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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국에 가서 해부 실습을 마친 우리나라 응급구조학과 대학생들이 해부 실습용 시신인 카데바(cadaver)를 가지고 장난을 친 사진이 공개돼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사람의 생명과 몸을 다루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개념 없는 행동과 철없는 짓에 할 말을 잃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2006년, 뇌사시에는 모든 장기를, 사망시에는 각막과 조직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한 내게 사람들은 조심스레 말하곤 한다. '올바르게 잘 쓰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 아무리 죽은 다음이지만 함부로 다뤄질 수도 있지 않겠냐, 나는 그게 싫다….' 이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같다.

"나는 선하게 쓰일 것을 믿고 기증 약속을 했고, 그것을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게 사용하는 경우 그렇게 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나의 선의만큼은 진심이므로 결심한 그대로 가족들이 실천해 주면 좋겠다."    

해부 실습을 처음 해보는 학생들이 시신에 대해 느낄 두려움과 긴장, 흥분, 떨림 등등을 떠올려보며 역으로 그것을 표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애써 좋게 해석해 보기도 하지만, 불쾌함과 어이 없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시신의 마지막을 수습해주는 일이 직업인 사람은 시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가질까?

그는 어떻게 최고의 납관부가 되었나

<납관부 일기> 표지
 <납관부 일기> 표지
ⓒ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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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관부 일기>는 저자 '아오키 신몬'이 납관부(納棺夫)로 일할 때 쓴 일기와 산문을 모은 책이다. 납관부는 요즘 우리 식으로 하면 '장례지도사'로, 시신을 깨끗하게 닦은 후 수의를 입히고 여기 저기 정갈하게 손질하고 수습해주는 일을 한다.

저자가 납관부가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죽음이나 시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우연이라면 그런 우연도 없을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다 망하고, 문학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잘 안 되고, 그러다가 아기 분유값이 없어 바가지를 긁던 아내가 내던진 신문에 실린 구인광고를 봤던 것 뿐이다.

'분유를 사기 위한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찾는 곳이 많은 인기 있는(?) 전문 납관부가 되어간다. 그러면서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죽음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일을 하는 자신을 깨닫게 되고, 그러다보니 죽음에 대해 점점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본인의 고민과 주위의 인식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숙부로부터는 집안과의 의절 선언을, 아내로부터는 '더럽다'며 '가까이 오지 말라'는 내침을 당한다.

'죽음을 기피해야만 할 악'으로 생각하면서 '생(生)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현실의 모순을 뼛속 깊이 느끼며 저자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험한 시신들을 향해서도 기꺼이 손을 내민다. 부패한 시신들에 대한 묘사는 글자를 통해 읽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든데 그는 손수 그 시신들을 수습한다.

죽을 사람을 보며 산 사람의 추악함을 느낀다는 그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을 전적으로 맡기면서도 납관부를 비천한 직업으로 여기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비하와 대인 기피의 증세를 보이던 저자가 달라진 계기는 한 여인으로 인해서였다.

한 때 연인이었던 여인의 부친의 시신을 모실 때 옆에서 계속 땀을 닦아주던 그 여인은 납관부인 저자를 경멸이나 서글픔 혹은 동정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봐주었던 것. 작다면 작은 이 일이, 그리 길지 않는 순간에 일어난 이 일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직업 아닌 존재 자체로 인정받은 것으로 여기게 되면서 납관부 일을 계속할 힘을 얻는다.

'날마다 시신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신이 조용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며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벌벌 떨면서 들여다보는 산 사람들에게서 '추악함'을 느낀다는 저자. 그래서였을까. 삶과 죽음, 죽음 이후에 대해 종교적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책의 반까지만 납관부 일기이고, 나머지는 종교(불교) 이야기이다.

해부 실습을 하는 학생들이 시신을 '조용하고 아름다운 존재'로까지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마땅한 일 아니겠는가. 생(生)에만 집착해 죽음은 악이고 기피해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는 이 시대에 그것은 진정 헛된 꿈일 뿐일까?

과연 아름다운 죽음이란 무엇일까

유행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웰다잉(well-dying)의 시대에, 과연 아름다운 죽음이란 뭐라고들 생각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도 궁금해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에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죽음이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고통을 당하지 않고 죽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인지, 사후의 육체가 아름다운 것인지, 멋지게 죽는 것인지, 그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시신을 대하는 일을 통해 죽음 자체를, 그리고 결국은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낸 저자. 죽음준비교육의 현장에서 매일같이 죽음을 이야기라는 나는 과연 어떤 답을 갖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정말 아직 멀었다.  

덧붙이는 글 | <납관부 일기> (아오키 신몬 지음, 조양욱 옮김 / 문학세계사, 2009) * 이 책은 영화 <굿'바이 good & bye> (감독 다키타 요지로 / 일본, 2008)의 원작이다.



태그:#납관부 일기, #아오키 신몬, #장례지도사, #죽음, #죽음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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