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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온 양심적 병역거부자 알렉산다가 나가사키 시민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일은 헌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으며, 국내외 대체복무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이외에도, 유럽과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에서 징집해당연령의 청년들이 사회복지시설과 비영리법인 등에서 대체복무 중이다.
 독일에서 온 양심적 병역거부자 알렉산다가 나가사키 시민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일은 헌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으며, 국내외 대체복무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이외에도, 유럽과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에서 징집해당연령의 청년들이 사회복지시설과 비영리법인 등에서 대체복무 중이다.
ⓒ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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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나가사키 시내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에서는 갓 성년식을 치른 스무살 독일인 청년과 시민의 교류회가 열렸다. 통일 이후에도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독일에서 온 '양심적 병역거부자' 알렉산다 바이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의 모임이었다. 일본은 새해 연휴가 매우 길어 보통 연말인 12월 29일부터 1월 5일까지 휴무이기 때문에, 토론회가 끝난 뒤에는 조금은 늦은 감이 있는 신년회가 이어졌다. 

필자가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4년째, 독일에서 병역거부 의사를 밝히고 일본에서의 대체복무를 지원한 청년을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의 현재 군 복무 의무기간은 9개월이며, 해외 대체복무의 경우는 11개월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매년 1명씩의 청년을 맞이하여 올해로 4번째 청년이 복무 중이다.

알렉산다는 독일 서부에 위치해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국경에도 인접한 도르트문트 출신이다. 도르트문트는 루르 탄전 등 탄광 산업이 융성해 있으며, 맥주와 축구로 유명한 도시다. 알렉산다는 18세부터 국민 중 남성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지니는 징병제의 나라 독일에서 "어릴 때부터 전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전쟁을 위한 연습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며 "전쟁을 연습하는 군대에 가는 것보다 평화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쪽이 더 좋았다"고 병역 거부 후 일본까지 온 이유를 밝혔다.

그는 특히 청소년기부터 독일과는 판이한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흥미가 굉장히 많았다고 말했다. 또 원자폭탄의 아픔을 껴안고 있는 나가사키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평화자료관을 찾아오는 수많은 수학여행단이나 견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날마다 매우 소중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인 청년, 그는 왜 일본에 왔을까

패전 후 세워진 전후 헌법에서, 육해공군 등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고, 전쟁과 무력행사의 포기를 헌법에 명기한 일본에서는 모든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군대에 갈 필요가 없다. 헌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그치지 않는 자위대(1950년 경찰예비대 조직 후, 54년 자위대로 명칭 변경)가 존재하기는 하나, 자발적인 지원제도이며, 국민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른바 전후 세대의 일본인에게는 군대 경험이 없다. 군대 경험이 없는 일본인에게 타국의 징병제도나 병역의무,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에 대한 것은 지식적으로 들은 이야기일뿐 체험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작은 도시 나가사키에서도 독일에서 온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는 꽤나 관심을 끌어 왔다.

알렉산다의 선조는 생계를 위해 러시아로 이주해 살다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러시아로부터 추방당해 카자흐스탄에 보내진 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까지 카자흐스탄에 거주했다. 알렉산다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베를린장벽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해에 부모님의 품에 안겨 독일로 이주했다. 약 3살 쯤 되는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당시 기억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

독일은 패전 후, 분단된 동독과 서독에서 각기 군대보유가 금지되었으나 냉전의 강화와 함께 10년이 경과한 뒤 서서히 동서독 양측이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동독의 경우는 병역의무가 엄격했으나, 서독의 경우 1956년부터 18세 이상의 징집연령에 해당하는 모든 남성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도입했고, 18개월에서 시작된 복무기간이 점차 줄어들어 2004년부터는 9개월로 단축되었다.

그러나 구 서독은 이미 1949년 제정된 헌법에서부터 "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무기를 들고 전쟁에 복무할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제4조 3항) 라고 병역거부의 권리를 인정하였다. 대신 비군사적인 업무와 사회복지시설에서의 서비스 업무나 행정사무 등 대체복무가 점차 확대 허용되었다. 그리고 새 정부는 2011년 1월 1일부터는 군대 복무기간을 9개월에서 6개월로 더 축소할 방침을 밝혔다.

