벌을 상실한 마을 이사하야로부터 기차를 타고 30분 가량 달려, 다시 전차를 20분 정도 타고 수업을 받으러 온다. 그것도 항상 빈손이 아니다. 선생님에게 맛있는 간식을 먹이는 것이 작은 낙이라면서, 달큰한 앙꼬가 가득 든 만쥬나 빵, 주먹밥과 도시락, 귤 등 매번 먹을거리를 챙겨오는 마음 씀씀이가 참 이쁜 '학생님'이시다.

첫단계부터 배우지 못해서 혼자서 헤맬까봐 걱정했으나 금세 다른 급우들을 뒤쫓아 왔다. 다른 배움의 동지들이 전혀 예습, 복습을 하지 않을 때 혼자서 예습, 복습을 하면서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반에는 또 다른 열혈 학구파가 있다. 역시 작년 10월에 새롭게 합류한 새 얼굴인데, 현직 대학교수다. 피폭자 평화운동가인 히로세 씨가 사모님의 병환 간호를 위해 수업을 그만 둔 이후로 줄곧 한글교실의 청일점이다.

대학교수인 토다 씨는 환경운동, 평화운동 등 시민운동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현장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손발이 부지런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원자력발전소나 핵과 석유문명, 담배와 자동차, 군수산업과 전쟁 및 낭비적인 선진국형 생활양식에 반대하는 토다 씨는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는 필자에게 단독 과외를 받았다. 그러나 역시 공부는 함께 해야 제맛이라면서 공부보다 만남과 교제가 주목적인 이 한글교실의 학생으로 입성했다.

이 두 명의 학구파는 수업 분위기가 산만해지면 불평을 할 만도 하거늘, 절대 불평하는 얼굴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즐겁게 공부할 수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속도의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과 함께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필자는 새삼스럽게 모국어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쉽게, 더 정확하게, 조금이라도 더 재미나게 가르치기 위하여 연구를 거듭하다 보니, 그 사이 나 역시 모국어인 한국어를 즐기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한편으로 그 한국어를 배워주는 일본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일본어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은 거꾸로 뒤집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나의 일본 '학생님'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괴로운 표정을 하다가도 "질문 있어요."라고 손을 들고, 배운 것은 틀리더라도 실습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수업을 마친 뒤 집 방향이 같아 함께 전차를 탄 학생님은 내가 먼저 내릴 순간이 오자,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는 거에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는 거에요?"라고 재확인하거나 "수고하셨습니다. 또 만나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사람의 성씨, 예를 들면 다나카 히데오라는 사람이 있으면 '다나카 상(씨)'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은 사람의 성에다 '씨'를 붙여서 부르면 실례가 되니 이름이나 풀 네임으로 불러야 한다고 알려주었더니, 금세 "은옥씨"라고 상냥한 목소리로 선생님의 이름을 부른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온천에 간 적도 있다. 누드로 함께 노천탕에 들어가 피로를 풀거나, 한국식 지짐이를 부쳐 먹기도 했다. 푼푼이 돈을 모아 선생님의 가이드를 받으며 한국여행을 가자는 '한국여행계'에 대한 제안도 오래 전부터 나왔다. 미용사인 기우라 씨는 일반 고객이라면 고액의 비용을 받았을 텐데, 가난한 학생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면서 내게 일본문화체험 일환으로 기모노를 입혀 주고,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장식해 주었다.

새빨간 기모노를 입고 야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노부부가 "오늘 평일인데 결혼식해요?"라고 물어왔다. 기우라 씨는 "나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 전통의 복식과 머리 모양을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나도 일본의 전통복식과 머리 모양을 전하고 싶어요. 그게 내 꿈이에요."라고 말한다.

