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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원탄좌사북광업소 사북번영회 석탄유물보존위원회 건물앞에선 일행들. 뒤에 보이는 기계가 수직갱을 내려가는 데 사용되는 수갱타워로 높이가  47m이다
 (구)동원탄좌사북광업소 사북번영회 석탄유물보존위원회 건물앞에선 일행들. 뒤에 보이는 기계가 수직갱을 내려가는 데 사용되는 수갱타워로 높이가 47m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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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회원 40여명과 함께 60~70년대까지 우리들의 안방을 훈훈하게 만들고 공장을 돌리는 산업의 동력원이었던 탄광촌을 찾았다.

오전 8시 반 서울 종합운동장 앞에 모인 일행은 사북번영회 석탄유물보존위원회 전시관으로 출발했다. 전 한국일보 주필이었던 김수종씨는 70년대 기자 시절의 얘기를 들려줬다. "젊었을 적 사북탄광하면 데모와 탄광사고, 진폐증 취재로 왔던 기억이 납니다." 박원순 변호사도 이 지역에 대한 각별한 추억이 있다.

"1979년 제가 22세쯤인데 법원사무관시험에 패스하여 등기소장으로 근무하며 영감님 소리를 들었던 곳입니다. 근무하면서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곳이기도 하죠. 태백은 탄광이 쇠퇴한 곳에 카지노를 설치한 곳입니다. 카지노는 정신을 황폐화하는 곳입니다. 지금은 독점을 줘서 유지되지만 독점권이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지역에서는 그때를 대비해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뤄지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의 가이드는 태백 선린교회 원기준 목사다. 그는 총신대학 3학년 때부터 광산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태백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했던 게 인연이 돼 목회자로 나섰다. 그는 막장에 들어가 보고 광부들과 아픔을 같이하며 주민들 편에 섰다. 노동자 상담과 복지활동을 하다 보안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원기준 목사가 광부가를 불러보며 설명하고 있다
 원기준 목사가 광부가를 불러보며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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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1987년에 설립한 태백지역 인권선교위원회에서 산재상담, 해고자 문제, 탄광 내 노동문제를 다루며 노동운동을 하다가, 1989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1년 반을 감옥에서 살기도 했다.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으로 감옥에 있는 동안 폐광의 당면과제인 지역살리기 운동으로 방향 전환을 하기로 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주민들은 핵 폐기장을 유치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주민들은 폐광지역을 살려달라고 일주일동안 데모했습니다. 당국과 주민들이 합의한 날이 1995년 3월 3일입니다. 거기서 3․3기념탑이 나왔죠. 합의안에는 카지노가 들어가 있습니다."

정부는 폐광지역을 대규모 고원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을 제정했다. 그 법에 따라 2000년부터 카지노가 운영되기 시작했지만 도박으로 인한 부작용은 예상대로였다. 주민들이 가산을 탕진하고 음독 자살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한국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를 운영했다.

최초 강원랜드란 명칭을 사용했지만 부작용이 많이 보도되면서 '하이원리조트'로 개명했다. 하이원리조트는 주민의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다. 지역에서는 주민청원으로 주민들의 출입금지법을 제정했고, 지역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도록 요청해 직원의 70%가 지역민이다.

하이원리조트 야경. 주변은 휘황찬란한 빛의 향연이다. 그러나 빛의 뒤안길에는 ---
 하이원리조트 야경. 주변은 휘황찬란한 빛의 향연이다. 그러나 빛의 뒤안길에는 ---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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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3백만명이 찾고 매출액이 연간 1조원, 순이익이 4천억에 달한다는 태백시에서는 연간 150억의 세수를 올리고 있다. 원 목사는 "전 세계 카지노 중에서 매출액이 이렇게 많은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금요일 초저녁 황금시간대인 카지노장. 사람들로 가득한 도박장 안 벽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거울이 세장 붙어있다. 원 목사가 이름붙인 '거울을 보라'는 곳이다. 도박에 미치면서 초췌한 몰골로 폐인이 돼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라는 의미로 붙여 놨다.

"카지노를 만들기 위해 애쓴 저를 '카지노 목사'라고 부르기도 해요. 먹고 살자고 아우성쳐서 만든 카지노인데 좋지 않은 뉴스가 나오면 마음이 아프죠. 주민들이 간과한 것은 손님들이 오면 지역에 돈을 뿌릴 줄 알았는데 카지노에 들어가기만 하면 안 나오는 거예요. 눈앞에 돈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박원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자는데 의견일치를 봤습니다. 스키장과 골프장을 만들었는데 스키장에 오신 손님들은 밤이면 지역경기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설명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석탄유물보존위원회 전시관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700m에 위치하고 있어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귀가 먹먹하다지만 별로 고도감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를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기괴한 모습의 높이 47m 수갱타워와 광부복을 입고 활짝 웃는 광부그림이다.

