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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자 데이비드 남씨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6abc-TV.
 수배자 데이비드 남씨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6ab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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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5센티. 마른 체격. 검정 양복에 뿔테 안경을 낀 32살의 데이비드 남. 그는 배심원단이 '2급 살인죄' 유죄 평결을 내렸을 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지난 199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살인혐의로 기소된 뒤 한국으로 도피해 10년을 숨어 지내다 체포되었던 재미교포 2세 데이비드 남씨. 그에 대한 재판이 지난 29일 미국 필라델피아 민사 법원 법정에서 열렸다. 남씨는 1999년 한미 양국 간에 조인된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민사 법원 배심원단은 이날 남씨에 대해 2급 살인죄의 유죄 평결을 내렸다. 이 재판이 그대로 확정되면 남씨는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남씨의 아버지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섬유회사에서 부사장을 지낸 성공한 사업가.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남씨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지도 모를 나락으로 빠져든 것은 14년 전에 저지른 씻을 수 없는 과오 때문. 32살 젊은 청년 남씨의 인생은 어떻게 꼬이게 된 것일까.

그 해 여름 무슨 일이?

지난 1996년 8월, 필라델피아 토박이였던 앤서니 슈레더(77) 노인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었다. 6살 때 어머니를 잃고 11남매 중 하나로 자란 슈레더는 2차 대전에 참전한 재향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슈레더는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면서 '애크미 마켓 창고' 직원으로 오래 일하다 은퇴했다.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는 이 노인이 살해된 것은 1996년 8월 16일.

찌는 듯이 무덥고 습기가 많아 끈적거렸던 그 날, 슈레더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자신의 로우하우스(row house: 벽으로 칸막이하여 이어진 연립주택)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의 현관문은 열려진 채였고 방충망 문만 닫혀 있었다.

슈레더는 한밤중인 3시경, 문 밖에서 들리는 사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자신의 집에 있던 25구경 권총을 꺼내들고 문 옆에 섰다.

이 날 슈레더 집에 침입하려던 10대 갱단은 19살인 남씨와 공범이었던 다른 세 명의 14살 소년이었다. 이들은 필라델피아의 북부 지역인 올니(Olney)에서 활동하던 10대 갱 조직 'ABZ(AsianBoyz, 아시안보이즈)'의 멤버들이었다.

이들은 돈을 털기로 모의하고 공범 중 한 명인 로버트 수바나봉(28)이 잘 아는 독거 노인 슈레더의 집을 범행장소로 택했다. 이 때 남씨는 22구경 소총을 들고 있었고 수바나봉은 고장난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나머지 다른 두 명, 루이스 프라타로리(28)와 볼라 맘(28)은 길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솔리드(Solid, 남씨의 옛 별명)가 방아쇠를 당겼고 눈 깜짝할 새 총알이 날아갔어요."

수바나봉은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남씨가 쏜 한 발의 총이 슈레더씨 가슴을 명중한 것이다.

피해자 슈레더씨의 젊은 시절 사진. 2차 대전 참전 당시의 모습으로 보인다.
 피해자 슈레더씨의 젊은 시절 사진. 2차 대전 참전 당시의 모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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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명 수배자로 살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뒤 남씨는 먼저 잡힌 다른 세 명의 공범자에 이어 곧바로 체포되었다. 남씨의 아버지는 1백만 달러 보석금 가운데 10만 달러를 내고 아들을 빼냈다. 남씨 발목에는 전자족쇄가 채워졌고 남씨의 주거는 부모가 살고 있는 랜스데일로 제한되었다.

하지만 남씨는 1998년 3월 '재판 전 절차(pre-trial hearing)'를 앞두고 여행 허가서를 손에 쥔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씨의 부모 역시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갔다. 남씨는 이 때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한국으로 돌아간 남씨에게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1급 살인범' 수배 낙인이 찍혔다. 공개수배자였던 남씨의 한국 생활은 비참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아야 했고 가짜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변변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고 식당 종업원, 도자기 공장 직원,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가야 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세 명의 자녀도 태어나게 되었고. 남씨의 아이들은 수배자인 자신의 성(姓) 대신 아내의 성을 따르게 했다.

한국으로 도망간 남씨를 두고 FBI는 한국 측에 남씨 사건을 의뢰했다. 그리하여 지난 1999년, 한국 경찰청과 FBI는 TV프로그램 <공개수배 사건 25시>를 통해 남씨를 체포하게 된다. 

하지만 한미간에 '범죄인 인도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아 체포된 남씨는 그냥 풀려나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9개월이 지난 뒤 한미 양국 간에는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결혼하여 아이까지 두었던 남씨는 숨어버렸다.