"독재자 처벌 위한 건 괜찮지만, 전쟁은 아니다"

"병역은 불필요하다. 하루 종일 구두를 닦거나 청소를 하는 허드렛일만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체복무는 젊은이들의 사회 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반대로 군대에 가는 병역 의무는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1년에 13억 유로, 일본의 엔화로 환산하면 1800억엔에 해당하는 돈을 징병제 유지를 위해 국가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세금 낭비라고 생각한다. 이 예산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독일에서는 학생들이 새 교과서를 사용할 수가 없으며, 새 책상을 사용할 수도 없다. 선배들로부터 수년에 걸쳐 교과서를 물려 받아서 사용해야 한다."

알렉산다는 아직 일본어가 서툴러 자신의 머리 속에 담긴 생각을 정교하게 표현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군사훈련과 전투에 관련된 일, 엄연한 군복무이지만 행정·의료·식품·수송·정보 통신 업무 등의 복무, 그리고 대체복무로서의 병역 의무 수행 사이를 정확히 구별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해, 그의 이야기를 듣던 청중은 잠깐씩 혼란을 겪기도 했다. 알렉산다는 군대 자체보단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 집총과 군사, 전투훈련을 실시하는 군대'를 반대하며 사회봉사와 국제평화유지, 민주주의를 위한 재건사업을 하는 조직으로서의 그 무엇은 인정하고 있었다.

"사담 후세인 같은 사람을 잡기 위해,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지만, 후세인을 잡은 뒤에도 전쟁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라크 전쟁은 이미 그 정당성을 잃은 지 오래고 세계 시민 누구나가 이 전쟁의 진짜 목적은 민주주의가 아니란 걸 상식처럼 알고 있다"라고 말한 그는 거듭되는 청중석의 "군대 자체를 반대하는가? 혹은 군대는 필요하지만 자신은 군대 복무를 원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군대는 세계 어딘가에는 필요하다, 다만 민주주의 정착이나 재건 사업을 위해서만 필요하다"며 "사회의 복구와 건설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할 때만 군대의 존재 의미가 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의 답변을 들으면서, 내 입안엔 '그건 군대가 아닌, 다른 교육받은 집단이 대체해도 가능한 일이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러나, 알렉산다의 말에 담긴 뜻은 분명히 '군대' 가 아닌 '그 무엇'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상관없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고, 말하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자코 있었다.

독일의 병역법이나 징병제에 대해서 정확한 사실 정보를 파악하기 힘든 일본인으로서 한 시민은 "당신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의사를 밝혔을 때, 가족의 반응은 어떠했느냐?", "병역을 거부하면 대체복무의 권리가 주어지지만, 나중에 취직을 할 때 차별을 받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알렉산다는 "가족 중, 제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에서 2년간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 그때 심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했을 때 대찬성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상의 권리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취직시 차별은 전혀 없다. 군대에 다녀왔든,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든, 대체복무를 했든, 취업의 기회는 동등하다."라고 거침없이 답변했다.

꼭 '양심적'이란 단어를 붙여야 할까

교사 출신으로 퇴직후에도 시내 고등학교에서 주1회 '평화수업'을 강의하고 있는, 피폭자 출신 교육자 야마카와 다케시씨도 발언을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단어의 의미에는 정부가 '양심적'이다 혹은 '양심적이지 않다'를 판단하는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인가? 본인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는데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가? '양심적'이라는 것의 인정 기준이 혹시 따로 있는가?

