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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힘을 꺼내게 했던 말, "믿어"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나의 양아들 누엔과 헤어질 때(관련 기사 : 결혼도 안했는데 아들이 둘이에요) 누엔을 꼭 껴안으며 아버지(고아원 원장님) 말씀 잘 듣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언제 볼지 모르기 때문에 헤어지는 오늘, 어떻게든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누엔과 헤어지는 게 슬퍼서 많이 울었는데, 누엔은 끝까지 밝은 표정이어서 어쩐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엔, 표정관리 좀 해라. 우리 이제 헤어지는 거라구."

농담 섞인 진담을 했지만, 누엔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우리 다음에 또 만날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다음이라니,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에 대한 확신은 나한테도 없는데 이 아이는 왜 이렇게 확신에 차 있을까.

단순히 물질을 후원해주기보다, 끝까지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다.
▲ 더 많이 안아줄걸 단순히 물질을 후원해주기보다, 끝까지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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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니?"
"그럼요."
"왜?"
"니콜이 케냐 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내가 케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표현하지 않고, '믿는다'고 표현하는 누엔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너의 믿음 때문에라도 나는 다시 이곳을 와야겠구나' 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누군가 나에게 주는 믿음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시너지 효과를 준다. 회사일이 잘 안 풀려 어딘가 짱 박힌 채 풀죽어 있을 때도, 누군가 어깨 톡톡 두드리며 "잘해낼 거라 믿어"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정말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I trust you loving Kenya."

더듬더듬 영어로 말하던 누엔의 그 한마디는 아프리카 땅에서 들었던 최고의 말 중에 하나가 됐고, 앞으로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것도 어쩌면, 마치 기대에 어긋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라도 되는 듯 시종일관 감독관 같은 타인의 표정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엔이 나를 굳건하게 믿어주는 것만으로 내가 아프리카에 다시 갈 것을 꿈꾸게 된 것을 보면, '믿음'이라는 것은 내 안에 꽁꽁 숨겨져 있던 어떤 힘을 꺼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믿음'을 더욱 '믿게' 된 계기는 얼마 전, 이 사람을 알게 된 이후부터다. 'trust'라는 단어를 보면 이제 어김없이 내 머릿속을 장악하게 된 단 한 사람.

#.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부른다

친부모에게 버려지고 고아원에서 자라 30대에 백만장자, 지금은 소액대출 사업으로 전 세계 27개국 빈민들의 자활을 돕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
▲ 데이비드 부소 친부모에게 버려지고 고아원에서 자라 30대에 백만장자, 지금은 소액대출 사업으로 전 세계 27개국 빈민들의 자활을 돕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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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잠부코 트러스트(Zambuko Trust)'라는 신탁회사가 있다. 극빈자를 위해 무담보 무보증으로 대출해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짐바브웨는 한때 아프리카에서 번성한 나라였지만, 부정부패가 심해지면서 실업자가 전체 인구의 40%에 달할 정도로 급속히 쇠락한 곳이다.

수중에 1달러가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무얼 믿고 돈을 빌려줄까, 보증인도 없고 맡길 물건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은 현실화되었고, 물론 아주 큰돈이 아닌 많아봤자 몇십만 원 수준이긴 하지만 그 작은 돈은 엄청난 효과를 불러들였다. 그중에서도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사건은 바로 이것이다.

이빨이 다 빠진 채로 틀니도 없이 생활하던 60대 할머니 테레지아 음바세라(지금은 70이 훌쩍 넘었을 것이다)는 잠부코로부터 60만원 정도의 돈을 대출받았다. 가난과 가뭄으로 절망적 삶을 살았던 테레지아는 빌린 돈으로 청량음료를 사 가판대에서 팔기 시작했고, 한 달 안에 원금을 갚았다. 그리고 작은 식료품점을 개업하면서 또 다른 사업체를 경영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나갔다. 한 끼 때우기도 힘든 할머니가 멋진 사장님이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하는 사업마다 성공하자 테레지아는 더 많은 직원을 고용했으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많은 가정에게 희망을 주었다. 10년 후 그녀는 3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그녀는 이웃과 비교해 훨씬 잘 살게 되었지만 빈민가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넓은 집에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들여놓고 살 여유가 생겼지만 욕심 부리지 않았다.

그녀가 사업에 성공하자 주변의 많은 사람도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잠부코에 자신의 돈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난했을 때 자기를 받아주지 않던 모든 은행보다 이 소액대출업자에게 돈을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여자들이 자기에게 와서 "아이들에게 신길 신발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돈이 없습니다"라고 호소할 때 선뜻 은혜를 베푸는 자신의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이 사업을 벌여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신발 사는 것을 보면서 더욱 행복해졌다."(<네가 선택한 길에서 뒤돌아보지 마라> 중에서 발췌)

#3. 한국엔 이런 사람 없나요?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안철수 특강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가 의사에서 기업가로, 또 교수로 직업을 바꾸면서까지 찾아 헤맨 것은 '좀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짐바브웨에 잠부코 트러스트를 설립한 사람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데이비드 부소는 고아로 태어나 30대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다.

하지만 매일 자신에게 했던 질문,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라는 질문은 그를 백만장자에 안주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가 정착한 곳은 '더 많은 빈민들이 자립하여 돈을 버는 일'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보증 없이 돈 빌려주는 희생을 즐거이 감당했던 사람, 끝까지 믿어준 그 한 사람의 힘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심지어 북한에까지 새로운 삶을 선물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전 세계 3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기적 같은 일로 되돌아왔다.

'너와 함께 행복한 것이 나의 비전'이라고 말하는 안철수 아저씨와 부소 아저씨.
▲ 당신과 함께 행복하기를 '너와 함께 행복한 것이 나의 비전'이라고 말하는 안철수 아저씨와 부소 아저씨.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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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크레딧
제도권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보증이나 담보 없이 소약의 자금을 지원하고,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1976년 방글라데시에 마이크로크레딧 전담 은행인 그라민은행이 설립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했으며, 미국과 같은 선진국으로도 확대 발전되고 있다. 대출조건이 채무자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전 세계적으로 90%가 넘는 높은 대출금 상환율을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한 끼 후원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 그리고 테레지아 할머니처럼 도움 받았던 사람이 또 다른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이 일파만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기초가 되어줄 사람, 그런 사람은 지금 우리나라에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을까.

100만 명의 청년실업자가 다시 희망을 찾고, 일자리를 얻고, 그리고 안철수처럼 부소처럼 '정말 내가 원하는 일'에 목숨 걸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비단 극빈국가인 짐바브웨에서만 성공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단 한 사람으로 300만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더 기대를 걸어봄 직도 하지 않을까?


태그:#데이비드, #부소, #소액 대출, #네가 선택한 길에서, #뒤돌아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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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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