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푸른숲, 가격 12,000원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푸른숲, 가격 12,000원
ⓒ 푸른숲

관련사진보기

바람의 딸 한비야, 그녀는 1958년 개띠다.

그러니까 1962년생인 나에게는 누님뻘인 셈이다. 한비야를 좋아하는 큰딸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등을 읽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대단한 사람", 이 시대에 흔하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난 12월, 큰딸이 한비야의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사들고 와서는 열심히 읽는 걸 봤다.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딸에게 한비야의 책이 많은 자극이 될 것 같아 좋았다. 딸은 여성작가들 중에서 공지영, 한비야를 특히 좋아한다. 나도 한편으로는 큰딸이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들처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아이가 "아빠도 한 번 읽어봐." 하고 권했다.

나도 에세이를 쓰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며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들이 서점에 깔려있으니 베스트셀러에 관심이 없진 않다. 그러나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 편하게 진열대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부대끼며 세로로 책장에 끼어 있다.

애써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책들이다. 최근에도 절판된 도서의 개정판을 냈다가 제대로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좁은 책장안에 도서명 혹은 저자명으로 분류되어 눕지도 못하고 서있는 책 정도를 낸 나로서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달도 안된 사이에 20쇄 이상을 찍는 이들은 솔직하게 선망의 대상이다.

어떤 책이든 다 읽은 후에 서평을 써야 하는 법인데 <그건, 사랑이었네>는 사실 1/4 정도 읽은 시점에서 쓰는 중이다. 내용이 재밌고 유익해서 오늘 중으로 아마 다 읽겠지만 2부 '내가 날개를 발견한 순간'을 읽다가 한비야 누님의 신앙관을 옅볼 수 있었고, 목사인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큰 관심이 쏠리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1부 '난 네가 마음에 들어'를 읽은 느낌은 그녀의 솔직담백함이다.

자기를 그렇게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터인데, 첫사랑 이야기까지 덤덤하게 써내려간다. 그녀는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긍정, 타인에 대한 긍정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다. 그런 성격이 그녀를 지도밖으로 불러낸 것이리라.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는 부럽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라는 존재, 그녀가 존경하는 군에 속해 있기도 한 성직자라는 존재가 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녀가 '성직자'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아니면 좋은 분들만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천성적으로 칭찬만 할 줄 아는 성격이기 때문인지도.

아무튼 2부를 읽다 말고 나는 이 책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서평이라기보다는 한비야 누님에게 성직자로서 한 말씀 드리고 싶어서이다.

'나는 불교와 천주교의 하이브리드다....나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하이브리드이기도 하다.'

신앙의 하이브리드, 불교와 천주교와 개신교의 하이브리드를 자처하는 그녀, 그래서 그녀의 신앙은 건강하다. 편향적이지 않고, 이미 부흥회때 받은 충격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자긍심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물론 너무 당당해서 '죄'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나와 약간 다른 견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사도 바울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의 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에 빠져사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읽다 말고 서둘러 글을 쓴 이유는 이 문장 때문이다.

2부 <내가 날개를 단 순간> 중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제목의 글에 '뜨거운 설교를 듣기 위해 성당에 다녀와서도 기독교 채널에서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 프로그램을 찾아 보거나 설교 테이프를 구해서 듣는다"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비야 누님, 그러지 마세요!"이다.

뜨거운 설교 좋아하지 말고, 기독교 채널에 나오는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에 유혹되지 말고, 설교를 듣는 대상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훈계를 늘어놓는 설교테이프를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뜨거운 설교도 필요하고, 목회를 하다보면 유명해지기도 하고, 필요에 의해서 설교테이프를 낼 수도 있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이런 류의 목사님들은 거반 한비야 누님의 생각처럼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제주도에서 목회를 할 때에는 모 기독교방송국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물론 전적으로 봉사의 개념이다. 당시 나는 가난한 농어촌교회 목사였기 때문에 설교녹음을 하기 위해 방송국에 오가는 기름값도 부담이 되는 처지였다. 일반적인 상식에서라면 당연히 출연료도 받고하는 것이지만, 미안하게도 거의 유일하게 돈을 내지 않고(후원금이라는 이름으로 덫칠을 하지만) 설교를 하는 목사는 얼마되지 않았다. 대부분 큰 교회 목사들, 후원금을 많이 내는 목사들이 자기를 홍보하기 위해서 혹은 교회를 홍보하기 위해서 후원금을 내고, 그 액수에 따라 좋은 시간대에 편성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런 일을 안 뒤에 그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럴 것이며, 한비야 누님이 기독교 채널에서 만나는 이들의 설교는 거반 그런 설교일 것이다. 나는 목사이기에 간혹 보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비성서적이고 인기몰이 코미디언의 저질 코미디로 분류되거나, 비야누님같이 착한(?) 기독교인들에게 해악이 될 내용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간혹, 정말 깊이있는 설교도 나올 때가 있다는 것까지는 부정하지 않겠다.

모든 것은 긍정, 칭찬하기 좋아하는 비야누님에게는 부정적이고 삐딱한 내 이야기가 오히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비야 누님이 하는 일은 기도가 많이 필요한 일이고 중보기도도 많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뜨거운 기도, 뜨거운 설교가 필요할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런 류의 것들을 필요로 하니까. 그러나 '내가 날개를 발견한 순간'이라는 제목에 덧붙이자면 날개는 '두 날개'일 때 비로소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뜨거운 설교를 듣기 위해 성당에 다녀와서도 기독교 채널에서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 프로그램을 찾아 보거나 설교 테이프를 구해서 듣는" 일을 그만하시길 권하고 싶다.

"비야 누님, 그러지 마세요!"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푸른숲(2009)


태그:#한비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