나도 평화학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군대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강의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어떤 학생 한 명이 '선생님, 꼭 '양심적'이라는 단어가 붙어야만 하나요? 그냥 병역거부를 하면 안 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군대가 싫다,나는 군대에 가고 싶지 않다. 나는 병역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병역거부할 권리 자체가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렉산다는 "지금은 '양심적'이라는 단어를 반드시 수식어로 붙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통일 이전의 동서독에서는 병역 거부가 지금처럼 쉽지만은 않았으니까, 당시에는 좀더 엄격했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병역 통지서를 받고서, 2페이지에 해당하는 편지를 써서, 자신의 병역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아주 긴 편지에 상세한 거부 사유를 밝히고, 그 이후에 정부 사람과 면접도 거쳐야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독일인 청년과 일본 시민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경청하며, 내 심정은 더욱 복잡해져 갔다. 독일도 분단경험을 한 나라이지만, 전쟁을 거치지 않았고, 분단 시기에도 편지 교환이나 왕래가 허용되었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 서로 죽이고 정전 후에도 완전히 단절되어버린 한반도 상황과는 달랐다. 따라서 독일과 한국의 군대문제 및 징병제를 단순 비교할 수만은 없었다.

알렉산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냥 독일의 상황이 부럽다고 할 수도 없고, 독일이 더 인권 의식이 발달한 나라여서 이런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단순한 결론을 내릴 수만도 없었다. 알렉산다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독일에 귀향해서 자란 세대다. 그러므로 구 동독의 경우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못했다. 동독의 경우, 서독과 달리 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군사복무를 대체하는 '건설단'이라는 곳에서의 병역을 허용했지만 이곳에서 복무를 마친 이들은 사회 복귀 후에 차별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통일 후에는 서독과 통합되어 통일 독일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괄적으로 허용되고 50%이상의 젊은이가 이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하니, 독일도 통일을 시점으로 상전벽해한 셈이다. 당일 날씨가 추웠던 탓에 숄로 몸을 거듭 감싸며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나는 '한국도 통일이 되어야만 군축, 병역 축소, 병역거부권 인정, 대체복무 실현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인가?' '궁극적으로 전세계에서 강제 징집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언제쯤 가능할까?'하는 괴로운 질문에 휩싸였다.

가난한 이들이 군대 가는 세상... 독일은?

작년 9월 14일, 나가사키에 오자 마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알렉산다 바이스 씨. 그는 군대에 가는 대신, 대체복무를 신청하였고,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에서 11개월 동안 '평화의 일'로 대체복무를 이행한다.
 작년 9월 14일, 나가사키에 오자 마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알렉산다 바이스 씨. 그는 군대에 가는 대신, 대체복무를 신청하였고,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에서 11개월 동안 '평화의 일'로 대체복무를 이행한다.
ⓒ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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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의 군대문제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권 상황을 생각하며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사이, 또 다른 일본인 여성 평화활동가가 질문을 던졌다.

"일본은 징병제는 없는 나라지만, 자위대가 있다. 일본에서는 전쟁과 빈곤의 관련성이 종종 이야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군대는 지원제이지만,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취약층이 군대에 간다는 문제가 있다.

빈곤과 차별, 교육 등의 문제로 인하여 일본에서도 가난에서 벗어나고 생활을 해결하고 교육을 받기 위해서 자위대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경향은 미국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자위대에서 사람을 모집할 때도,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사람을 모집한다. 독일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다수 청년들이 이제는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선택하고 있지만, 병역을 선택하거나 직업군인의 길을 가는 청년들은 결국 가난 때문에 병역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알렉산다의 대답은 이랬다. 독일의 사회복지 시스템은 높은 수준이며 일을 하지 않아도 실업수당을 받기 때문에,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군대에 간다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무직자는 정부로부터 생활 수당을 보조받으니까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냥 무직자'도 많다는 것이다.

독일이 사회복지 시스템이 강력하고 국가재정도 풍부한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가난과 전쟁, 군대의 문제에 얽힌 이 구조에서 독일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았다. 실업수당이 그렇게 온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고, 일하지 않아도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국민이 어느 정도인지는 더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독일에서 온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군대 및 병역의무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일본인,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군대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군사주의의 나라 한국에서 온 필자, 이렇게 3국의 만남. 나도 답답한 심경을 담아 몇 가지 질문과 의견을 냈다.