그 뒤 FBI와 한국 당국은 남씨 아내를 통해 남씨를 찾게 되었고 쓰레기통에 있던 남씨 지문이 찍힌 맥주병과 몸의 문신으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던 남씨를 검거하게 되었다.

이후 남씨는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2년 전인 2008년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미국으로 송환될 당시 남씨는 FBI 요원에게 옷과 개인 소지품을 넣은 두 개의 가방을 가져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대신 남씨는 아내와 아이들 사진 네 장,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는 사람 연락처를 적은 전화번호부를 가져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살해된 슈레더씨가 살았던 로우 하우스(row house: 벽으로 칸막이가 이어진 연립주택).
 살해된 슈레더씨가 살았던 로우 하우스(row house: 벽으로 칸막이가 이어진 연립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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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급 살인죄'를 적용해야... 극도로 불안한 공황 상태에서 쏜 것"

민사 법원 법정에서의 배심원단 평결이 있기 전, 이번 사건에 대한 범인들의 증언 청취가 있었다. 올니를 주 무대로 한 10대 갱 조직인 '아시안보이즈'의 옛 멤버들이 1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한 때 친구 사이였던 이들의 불행한 재회는 얄궂게도 살인 법정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공범인 로버트 수바나봉(28)은 희생자 슈레더를 향해 총을 발사한 사람은 남씨였다고 증언했다. 다른 2명의 공범 역시 이런 수바나봉의 증언을 뒷받침해 주었고.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집주인 슈레더는 밖에서 들리는 사람소리에 25구경 자동 권총을 가슴에 품고 문으로 다가왔다.

이때 남씨는 슈레더씨가 방충망 문을 열고 수바나봉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것을 보고 친구가 죽을 것을 염려해 자신의 소총을 슈레더에게 발사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그것이 슈레더의 가슴을 명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바나봉은 수요일(27)에 있었던 증언에서 슈레더씨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남씨가 슈레더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그를 향해 총을 쐈다는 불리한 증언을 했다.

한편, 피고측 변호사인 마이클 월러스는 배심원에 대한 최종 변론에서 남씨가 슈레더를 쏜 것은 사실이지만 10대 청소년으로서는 극도의 불안한 공황 상태였고 처음부터 희생자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고 단순 강도를 도모했던 만큼 살인죄로는 가장 약한 '3급 살인죄'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사건의 초점이 남씨보다는 살인에 직접 이르게 된 원인을 제공한 수바나봉에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왜냐하면 남씨가 처음 돈이 필요하다며 심야 강도를 모의했을 때 수바나봉은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이고 이미 두 번이나 강도를 당한 적이 있는 슈레더씨가 털기 쉬울 것이라는 제안을 했고 실제로 남씨에게 총을 준 사람도 수바나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수바나봉은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 살해된 슈레더 집으로 가 그의 25구경 반자동 권총을 훔쳤고 하루가 지난 뒤 다시 공범 프라타로리와 함께 근처 다른 집으로 가 훔친 권총으로 일가족을 때리고 강도 짓을 하는 등 죄질이 나빴기 때문이다. 현재 수바나봉은 마약과 총기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맡았던 지방 검사인 마크 길슨은 남씨에 대해 '2급 살인죄'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슈레더씨는 결코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에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었다. 그는 평생 빛이 안 나는 창고 일을 하면서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77살 먹은 노인의 새끼 손가락은 당신의 몸 보다 더한 고결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29일에 벌어진 재판에서 남씨에게는 2급 살인죄 외에 강도와 강도 모의, 총기 소지 등의 죄목이 추가되었다.

필라델피아 지역 언론 <필리닷컴>이 남씨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지역 언론 <필리닷컴>이 남씨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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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시절 잘못으로 평생 미국 감옥에서

한편, 남씨에 대한 재판이 있기 전 3일 동안 계속된 증언 심리에서 관심을 모았던 것은 마크 길슨 검사의 요청에 의해 마지막 증언자로 채택된 FBI 요원인 케빈 맥쉐인이 읽은 내용.

맥쉐인은 필라델피아 민사 법원에서 2008년 남씨가 직접 손으로 썼다는 한 장의 자술서 초안을 읽었다.

이 자술서는 FBI가 그를 수감했을 때 범인 인도 문서의 뒷 페이지에 적힌 것으로 남씨가 자신을 미국으로 송환하지 말아줄 것과 비록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제가 한 일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10대였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아내의 남편인 남씨가 10대 철부지였던 그 시절,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가족과 떨어져 한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야 할 지도 모르는 딱한 사정이 안타깝기는 하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 나왔던 슈레더씨 가족들의 슬픔과 눈물을 생각한다면 남씨가 치러야 할 벌은 결코 크지 않을 듯하다.


태그:#데이비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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