연필을 꼭꼭 눌러 한글로 자신의 이름과 출신, 하는 일 등 자기소개 표현을 적은 일본인 학생의 노트.
 연필을 꼭꼭 눌러 한글로 자신의 이름과 출신, 하는 일 등 자기소개 표현을 적은 일본인 학생의 노트.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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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국어 수업 중에, 학생들이 대체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이 들려준다. 또 한국의 문화, 음식, 정치와 경제, 사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본인의 라이프 스토리도 종종 이야기한다. 물론 학생들도 나에게 일본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없이 서로가 서로의 말을 배우고, 문화를 배우면서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의 차이를 하나 하나 알아가는, 즉 먼저는 배우고, 배우니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서 사랑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평화공부이고 이것도 작은 평화운동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최근에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평화자료관에도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였다.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는 않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둔 대학교수 소노다 씨,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을 만들다가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평화자료관의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젊은 시민운동가 후쿠다 씨, 한국인 피폭자들의 기사를 써오다가 필자와 친해진 마이니치 신문의 기자 아베 씨, 한국에서 1년 정도 생활한 적이 있지만 귀국 후에는 한국말을 사용할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는 인권파 변호사 우오즈미 씨가 바쁜 스케줄을 짜내어 매주 화요일 자료관 3층에서 '열공' 중이다.

소노다 씨는 한국의 고문서를 읽고 싶어서, 아베 씨는 나가사키를 찾아오는 한국인 피폭자들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싶어서, 우오즈미 씨는 잊어버린 한국어를 다시 머리 속에 되살리고 자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이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필자와 거의 또래인 후쿠다 씨는 한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어 한국어를 배운다.

"'조선인' 피폭자였던 박민규 씨는 나를 손녀딸처럼 귀여워 해주셨는데, 말년에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일본인인 나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기 위해 애를 쓰셨어요. '조선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않았던 그분에게 모국어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었음에 틀림없을 거에요. 그 소중한 말을 일본인인 나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셨을 때, 나는 그것을 소중히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결국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해보지도 못했어요. 그게 너무 안타깝고 지금이라도 그분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요. 혼다 카츠이치(本田勝一)씨도 책에서 주장한 바 있는데, 영어 일변도의 외국어 교육보다 이웃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해요."

최근 필자는 대학시절 환경문제에 열심이었고, 비교적 젊은 친구를 많이 갖고 있는데다, 영화와 사진 행사에 스탭으로 참석한 경험도 풍부한 후쿠다 씨를 자주 권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영화 감상과 토크쇼가 결합된 한국 영화제를 해봅시다."

"올해는 한일 두 나라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이기도 하니, 젊은이들 중심의 학습회를 조직해보면 어떨까요? 딱딱한 세미나나 심포지엄이 아니라, 멤버들이 저마다 관심있는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한국에 대한 것을 공부해 발표하고, 때로는 함께 요리도 해 먹고, 놀러도 가고, 음악이나 영화도 감상하는 거에요. 진정한 앎을 추구하는 지적인 부분도 빼놓을 순 없겠지만, 일단은 무겁고 딱딱한 느낌보다 재미와 발랄함이 있는 학습회라는 컨셉으로 두 세 명만 모아도 시작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1~2년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 모이면 언젠가는 공개 발표회도 갖는 거죠."

식지 않는 한류(韓流)의 열기 덕분에 일본에는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났다. 이미 '겨울연가'와 욘사마의 한류가 아니라, 일본 사회 곳곳에 한류는 스며들어 있다. 유난히 거리에서 외국인을 쉽게 볼 수 있는 나가사키에도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대중문화나 김치와 삼겹살, 단기 코스 한국 관광으로 집중되는 초보적인 한류(韓流)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쌍방통행으로 서로를 제대로 알자는 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의식 있는 한류로 이어지면 좋지 않을까? 그것도 평화운동의 일종이 아닐까?

가난뱅이에게도 외국 유학은 가능하다는 것을 필자가 성공 체험한 것은 내가 방황하고 고뇌하던 시절, 내 배움의 길을 등뒤에서 밀어주신 한국의 선배들, 그리고 나에게 오늘도 한국어를 '배워 주고 계시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일본인 학생님들 덕택이다. 


태그:#한류, #한국어 교실,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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