"통일 이전, 구 동독과 서독의 상황이 분명히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구체적인 차이를 들려달라. 독일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가 헌법에서 보장되고, 이미 실제적으로 대다수 청년이 거부권을 인정받아 대체복무를 시행 중이며, 대다수 국민이 병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니,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병역 의무와 군대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 여론과 의식 자체가 독일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은 분단국가에서 통일국가로 이행한 독일의 사례를 연구하며,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 독일의 역사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죽이고 죽임 당한 전쟁과 살육의 역사, 철저한 단절과 이산, 국가보안법,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특별한 안보상황, 독일과 같은 재정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제적 현실 등을 감안하면 독일과 한국을 분단과 통일의 과정, 군대문제에 있어서 단순 비교하기가 힘든 점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군대와 국방력,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곧 범법자가 되는 길이다. 재판을 받고 형무소에 갇히는 것은 물론이고, 출소 후에도 심각한 사회적 차별에 시달려야 한다. 서로 너무 다른 상황이지만, 당신은 독일인으로서 한국에 지금과 같은 규모와 군대와 병역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사회봉사와 사회재건, 국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군대 이외의 군대는 필요없다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한반도에는 군대가 필요한가, 아닌가? 독일에는 터키인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중동의 이주민들도 많이 살고 있다. 독일인은 이들에 대해서 테러리스트라고 의심하거나 경계하는가?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살아가는가? 독일인들이 독일 사회내의 중동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기를 들고선 평화를 말할 수 없다"

한 일본 시민이 알렉산다에게 "인류에게 군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것과 겹쳐, 3국 시민의 토론은 군대의 필요성, 군대의 본질, 한국의 병역제도 문제까지로 번졌다. 알렉산다는 한반도의 상황이 너무나 복잡해서 독일인으로서 쉽게 한반도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 사이, 만 서른 살의 젊은 여성 평화활동가가 이 토론회의 주인공인 알렉산다가 아니라, 나를 향해 질의를 던졌다.

"당신의 의견은 어떠한가? 군대의 필요성에 대해서 한국인으로서의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다." 

징병제가 없는 나라의 일본인이, 징병제가 있지만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강제적인 병역 의무와 군사훈련을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인정하는 나라 독일의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가, 정전협정으로 아직 '준전시상태'에 있어 징병제는 물론 온 국민이 군사주의의 영향 하에 놓여 있는 분단국가 한국에서 온 사람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대략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군대에 반대한다. 군대의 본질과 존재 목적은 전쟁이다. 언젠가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군대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홍수가 태풍, 지진과 각종 사고가 일어나면 군인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나도 평화유지와 재건을 위하여 군대가 파견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 헌법에서도 침략전쟁을 인정하는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 헌법이든 침략을 부인하고 있으며, 국가의 안보를 위해, 국제평화의 공헌을 위해 노력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국제평화와 민주주의 건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실제로는 침략을 하고 전쟁을 하고 있다. 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평화를 위해서'라는 말의 속임수에 빠져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준비한다, 평화를 위해서 군대를 강화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군대가 하고 있는 일의 실태를 보면 평화와는 관계가 없다. 평화는 군대가 지켜주고,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위한 전쟁 준비,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군대라는 말, 민주주의와 평화재건 사업을 위한 군대라는 단어의 함정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머리 속에는 태평양전쟁의 막판에 오키나와를 총알받이 삼아 미군을 상대로 옥쇄 결전을 벌였던 일본군은, 전장터가 된 오키나와 민중을 보호하기는커녕 이용할만큼 이용한 뒤에는 자결을 강요했다. 이른바 강요된 '집단 자결'. 그래서 누군가는 '집단 학살'이라 부르는 일본 현대사의 최대 비극. 군대가 국민을, 민중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례는 일부러 일본의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한국이나 독일에서도 그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내 발언이 끝나고 모임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말했다. 알렉산다가 일본어에 서툴러 곤란해 할 때 약간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 참석한 외국어 대학의 또다른 독일인(유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고, 일본의 다른 시민활동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무기를 들고서 평화를 말할 수는 없다. 무기를 들고 남의 땅에 들어가서 평화재건을 위해서 왔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옳소"라는 작은 탄성이 뒤따랐다. 무기를 들고 있는 한, 즉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 한, 평화를 위한 군대라는 수식 자체가 거짓이라는 외침이리라.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독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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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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