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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어머니의 세월
- 사진 : 윤주영
- 펴낸곳 : 눈빛 (1997.11.7.)
- 책값 : 2만 원

 (1) 사진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문화재단들은 저마다 제 고장을 빛낼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는데, 이러한 지원사업이 있는 줄 안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알고 난 다음에는 지원서류 쓰기가 퍽 까다롭고 골치가 아파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골치가 아프더라도 한 번은 써 봐야 하지 않느냐 싶어, 인천골목길을 찍은 사진을 놓고 지원금을 신청해 보았습니다. 제가 인천골목길을 두루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책으로 엮은 다음, 제가 사진으로 담은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분들한테 하나씩 선물로 나누어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골목이웃한테 당신들 삶자리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두 장씩 드리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당신들이 가꾸는 이 보금자리가 참 아름답습니다' 하고 말씀을 건네지만, 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들 '저 젊은이가 그냥 입발린 소리로 읊는 인사치레'로 여깁니다. 그래서 인천골목길을 통째로 들여다보는 사진책을 하나 마련해 한 집씩 찾아다니며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꿈을 이루자니 돈이 없는 저로서는 꿈 같은 소리입니다. 그예 꿈입니다. 살림돈 한푼도 모자란 주제에 무슨 사진책을 내겠습니까. 찍은 사진은 더없이 많고, 오늘도 바지런히 찍으러 돌아다닐 테며, 앞으로도 찍겠지요. 사진 몇 장 만들어서 나누어 드리는 일이야 어느 만큼 한다 치더라도 책으로 드리기는 몹시 버겁습니다. 집삯과 도서관삯 내기에도 빠듯한 살림이니까요.

추운 겨울날, 손이 꽁꽁 얼어붙으면서도 여러 시간 골목마실을 여러 사람들하고 했습니다. 인천과 골목길이라는 곳을 새롭게 바라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손이 꽁꽁 얼어붙으면서도 여러 시간 골목마실을 여러 사람들하고 했습니다. 인천과 골목길이라는 곳을 새롭게 바라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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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사업 공모에 붙을는지 안 붙을는지 모르나, 붙든 안 붙든 내 보고 나서 생각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 모르지만 인천문화재단에서 면보기 하러 오라고 연락이 와서 지난주에 찾아갔습니다. 면접관은 "제(면접관)가 인천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이런 지역 특성을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전시하는 공간을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이런 물음은 도무지 걸맞지 않을 뿐더러, 면접관 스스로 '인천에서 인천골목길 사진을 전시하고 책으로 엮어서 나누는 뜻'을 읽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참말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저 스스로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몸이지만,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스스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요. 골목동네가 고향이라고 밝히는 사진작가 가운데 골목동네를 가끔이나마 사진으로 담는 사람조차 드뭅니다. 삶터로 여기며 꾸밈없이 골목 사진을 즐기고 나누려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이 나라에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적어도 인천에는 없습니다.

저는 인천골목길을 굳이 제 사진감으로 삼을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자주 찍으니 괜히 저까지 인천골목길을 안 찍어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인천골목길을 찍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른 데'에서 놀러오는 사람들이고, 인천이라고 하는 터전을 사랑하든 아끼든 들여다보든 헤아리든 하는 마음가짐이나 눈길이 아니었습니다. 골목동네 주민으로서 퍽 짜증스럽고 어이없는 사진이 많았습니다. '그 좋은 장비를 쓰면서 이 따위 엉망진창 사진을 찍느냐? 그러면 차라리 내가 찍어서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창작과비평>이라는 잡지에 실린 시를 읽다가 '이만한 시가 시라면 나도 시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시길'을 걸었는데, 제가 김남주 시인 같은 그릇은 못 됩니다만 이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제 값싼 장비로 골목 삶터가 왜 골목 삶터인지를 말하는 사진을 담아내어 조용히 동네 이웃하고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면접관이 저한테 한 마디 물은 뒤' 이런저런 생각이 뒤죽박죽 엉켰습니다. 입을 꾹 다물고 앉아만 있으면 안 되기에 헛기침을 하고 나서 몇 마디를 줄줄줄 풀어놓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동네 골목길이 참 예쁘다고 느껴요. 그래서 골목길 사진을 찍는데, 이 사진을 찍은 다음에 그 집에 다시 찾아가서 우체통에 사진을 넣든 앞에서 인사하고 드리든 하면서 '집이 참 예쁘고 좋아서 찍었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골목길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는데, 이렇게 동네 주민으로서 골목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으며 다니다 보면 동네사람들이 '뭐 하러 사진 찍어요?' 하면서 따져요. 인천시에서는 오래된 동네를 빨리 허물고 아파트로 재개발하려고 하는데, 이러면서 오래된 골목동네가 꾀죄죄하고 낡고 못났다는 생각을 심거든요. 그러면서 일부러 낡고 꾀죄죄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공무원들이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동네사람이 그렇게 물으면 '집이 예쁘잖아요' 하고 말씀드리는데, 다들 웃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곳에 뿌리내리며 살아오는 분들이 집과 동네를 참 예쁘고 곱게 꾸미고 있는데, 당신들 스스로 이 동네가 얼마나 예쁘고 고운 줄을 모르셔요. 제가 괜히 집이 예쁘다고 말하는 줄 생각하셔요. 음, 이 같은 골목길 모습을 다른 지역에 보여주는 일도 틀림없이 뜻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이 동네에서 살아가는 분들 스스로 당신 보금자리가 얼마나 곱고 예쁜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난 다음에 서울이든 다른 지역이든 이 사진을 들고 가서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해요. 동네사람들한테 자부심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어요."