광부들에 대한 금기사항이 적힌 유행어로 '출근한 후 남편 신발은 항상 방쪽으로 놓는다' '광부남편 도시락 쌀때는 절대로 4주걱은 담지 않는다' '집에 3천만원짜리 흑돼지를 키운다' 등의 광부들의 죽음과 관련된 유행어들
 광부들에 대한 금기사항이 적힌 유행어로 '출근한 후 남편 신발은 항상 방쪽으로 놓는다' '광부남편 도시락 쌀때는 절대로 4주걱은 담지 않는다' '집에 3천만원짜리 흑돼지를 키운다' 등의 광부들의 죽음과 관련된 유행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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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로 영화세트장으로 많이 사용됐다
 탈의실로 영화세트장으로 많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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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석탄박물관의 전시물들. 보이기 위해 박제된 전시물보다 칙칙하지만 생생한 유물들에서 더욱 감동 받는다
 태백석탄박물관의 전시물들. 보이기 위해 박제된 전시물보다 칙칙하지만 생생한 유물들에서 더욱 감동 받는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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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1963년 12월 1일 설립됐다. 전성기였던 80년대에는 무려 23개의 광구를 가진 국내 굴지의 탄광회사로, 정선군 사회, 경제의 중심축을 이뤘다. 90년대 초 폐광정책에 따라 점차 쇠락을 거듭하다가 2004년 10월 마침내 문을 닫았다.

탄가루로 뒤덮인 시커먼 전시관 건물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검은색 천지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이 시냇물을 검은색으로 그렸을까. 수십 명이 한꺼번에 샤워할 수 있는 샤워장, 백여개도 넘을 것 같은 탈의실, 연탄만들기체험장, 각종 공구, 산소호흡기, 당시에 사용됐던 TV와 등사기 등을 보며 7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유물보존회에서는 유물 1500여종 1만 4천점을 수집 관리하고 있다.

각종 구호가 적힌 표지판들
 각종 구호가 적힌 표지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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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물- 노태우(위), 전두환(아래)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대통령선물- 노태우(위), 전두환(아래)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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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사북사태 당시 투쟁도구로 사용했던 각종 휘장과 피켓과 광부가가 가슴이 뭉클해진다. 다음은 광부들이 투쟁하면서 불렀던 광부가의 한 대목이다. 원목사는 2절을 지금도 제대로 부를 수가 없단다. 2절을 부를 땐 거의 모든 광부들이 울어버렸기 때문에 그 가사만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가수 양희은씨의 노래말을 개사한 곡이다.

1. 나 태어나 이 광산에 광부가 되어      2.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마라 너희들은
   탄 캐고 동발지기 어언 수십년              자랑스런 광부의 아들이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나죽어 이 광산에 묻히면 그만인데        아서라 말어라 광부아들 너희로다

전시관을 둘러본 일행은 태백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 중 하나인 낙원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금방 잡은 한우 갈비살에 토종 된장국을 곁들여 맛이 기가 막히다. 식당주인 전춘화씨의 '무한리필, 3도화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웃음이 절로 난다. 무한리필은 고기를 원하는 대로 주겠다는 뜻이고 3도화상은 살짝만 익혀먹으라는 뜻이다.

이글루 속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 의자와 탁자도 얼음이다.
 이글루 속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 의자와 탁자도 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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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일본지사에서 온 깃카와 준코씨
 희망제작소 일본지사에서 온 깃카와 준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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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는 미국과 홍콩 제주도 등지에서 온 참가자뿐만 아니라 희망제작소 일본지부에서 온 깃카와준코씨도 동행했다. 한국에 연수차 왔다가 참가했다는 그녀는 "일본에는 3만 5천개의 NPO가 활약하고 있으며 주로 지역사회와 고령화문제를 다루는 복지단체가 많다"고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각자의 소감을 들었다. 전직 주일대사인 최상용씨는 "모럴헤저드가 우려됩니다. 탄광과 카지노는 우리 경제성장의 방향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제가 손자손녀의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저는 양극화를 가장 걱정합니다. 꼭 빛과 그림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전통문화연협회장 리기태씨는 "탈의실 캐비넷을 열어보고 그들의 삶과 애환, 희망을 봤습니다. 하지만 보상금을 가지고 카지노에 가서 다 잃었다니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머리가 혼란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새벽 0시가 다 된 한강변의 쌍으로 된 가로등은 차가운 강 안개에 서려 꼭 올빼미 눈같은 느낌이다. 올빼미는 지혜의 상징이다. 쇠락해가는 지역과 오죽했으면 카지노를 끌어들였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지혜는 어디 있을까?  

택시 기사 아저씨가 밤늦게 어딜 다녀오느냐는 물음에 태백엘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웃으며 말했다. 

"25만 원을 받고 세 번쯤 도박꾼들을 태우고 태백에 갔다 왔는데 정신없는 사람들 많아요." "아저씨, VIP룸은 기본이 5백만원부터 시작한다고 해요."
"그래요? 저 같은 사람은 한 달 내내 일해도 5백만 원을 못벌어요."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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