지난주에는 사진쟁이 최광호 님하고 함께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혼자서 거닐 때하고, 여럿이 거닐 때하고는 바라보거나 느끼는 대목이 사뭇 다릅니다.
 지난주에는 사진쟁이 최광호 님하고 함께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혼자서 거닐 때하고, 여럿이 거닐 때하고는 바라보거나 느끼는 대목이 사뭇 다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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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여러 차례, 그제와 그끄제 잇달아 '골목마실 길잡이'가 되어 사람들한테 인천골목길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오래오래 걷는 나들이를 합니다. 지난 2007년에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뒤 홀로 조용히 골목마실을 해 오며 혼자서(또는 옆지기와 아기하고) 사진찍기를 해 왔는데 요 보름 사이에 갑자기 '골목마실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인천에 뿌리를 둔 가톨릭환경연대에서 해마다 벌이는 '청소년 환경기사단' 강사 노릇까지 어쩌다 보니 덥석 맡아, 2010년 올해에 인천 중·동구 푸름이들하고 동네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 하면서 사진찍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요사이는 도서관에 가만히 있기 추워서, 사진을 좋아하는 손님이 찾아왔으면 "괜찮으시면, 구경해 보기 어려운 골목길 나들이 해 보시겠어요? 알려지지 않은 인천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하고 넌지시 말씀을 여쭈며 함께 길을 나서곤 합니다. 따로 길잡이가 되거나 탐방해설가나 그런 이름을 붙이는 나들이가 아닌, 조용히 몇몇 사람이 뚜벅뚜벅 골목을 거닐면서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도록 이끄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이런 골목마실이란 몇 해에 걸쳐 온 골목을 수없이 밟고 또 밟았기 때문에 이제서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될 테지요. 골목동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저 스스로 눈을 뜨고 생각을 열면서 골목마실을 해 온 여러 해가 밑거름이 되며 저절로 발걸음이 떨어지는 일일 테지요.

제 사진감인 '헌책방'을 처음으로 찍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1999∼2000년에 헌책방 사진을 처음 찍으며 2001∼2002년에 바야흐로 손놀림을 익혔고, 이렇게 찍은 사진을 헌책방 일꾼들한테 드리면서 '이런 사진을 좋아하시는구나. 저런 사진은 썩 안 좋아하시네.' 하고 느꼈습니다. 사진을 받으실 때에 얼굴빛이 다르기에, 반갑거나 좋게 여기는 사진을 눈여겨보고, 썩 달갑잖게 여기는 사진을 곱씹습니다. 헌책방 일꾼들 입맛과 눈맛에만 맞추는 사진이라기보다, 헌책방 일꾼들 스스로 흐뭇해 하고 반길 수 있으면서도 제 손길을 트고 눈길을 열 수 있는 사진찍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헌책방에서 사진찍기'가 열두 해째입니다. 열두 해째 되고 보니, 헌책방에서 책방 일꾼 얼굴 사진을 슬쩍 한두 장 찍는 일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찍히는 사장님들이 허허 웃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찍고 뭘 또 그렇게 찍어요?" 하고 손사래를 치시면, "예전에는 예전 모습이고 지금은 또 지금 모습이니까요. 찾아올 때마다 한 해 두 해 쌓이는 세월과 모습이 다른걸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한 아이는 무럭무럭 크며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되고, 나중에는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의 세월>을 보면서 '어머니로 된 삶'뿐 아니라 '어머니로 오기까지 걸었던 삶'을 곱씹어 봅니다.
 한 아이는 무럭무럭 크며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되고, 나중에는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의 세월>을 보면서 '어머니로 된 삶'뿐 아니라 '어머니로 오기까지 걸었던 삶'을 곱씹어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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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 저로서는 헌책방이든 골목길이든 한두 번 왕창 찍어내며 '일 끝내기(작업 종료)'를 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목숨이 붙어 있고, 제 손아귀에 힘이 남아 있으며, 제 낡고 값싼 사진기가 마지막까지 움직여 주는 그날까지 찍어야 할 사진감이라고 여깁니다. 앞으로 예순 살까지 살 수 있다면, 스물네 해를 더 찍을 수 있는 헌책방이며 골목길입니다. 앞으로 일흔 살까지 살 수 있다면 헌책방을 놓고는 마흔 해 남짓 찍는 셈이고, 골목길을 놓고는 서른 몇 해를 찍는 셈입니다.

지난 2008년 여름부터는 아이 사진도 찍습니다. 아이와 늘 지내고 있으니 아이 사진을 찍을밖에 없습니다. 2007년 여름부터는 옆지기 사진을 찍었지요. 그러니까, 이제는 아이와 옆지기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찍는다고 하겠습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나중에 어떤 사진책을 꾸리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좋은 벗님들이요 길동무이니 사진기를 집어듭니다. 저한테 헌책방이라는 사진감은 저 멀리 동떨어진 세상사람들 터전이 아닌, 바로 내 삶터요 이웃 모습입니다. 저한테 골목길이라는 사진감은 남다르거나 애틋한 추억이 어린 곳이 아닌, 바로 내 보금자리요 이웃들 어우러진 삶자락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또한, 사진쟁이들이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할지라도 마침내 '삶을 담는 삶사진'에 이르고야 만다고 느낍니다. 우리들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는 그 훌륭하고 거룩한 사진쟁이들은 예술사진이었든 상업사진이었든 기록사진이었든 무슨 사진이었든 하나같이 '당신들 삶으로 녹여내고 받아들인 삶사진'이로구나 싶습니다. 레니 리펜슈탈도 삶사진이고, 김기찬도 삶사진입니다. 살가도나 쿠델카도 삶사진이며, 조선희나 한영수도 삶사진입니다. 한영수 님은 아예 <삶>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진책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 바야흐로 만나면서 당신들 사진 불꽃을 활활 불태우면서 곱디고운 사진꽃으로 피어나는 자리란 바로 '삶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어머니의 세월> 겉그림.
 <어머니의 세월> 겉그림.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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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삶을 담으려고 하는 사진으로

옆지기도 한번 보라고 <어머니의 세월>이라는 사진책 하나를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함께 놀던 옆지기가 "아빠가 엄마 보라고 사진책을 가지고 왔네." 하면서 주욱 펼치다가는 "뭐야, 이 사진은? 이 사진에서 할머니들은 찍히고 싶지 않은 얼굴이잖아." 합니다. 무슨 사진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 슬쩍 건너다보니, 장터에서 국수를 자시는 할머니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얼굴이며 손이며 온통 주름진 할머님들 매무새가 잘 드러난 사진입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할머님들은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 '밥먹는 자리에서 저 양반 뭐 하는 짓이여?' 하는 눈빛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옆지기는 사진쟁이 이름을 모르고, 사진쟁이 발자국을 모릅니다. 이분이 어떠한 길을 걸었는지 모르며, 이 사진책에 어떠한 뜻이 담겨 있는가를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옆지기를 섬깁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이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를 알아야만 그 사진쟁이 사진을 읽어낼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과 책쟁이 한 사람이 무슨 뜻으로 사진책 하나를 엮었는지를 알아야만, 이들이 묶어낸 사진책에 담긴 사진을 즐길 수 있지 않습니다. 옆지기는 지아비가 쓴 글이나 사진을 놓고도 알차게 못 쓴 글이나 제대로 못 찍은 사진을 놓고 "뭐야, 이 글은? 뭔데, 이 사진은?" 하고 한 마디 톡 쏘거나 거듭니다. 당신하고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아닌, 당신 가슴으로 스며들 만한 글이냐 그림이냐 사진이냐를 헤아리는 눈썰미입니다. 더없이 고마운 옆지기입니다.

윤주영 님이 그동안 찍어낸 사진책들. <동토의 민들레>는 겉장을 잃어버려 시커먼 속알맹이만 있습니다.
 윤주영 님이 그동안 찍어낸 사진책들. <동토의 민들레>는 겉장을 잃어버려 시커먼 속알맹이만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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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그동안 <어머니>(눈빛,2007), <그 아이들의 평화>(생각의나무,2004), <석정리역의 어머니들>(솔,2003), <장날>(현암사,2001), <행복한 아이들>(현암사,2001), <중국>(눈빛,1999), <안데스의 사람들>(눈빛,1999), <일하는 부부들>(눈빛,1998), <어머니의 세월>(눈빛,1997), <베트남 전후 20년>(타임스페이스,1995), <탄광촌 사람들>(사진예술사,1994), <동토의 민들레>(호영출판사,1993),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조선일보사,1990), <내가 만난 사람들>(열화당,1987) 같은 사진책을 펴냈습니다. 열네 권 가운데 아직 네 권은 사지 않았으나, 사지 않았을 뿐이지 책방에서 모두 보았습니다. 네 권은 따로 안 사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여태껏 안 샀는데, 이제는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모두 갖추어 놓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고려대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에서 일곱 해 동안 정치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1961년에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어 이태 동안 신문을 만듭니다. 그 뒤 정계로 나아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열여섯 해 동안 민주공화당 대변인과 사무처장과 무임소장관과 칠레대사와 문화공보부장관과 국회의원을 두루 거쳤습니다. 1979년에 정치판을 떠난 다음 사진판으로 뛰어드셨는데, 중남미며 네팔이며 인도며 부탄이며 파키스탄이며 터어키이며 그리스이며 이집트이며 모로코이며 튀니지아이며 유럽이며를 골고루 다니며 사진찍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태껏 펴낸 사진책에서도 알 수 있듯, 윤주영 님은 1993년에 <동토의 민들레>라는 작품으로 러시아 사할린에서 고향나라를 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발자취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1994년에는 <탄광촌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탄광마을 일꾼 발자국을 사진으로 여미었습니다. <베트남 전후 20년>은 말 그대로 전쟁 피해자 뒷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행복한 아이들>은 입양되는 아이들 삶을 좇은 사진책입니다.

일하는 어머니들 삶이 고루 묻어난 <어머니의 세월>입니다.
 일하는 어머니들 삶이 고루 묻어난 <어머니의 세월>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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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영 님은 무엇보다도 '어머니(할머니)' 사진을 많이 자주 찍었습니다. <어머니의 세월>이든 <일하는 부부들>이든 <장날>이든 하나같이 '어머니 되는 분'이 사진 주인공입니다. 다만, 윤주영 님한테는 '어머니'이지만, 저한테는 '할머니'입니다. 마땅한 소리이겠지만, 어느덧 여든 줄 나이로 접어든 할아버지 사진쟁이 윤주영 님한테는 '당신한테 어머니라 할 분은 그야말로 할머니'이겠지요. 윤주영 님 사진을 보면서 느끼지만, 윤주영 님이 가장 잘 잡아채며 담아내는 사진감은 바로 '나이 든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주영 님부터 흰머리 할아버지인 만큼, 할머니들 앞에서 서로 동무가 되기도 하고 누나로 삼기도 하며 동생으로 만나기도 할 테지요. 스스럼없이 사진기를 들 수 있고, 사진기를 들기 앞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저는 윤주영 님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할아버지가 되면 아주 저절로 '나로서는 아버지이고 내 뒷사람한테는 할아버지로 보이는 아버지'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러한 사진찍기는 퍽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새롭게 눈을 뜨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은 만큼 '젊은이가 다가서기에 아직 어려운 사진감을 담아내는 솜씨'를 보여주면서 뒷사람을 가르친다고 할까요.

그런데 윤주영 님 사진책을 보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탄광촌 사람들>을 뒤적일 때마다 <김재영(글),김종성(사진)-검은 산 검은 하늘>(눈빛,1991)이 떠오르고, <동토의 민들레>를 뒤적일 때마다 <이토 다카시-사할린 아리랑>(눈빛,1997)이 떠오르며, <장날>을 들출 때마다 <양해남-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이 떠오릅니다. 똑같이 탄광을 사진감으로 삼았지만 윤주영 님 사진책에서는 웃음과 눈물을 살피기 어렵구나 하고 느낍니다. 광부 삶을 담은 사진책으로 <신병태-광부, 그 묻혀진 얼굴>(호영,1999)이 또 있는데, <광부, 그 묻혀진 얼굴>에서도 '광부라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얼굴'은 드러나지만 삶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윤주영 님 사진에서도 비슷합니다. <장날>이나 <행복한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평화>에서 '넉넉한 구도'와 '아름다운 화면'은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구도와 화면에 어떠한 이야기를 따스하게 담는지까지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눈물을 보여야 하는 사진에서 눈물을 보이기 힘들고, 저절로 '아!' 하는 마음이 샘솟지 못합니다.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쉬는 삶을 잘 담아냈습니다.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쉬는 삶을 잘 담아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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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길을 걸어가며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고 온갖 자리에서 온갖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골고루 만나고 있는 윤주영 님은 우리 세상 온갖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갖 '모습'을 담는 가운데 온갖 '이야기'까지 엮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다루는 사진감은 많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모습으로 그치고 이야기로 뻗어가지 못하는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자락을 보여주지만 삶을 말하지는 못하는 사진이 아니랴 싶습니다. 삶결을 건드리지만 삶자리 깊숙하게 스며들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일하는 부부들>과 <어머니의 세월>이라는 사진책을 여러 해 동안 사진밭 선배한테 빌려 준 적 있습니다. 선배는 <일하는 부부들>은 잃어버리고 <어머니의 세월>은 돌려주었습니다. 한 번 잃어버린 <일하는 부부들>은 헌책방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배한테 이 사진책을 빌려 줄 때에 선배한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저보다 사진 솜씨가 좋고 사진 찍히는 사람들한테 스스럼없이 잘 다가서는 선배야말로 '이 땅에서 낮은자리에서 부둥키고 얼크러지는 이웃이자 바로 이러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부부들'하고 '어머니가 보낸 세월'을 사진으로 담아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진일은 한두 해로 이룰 수 없고, 적어도 열 해나 스무 해에 걸쳐 해야 할 텐데, 이제부터 차근차근 해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선배가 제 도움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지 잊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선배한테 도움말을 했듯 저는 저 스스로한테도 제 둘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사진으로 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저한테는 '일하는 사람들'이란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일 테지요. 그리고 저한테 '어머니가 보낸 세월'이란 바로 우리 아이를 키우는 옆지기가 젊음부터 늙음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아내는 발자취일 테고요.

다만, 윤주영 님 또한 조금 더 '찍히는 사람'한테 깊이 다가서면서 사진을 일군다면 더 좋겠지요. 아무리 '그림이 좋아'도 찍히는 사람이 달갑잖게 여긴다면, 썩 내키지 않습니다.
 다만, 윤주영 님 또한 조금 더 '찍히는 사람'한테 깊이 다가서면서 사진을 일군다면 더 좋겠지요. 아무리 '그림이 좋아'도 찍히는 사람이 달갑잖게 여긴다면, 썩 내키지 않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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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설핏 윤주영 님이 새 작품을 내놓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떠한 작품을 어떠한 빛깔로 내놓으실는지 궁금합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윤주영 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당신 스스로 '여든이 되든 아흔이 되든 사진길을 걸어가며 새 사진감을 찾아 새 창작을 선보이는' 좋은 이슬떨이가 되어 주고 있거든요. 윤주영 님은 한 해 두 해 사진길을 걸어가면서 당신 사진밭을 조금씩 갈고닦으며 가다듬고 있다고 느낍니다. 비록 윤주영 님 당신이 벗어나지 못하는 틀과 굴레가 있지만, 제아무리 틀과 굴레가 있다 하여도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은 사진으로 말하면 됩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세월>은 1997년 작품입니다. 2007년도 아닌 2010년이라면, <어머니의 세월>에서 엿보인 아쉬움들을 말끔히 털어내었을 수 있겠지요. 또는, 2017년에도 사진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차근차근 가다듬거나 추스를 수 있을 테고요.

구도와 화면으로도 얼마든지 곱고 멋진 사진을 일굴 수 있지만, 이야기와 삶을 담아낼 때에는 '흔들린 사진'이든 '빛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사진'이든 사람들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사진이 되거나 따뜻하게 감싸안는 사진이 됩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마무리되는 대목을 한결같이 되새겨 주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어머니의 세월

윤주영, 눈빛(1997)


태그:#사진, #사진책, #윤주영, #사진찍기,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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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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